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기후 위기지, 내 위기가 아니니까
요즘 이런저런 전시를 둘러보자니 빈번히 보이는 주제는 단연 ‘기후 위기’였다. 특히나 역사에 전무한 바이러스로 인간의 움직임이 움츠러든 지금까지의 나날, 곳곳에서 사라졌던 생물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적지 않게 들려 왔다. 생태학자 최재천은 코로나19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해 유발된 바이러스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구 생태환경에 끼치는 인간의 영향은 나날이 커지고, 결국 그 영향은 기후 위기로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인류 발생 이후로 급격한 변화가 전개되는 현시대를 뜻하는 소위 ‘인류세’ 역시 최근 국내외 미술계를 장악한 주요 화두이기도 하다. 그만큼 미술계는 오늘날 환경 생태계, 그리고 그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아트선재센터는 《서울 웨더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전시로 전 지구적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로 변화하는 기후 환경을 주시하고 대안적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참여작가 문경원과 전준호는 <불 피우기> 작품에서 변화하는 지구를 비인간의 관점에서 보여주길 시도했다. 가로로 긴 스크린을 뒤로 하고 스팟(Spot)이라는 로봇이 전시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가상으로 구현된 미지의 세계를 관람객에게 보여준다. 불안하고 긴장되는 소리와 함께 인공지능의 내레이션들이 중첩되어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가중하고, 건너편에서는 블라인드가 느린 속도로 올라가면서 붉은빛의 불길한 풍경이 서서히 드러나기도 한다. 이 일련의 퍼포먼스는 관람객에게 불편하고 두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기후 위기를 직면한 인류의 상황을 시청각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이에 전시는 해당 멀티미디어 작업을 ‘몰입형 설치 작업’이라 일컫기도 한다.
기후 위기라는 주제를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몰입’의 요소는 굉장히 중요하다. 얼핏 다른 세계의 표면적인 이야기처럼 들려 깊게 와닿지 않는 기후 위기라는 이슈를 관람자 개인의 이야기로 전환하여 깊게 각인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몰입의 요소를 활용하여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는 전시는 이전에도 있었는데, 부산현대미술관의 《시간여행사 타임워커》 전시가 그 사례 중 하나이다.
타임머신의 오류로 불시착한 을숙도의 미래와 과거를 마주하는 방 탈출 형식의 체험형 인터미디어 전시 《시간여행사 타임워커》는 오랜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떠오르는 전 지구적 문제인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방 탈출 게임을 전시와 결합하여 관람객이 전시에 적극적으로 개입 및 몰입하고 체험하게 만든다. 이렇듯 기후 위기라는 비-게임의 맥락에서 게임 요소를 활용하는 게이미피케이션 방식은 관람객의 온 감각을 동원하여 특정한 심상을 유도하면서 몰입성을 강화한다.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은 단지 눈으로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체 전체를 동원하여 행동에 의한 경험을 습득하면서 전시의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았기에 나의 위기로 여겨지지 않는 위기’를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시적으로 관람자 개인의 위기로 치환하고 몰입을 유도함으로써 그 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방식은 분명 작품의 시각적 요소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더욱 깊게 관람자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특히 기후 위기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 걸맞은 형식임을 두 전시를 통해 느낀다. 앞서 언급한 《서울 웨더 스테이션》의 연극적 성격과 《시간여행사 타임워커》의 게임 요소는 이러한 관람자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 각 전시가 구사한 핵심적인 기능이며, 그 의도대로 관람자들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처한 가상의 상황에 빠져들어 변화하는 기후 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요소가 지닐 수밖에 없는 오락성이 과연 기후 위기라는 문제의 경각심으로 온전히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가 정말로 나의 위기가 되어 나의 일상을 본격적으로 파괴할 때는 이미 늦을 것이므로, 우리는 전시를 통해 미리 그것을 온몸으로 몰입하고 느껴야 한다. 그리고 온몸으로 느낀 그 위기의식을 전시 바깥의 현실로 끄집어내어야 한다. 그렇다면 전시는 또 어떤 방식으로 기후 위기를 나의 위기로 인식시키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게 만들 수 있을까? 기후 위기가 나의 위기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전시를 구현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미술계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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