정세영
불편한 시선, 시선의 역전
좌. 메리 커새트, <검은 옷을 입은 오페라 극장의 여인>, 1878
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특별 관람석>, 1874
르누아르의 작품 <특별 관람석>과 메리 커새트의 작품 <검은 옷을 입은 오페라 극장의 여인>은 관람석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여인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르누아르 작품 속 여성의 화려한 차림은 그녀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관람자의 시선을 끌게 되어 여성은 바라보는 객체이자 대상에만 머무르게 된다. 반면 메리 커새트 작품 속 여성은 망원경을 들고 적극적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주체적인 이미지가 강조된다. 동일한 소재의 작품이지만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차이는 두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걸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2022년 7월에 출간된 이윤희의 『불편한 시선』이다.
이윤희. (2022). 『불편한 시선』. 아날로그.
책에서는 다양한 미술 작품 속 여성의 모습을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의 열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살펴본다. 각 챕터에서는 키워드와 관련된 작품에서 여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살펴본 후 작품 속 왜곡된 여성 이미지를 지적한다. 이와 함께 왜곡된 여성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했던 작품과, 동일한 주제를 다룬 여성 미술가의 작품을 동시에 살펴본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근현대 작가들이 역사적으로 대상화되었던 여성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하여 역전시켰는지 살펴본다.
『불편한 시선』에서는 미술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작품의 내용과 표현 방식에 반론과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게 한다. 이런 접근 방식은 독자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작품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게 한다. 이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 조각,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근현대 여성 작가들의 회화와 퍼포먼스 작품까지 미술사에서 길이 회자되는 작품을 골고루 다루고 있어 미술사의 큰 흐름을 여성주의의 시각으로 새로이 바라보게 한다.
‘불편한 시선’을 통해 미술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 『불편한 시선』은 뮤즈와 화가 사이의 ‘불편한 시선’을 전복시킨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떠올리게 한다.
좌. 엘로이즈(좌)와 마리안느(우) / 우. 엘로이즈의 첫 번째 초상화
영화에는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 귀족의 딸인 엘로이즈와, 엘로이즈의 결혼 초상화 제작을 의뢰 받은 여성 초상 화가인 마리안느가 등장한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의심을 피하고자 화가임을 숨기고 산책 친구의 명목으로 엘로이즈를 관찰하며 첫 번째 초상화를 완성한다. 그러나 엘로이즈 몰래 초상화를 그리며 양심의 가책을 느낀 마리안느는 이 사실을 엘로이즈에게 털어놓게 되고, 완성된 초상화를 본 엘로이즈는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아요. 당신을 닮지도 않아 슬프네요”라며 마리안느의 그림을 비판한다. 이런 엘로이즈의 비판은 마리안느를 향함과 동시에 뮤즈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해석해 캔버스에 표현해내는 ‘화가’와, 화가의 관점대로 대상화되고 재창조되는 ‘뮤즈’의 관계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당신(마리안느)이 날 볼 때 난 누구를 보겠어요?”라는 엘로이즈의 대사를 통해 화가와 뮤즈 사이의 관계를 전복하고 재탄생시킨다. 화가와 뮤즈 사이에 있던 일방적인 시선을 양방향적인 시선으로 전환한 셈이다. 이와 더불어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다.”는 엘로이즈의 비판은 초상화를 받아 보게 될 남성의 성적 취향에 맞추어 초상화 속 여성이 대상화되는 현상을 꼬집는다. 또 영화 속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주체를 남성이 아닌 훌륭한 재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각종 예술 활동에서 배제된 여성 화가로 설정하고 있다. 이런 설정은 남성적인 시선을 통해 묘사되어오던 예술을 여성의 시선으로 역전하는 역할을 한다.
좌. 레오노르 피니, <세계의 종말>, 1949
우. 레오노르 피니, <침실>, 1941
『불편한 시선』에서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처럼 뮤즈의 이미지와 시선의 역전을 꾀한 작품을 언급하고 있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화가인 레오노르 피니의 작품인 <세계의 종말>과 <침실>이다. <세계의 종말> 속 썩어가는 동식물의 한가운데서 담담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은 세계를 재탄생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지상의 여신처럼 보인다. 남성 화가와 남성 주문자들이 염원하고 사랑했던 영감과 사랑을 주는 ‘뮤즈’로서의 여성 이미지가 아닌 두려우면서도 관대하며 시간을 초월하는 여성 이미지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피니가 이 작품을 통해 ‘뮤즈’의 이미지를 전복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침실>에는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있는 남성과 뒤편에서 남성을 지켜보는 여성이 등장한다. 남성이 시선의 주체가 되고 여성은 시선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과는 달리, 그녀의 작품 속 여성은 시선의 욕망을 가진 주체가 되고, 남성은 응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시선의 역전은 피니의 작품을 관통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나는 오히려 삶을 냉소하기보다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으로 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 1)고 밝히고 있다. 이런 작가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책 『불편한 시선』과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관통하는 ‘불편한 시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미술 작품을 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감상하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
권은선. (2022).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시선과 젠더의 동학. 문화기술의 융합, 8(3), 399-404.
이윤희. (2022). 불편한 시선. 아날로그.
<인용>
1) 이윤희. (2022). 불편한 시선. 아날로그. p. 9
<웹사이트>
김소미. (2020년 3월 12일). 씨네21.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셀린 시아마 감독 – 끝까지 전부 불타오르라. 검색일 2022년 7월 11일
http://m.cine21.com/news/view/?mag_id=94722
인아영. (2020년 1월 22일). 경향신문. 뮤즈는 없다. 검색일 2022년 7월 11일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001222053005#c2b
<이미지 출처 |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특별 관람석 La Loge>, 1874, 캔버스에 유채, 80 x 63.5 cm, 런던, 코톨드 갤러리
https://courtauld.ac.uk/highlights/la-loge-the-theatre-box/
- 메리 커새트 Mary Cassatt, < 검은 옷을 입은 오페라 극장의 여인 In the Loge>, 캔버스에 유채, 81.28 x 66.04 cm. 보스턴, 보스턴 미술관
https://collections.mfa.org/objects/31365/in-the-loge
- 이윤희. (2022) 불편한 시선. 아날로그.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9710649&qvt=0&query=%ED%83%80%EC%98%A4%EB%A5%B4%EB%8A%94%20%EC%97%AC%EC%9D%B8%EC%9D%98%20%EC%B4%88%EC%83%81%20%ED%8F%AC%ED%86%A0
- 레오노르 피니 Leonor Fini, <세계의 종말 The End of the World>, 1949, 캔버스에 유채, 35 x 28cm, Private collection, © DACS, London / ADAGP, Paris
https://www.reddit.com/r/museum/comments/2xyh9m/leonor_fini_the_end_of_the_world_1949/
- 레오노르 피니 Leonor Fini, <침실 The Alcove (Self-Portrait with Nico Papatakis)>, 1941, 캔버스에 유채, 73 x 97.8 cm,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Weinstein Gallery, San Francisco
정세영 jsy989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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