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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32) 도미니크 놀스 Dominique Knowles

남수영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추모로서의 공간 : 도미니크 놀스

남수영

《광주비엔날레 2024》 본전시 네 번째 섹션에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이는 바하마 출신 작가 도미니크 놀스(Dominique Knowles, 1996-)의 작품으로 세로 424cm, 가로 3,000cm의 거대한 크기로 관객의 눈길을 끈다. 1)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 중 젊은 축에 속하는 그는 다종 간의 우정에 관심이 깊다. 특히 그가 작품 활동에서 가장 집중하는 동물은 ‘말’이며 역사적, 정서적으로 인간과 말이 쌓아온 유대와 관계에 관해 고찰한다.

바하마 출신인 놀스는 어린 시절부터 승마를 즐겼고 줄곧 말과 함께 일상을 보냈다. 추모의 의미로 말을 그린 것은 2016년부터였으나 화가로서 입지를 굳히기 이전부터 놀스의 작업에는 꾸준히 말이 등장했다. 작품에서 반복하여 등장하는 갈색과 고동색의 차분한 색조로 그려진 말은 2021년에 사망한 그의 애마 태즈(Tazz)의 상징이자 그에게 태즈를 선물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향한 애도이다.              

이번 비엔날레에 전시된 <모든 계절에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엄숙하고 품위 있는 장례식>은 제목에서부터 추모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황토색, 적갈색, 고동색과 같이 갈색으로 얼룩진 화면 위에 암갈색 말이 질주한다(도 1). 채도가 낮은 흙색으로 만들어진 비규칙적인 그라데이션 배경은 특정한 풍경을 묘사하지 않는다. 이는 쟁기로 긁어내어 속이 드러난 밭의 표면 같기도 하고 동굴의 거친 벽면같이 보이기도 한다. 원근감을 감지할 수 없는 배경과 평면을 달리는 말은 리넨에 그려져 굴곡진 벽에 걸렸다. 가로로 길게 뻗은 그림은 보는 이를 감싸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높이 또한 상당하여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은 작품이 주는 웅장함에 마치 화면에 흡수된 것과 같은 몰입을 체험할 수 있다. 

작가가 말한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준 영감은 다양하다. 르네상스의 회화,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동굴 벽화,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 관습, 동물의 죽음을 기리는 세계의 토착 의식 등 그는 미술을 넘어 다양한 장소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모든 계절에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엄숙하고 품위 있는 장례식>은 그중 로스코와 동굴 벽화의 레퍼런스가 가장 강조되는 작품이다.

놀스가 21세였을 당시 로스코의 그림에 매료되어 테이트 모던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진한 빨간색과 먹색의 거대한 화면을 마주하자 그림이 전하는 빛에 압도되어 갇힌 기분이 들었고 그림이 주는 광활함에 폐소 공포증까지 느꼈다고 증언한다. 그는 자신이 그 현장에서 그림에 항복했으며 곧 의자에 앉아 세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2) 이러한 잊을 수 없는 경험은 회화로 몰입적인 공간을 선사하고자 하는 작품 스타일에 큰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경험은 마이클 프리드가 『예술과 사물성 Art and Objecthood』(1967)에서 언급한 일종의 순간 성(instantaneousness)을 연상시킨다. 그에 따르면 예술에서 얻어지는 감정과 경험은 일상에서 겪는 경험과는 완전히 차별화되어 있으며 관람을 통한 몰입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 일전 인터뷰에서 놀스는 “그림은 마구간이 제공하지 못하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제공했다.”고 하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었다. 그는 마구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승마 센터에서 생업을 이어가며 모든 시간을 말과 같이한다. 그러나 말과의 감정적인 소통,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독특한 교감 방식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일상이 아닌 그림만이 줄 수 있는 영역이다. 3) 

관람객은 <모든 계절에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엄숙하고 품위 있는 장례식>을 감상하기 위해 30m에 달하는 그림의 시작과 끝을 횡단해야만 한다. 어두운 전시장과 작품을 밝히는 조명에 의지하여 그림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원시 동굴 벽화를 보는 선사시대 인류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들은 동굴 벽에 그려진 동물들을 보기 위해 횃불을 든 채 빛없는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보이지 않는 전방을 걷는 이들의 눈앞에는 동물들이 등장하고 먼저 나온 것들은 점차 어둠에 가려 사라진다. 분명 그들은 정지된 그림임에도 달리고 있는 살아있는 동물을 목격한 것과 같은 생생한 격동을 느꼈을 것이다.                       

놀스의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도 마찬가지의 체험을 한다. 황톳빛 배경을 탐험하면 어느새 관람객은 질주하는 말에 근처에 다가선다. 지나온 갈색 화면은 말과 관람자가 함께 달려온 여정을 보여주는 듯하며 관람자는 말과 실제로 동행한 듯한 영적인 환상을 체험한다(도 2). 이러한 착각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접촉하고 관계를 맺어온 동물들과 연결 지을 수 있다. 동굴 표상이 고대 사회의 신념과 신화 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유대, 공생을 의미하며 그것을 전승하기 위한 기록이듯 놀스의 그림은 현대 사회에서 동물과 인간의 관계 중요성을 알리는 기록이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 중 가장 대표성을 띠는 이 시대의 감정적 개념은 ‘반려동물’이다. 작가의 작품 속 말이 세상을 떠난 그의 첫 번째 말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거대한 추모비의 역할을 한다. 종(種)과 종의 간격을 넘어 함께 일생을 보내는 동물들은 인간에게 가족이 되었으며 인간은 그들을 잃었을 때 비애와 상실감을 느낀다. 놀스의 그림은 사랑했던 동물을 잃은 자들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의식을 행한다. 성직자가 방문하여 그들의 죽음을 축복하거나 교회 묘지에 동물을 묻을 수 없어도 예술을 통해 잃은 존재를 회상하고 영원히 남기고자 한다. 때로 예술은 관례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규범에 관한 해소를 제시할 수 있으며 마음의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추모객이 설 수 있는 장소이자 애도의 공간이 된다.



- 남수영 (1999)
상명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재학. 종교미술이 융성했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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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미니크 놀스, 바하마 출생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domknowles

2) “This Painter’s Ode to Intimacy and Loss Is Inspired by His Equestrian Love From Childhood” 
https://elephant.art/this-painters-ode-to-intimacy-and-loss-is-inspired-by-his-equestrian-love-from-childhood (2025년 1월 15일 검색)




도미니크 놀스, <모든 계절에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엄숙하고 품위있는 장례식>, 2024, 
리넨에 유채, 424x3000cm, 도판제공 남수영




도미니크 놀스, <모든 계절에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엄숙하고 품위있는 장례식>, 2024, 
리넨에 유채, 424x3000cm, 도판제공 남수영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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