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네타 라우퍼 : 동물의 시선으로 분쟁의 현실을 말하다
권화영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장 2전시실인 ‘부딪힘 소리(Feedback Effect)’에 자리한 네타 라우퍼1) 의 섹션은 다른 작품들과 분리된 단독 공간으로 작은 규모의 개인전을 연상시킨다. 우선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면에 조명을 받으며 전시된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25fit>(2016)이다[도판 1]. 목탄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작품은 일견 추상적이나 자세히 보면 사실적인 풍경을 재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면 속의 다층적인 음영은 화면에 깊이감을 주는 동시에 풍경의 거칠기를 강조한다. 또한 화면을 불규칙하게 가로지는 곡선의 도로는 시선의 이동을 유도하며 정지된 풍경을 더듬게 한다. 흡사 조화롭게 잘 그려진 흑백의 반추상 회화인 듯 보이는 이 작품은, 서안지구(West Bank)의 분리장벽에 설치된 이스라엘 군대의 감시카메라에서 수집한 영상자료의 스틸 이미지이다(이번 전시에는 <25fit>의 전체 작품 중 3개의 스틸 이미지와 비디오 설치작품이 전시되었다). 즉 작품을 이루는 것은 붓질의 겹침이 아닌 디지털 방식으로 결합된 세그먼트(segments)들로, 차가운 기계의 시선은 자연환경과 인공적인 환경을 균일하고도 단조로운 방식으로 포착해 내며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작품 제목인 ‘25fit’은 서안지구에 세워진, 높이 8m에 달하는 거대한 분리장벽의 높이를 뜻한다. 이를 통해 작품 속 장면은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비가시적인 풍경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작품이 서안지구의 풍경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르단강 서쪽에 위치한 서안지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심지로, 역사적·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에 처한 곳이다.2)
따라서 서안지구라는 지역의 특수성은 작품에 강력한 정치적 맥락을 더한다. 즉 작가는 감시와 통제의 도구인 감시카메라를 예술적 매체로 전환하여 중동 분쟁지역의 역사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3개의 수직선으로 화면이 분할되어 있어 다시점에서 하나의 풍경을 동시에 보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영상의 낮은 해상도로 인해 이미지의 경계를 흐리며 파편화시킨다. 이처럼 한 화면에 공존하는 이미지의 이음새와 겹침은 부지불식간에 인식을 분할시키며 현실의 왜곡을 유도한다. 이는 곧 분리장벽에 의해 분리되고 뒤틀린 현실에 다름 아니다.
작품의 형상은 <25fit>의 일부를 확대한 작품인 <개 III, لكلب ٣, כלב 3 >와 <호저, النيص, דורב>에 이르러 보다 명확해지며 전체 스틸 이미지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동물’이다. 동물의 형상은 이어지는 영상 작품에서 비로소 또렷해진다. 작품 속에서 인간은 사라진 채 동물들의 모습만 보이는데 이로부터 인간중심의 서사를 배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하지만 작품에서 부재하는 것으로 강제된 인간은 철조망과 감시탑 그리고 도시 구조물 등의 흔적을 통해 존재를 암시함으로써 인간의 그림자는 쉽게 없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또한 감시카메라가 포착한 이미지는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 감시 행위가 구분 지은 통제의 주체와 피주체 간의 경계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는 분쟁지역이 만들어낸 거대한 분리장벽과 중첩되며 배제, 감시, 통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어지는 사진 설치 작업 <35cm>(2017-18)는 서안지구 분리장벽에 설치된 너비 35cm인 S자형 구멍 ‘라메드(Lamed)’와 이곳을 드나드는 동물의 움직임을 동작 감지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24개의 이미지 중 <하이에나, ضبع ,צבוע >와 <가젤, أيل ,צבי.> 두 작품이 전시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조명으로 인해 발광(發光)하는 동물의 눈동자는 흡사 유령과도 같은 모습으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라메르’는 동물의 자연 서식지가 둘로 나누면서 이들이 먹이와 물 공급원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자 인간이 동물을 위해 만든 작은 통로이다. 하지만 동물들에게 허용된 단 ‘35cm’는 이들에 대한 인간의 배려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라우퍼의 작품은 인간의 이기심이 동물에 끼친 영향을 통해 비인간인 동물의 위치에서 생각하게 하고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환기시키는 포스트휴먼적 태도로 읽힌다. 3)
하지만 작가가 동물을 통해 궁극적으로 분쟁지역에 대한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음이 히브리어(이스라엘의 공식 언어)와 아랍어(팔레스타인의 공식 언어)가 나란히 병치된 작품 제목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작품 속 동물들은 카메라를 인지하지 못한 채, 부지불식간에 정치적 논의의 주인공이 되어 그간 인간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문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작품에 있어 짙은 정치적 함의를 지닌 분쟁지역의 감시카메라는 작품의 주제를 실천하는 직접적인 매체가 된다.
작품의 주제는 출품작인 <하이에나>나 <가젤>보다 낮에 촬영된 스틸 이미지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하지만 라우퍼는 24개의 사진 중 메시지가 모호한 작품만을 전체 맥락에서 분리하여 전시했다. 이와 같은 전시 배치 방식은 앞선 <25fit>과 연속선상에 있다. <25fit> 역시 14개의 스틸 이미지 중 동물의 형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회화처럼 보이는 단 두 점의 사진만 전시했다. 더구나 작가는 가벽을 사용하여 동물의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준 비디오 작업을 전체 작품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독해를 방해하고 있다(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감시카메라의 영상 자료로 제작한 비디오 작업과 스틸 이미지가 한 공간에 전시된다). 이로 인해 작품의 의미는 보는 이에게 쉽사리 전달되지 않고 우회하고 만다.
의미의 모호함은 신작 <반둑, نذل, בנדוק >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도판 2]. 새소리가 재생되는 사운드 설치작과 함께 벽에 전시된 사진 프린트 작업은 남성의 하반신만 촬영된 잘린 구도의 사진이다. 마치 무장한 군인을 연상시키는 남성의 복장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들 속에서 무척이나 이질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작품은 전시장 출입구 바로 옆, 전시를 둘러보고 나가는 길목에 눈에 띄게끔 설치했기 때문에 의미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면 대개 작품 정보를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캡션은 ‘반둑’이란 뜻을 알 수 없는 한국어와 함께 히브리어와 아랍어 ‘نذل, בנדו ק’가 병치되어 있어 작품의 의미는 단번에 읽히지 않는다. 명시적 의미를 방해하는 이 같은 요소는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린 이 작품의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보체계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2017년 출시된 구글렌즈 정보검색에 이어 2024년에는 AI 기술이 탑재된 핸드폰을 사용하여 ‘서클 투 서치(circle to search)’가 가능해졌고, 세계 각국 언어로의 즉각적인 번역도 손쉽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진의 의미가 궁금해진 관람자는 즉시 핸드폰으로 이미지를 검색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관람자는 마치 작품인 양 전시장 벽에 자리했던 사진 작품이 실제 사건의 기사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희귀새 밀반입으로 인한 멸종 위기’가 그것이다. 4)
사진 속 주인공은 팔레스타인 운전자로 그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에서 세관검사 중 바지에 40마리 이상의 금방울새(Goldfinch)를 숨겨 밀수하려던 행각이 발각되었다. 금방울새는 보호종으로 분류되어 이스라엘에서 판매되는 새로, 야생 개체의 가격은 100달러에 달한다. 작품 제목인 ‘반둑’은 수컷 금방울새와 암컷 카나리아의 교배종으로 그 가치는 더욱 높다. 분쟁지역에 있어 ‘국경’의 의미는 생존과도 직결된다. 즉 작가는 국경을 넘는 동물의 밀거래를 통해 긴장이 교차하고 생사가 오가는 분쟁지역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한편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오로지 사운드로만 존재하던 반둑에 얽힌 사건을 예기치 못하게 마주한 순간 빠르게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작품 이면에 숨겨진 진실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기에 검색 행위는 작품의 실체에 다가가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전시는 이처럼 관람객의 반응을 예측하고 현재의 맥락에서 그 의미체계가 어떻게 작동할지를 정교하게 직조해 내고 있다. 물론 전시가 만들어낸 의미의 발생을 관람객이 그대로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둘(전시의 의미작용/관객 수용)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작품을 스쳐 지나가기 십상일 테고, 작가의 의도대로 사진 작업이 발신하는 의미를 인지했다고 해도 이미지 검색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의 경험은 거기에서 멈추게 된다. 하지만 작품 감상의 다음 단계로 들어선 관람객은 전시의 의미체계 안으로 들어서게 되고, 작품 이면의 구체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로써 작품은 전시장 안 작품과 전시장 밖의 현실, 모두를 아우르며 작동한다. 이처럼 네타 라우퍼의 작품은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관람객의 인식 전환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동물을 통해 그 안에 얽혀 있는 인간들의 비극적인 서사에 주목하게끔 한다. 인간을 인위적으로 배제하고 나서야 겨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동물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중동 분쟁 지역의 사람들…… 네타 라우퍼의 전시장 안은 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 권화영(1971- ) rebonhime@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1990년대 한국 동시대미술 연구와 한국미술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학술논문으로 「박이소의 설치드로잉 연구: 포스트식민주의 ‘형식’으로서 ‘비형식’」(2023), 「1990년대 한국의 개념적 작업 연구: 박이소, 안규철, 김범 작업을 중심으로」(2024)가 있고, 저서로는 필진으로 참여한 『그들도 있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만든 여성들』(202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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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타 라우퍼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출생, 텔아비브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2013년 예루살렘 브살렐 미술 및 디자인 아카데미(Bezalel Academy of Art and Design)에서 학사 학위를, 2016년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2022년 이스라엘 젊은 작가를 위한 로렌 & 미첼 프레저 사진상(Lauren and Mitchell Presser Photography Award for a Young Israeli Artist)을 수상했다. (작가 홈페이지 https://
www.nettalaufer.com : 인스타그램 @nettalaufer)
2) 서안지구는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요르단에 의해 점령된 후 1950년에 합병되었고, 이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동안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군사적 통제 하에 있다.
3) “인간의 활동이 포화 상태에 이른 곳에서는 사람 간, 종 간을 불문하고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증대되었다. 이 전시실에서는 피드백 효과의 음향 패턴을 풍경에 적용해 산업화가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조명한다. 농촌과 숲을 지키는 일보다 수익 추구가 우선시되고 야생 생태계가 사라지는 등 역사상 유례없는 밀집 생활로 동물의 멸종이 급증하는 상황이다. 이 섹션의 작가는 인간이 비집고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는 세상과 야생의 종말에 대해 고찰한다.” (2전시실 월텍스트)
4) Abdel Fattah Nazmi Abd Raboum, 「The Goldfinch (Carduelis Carduelis Linnaeus, 1758) in Palestine: An Appreciated Bird and A Threatened Speciesm」, ResearchGate, November 2022.
<25fit> (2016), 감시카메라 영상자료의 스틸 이미지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반둑, نذل, בנדוק > (2024) 사운드 설치, 프린트 (20분 4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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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