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일곱 번째 영예를 안은 올해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존 가치를 넘어 새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이홍구 전 총리, 송자 전 교육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이 맡았다.
미술사 태산 이뤘다문화예술부문 보존기록물관리사 김달진
[제7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 한국 미래 밝힌 집념과 도전
‘미술계 114’ ‘걸어 다니는 미술백과사전’ ‘움직이는 미술자료 컴퓨터’. 김달진(61)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에게 붙은 별칭은 그의 외길 인생을 요약한다. 미술자료 수집에 45년을 바친 김 관장의 삶은 2013년 금성출판사판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실렸다.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만들다-김달진’이란 제목 아래 ‘아키비스트(archivist·보존기록물관리사)’로 소개됐다. 그 뜻이 ‘작품 및 작가에 대한 기록이나 전시, 미술품에 대한 기록을 관리·감독하는 사람’으로 풀이돼 있다.
서울 홍지문1길 김달진미술연구소는 “한국 미술계 자료는 내 손으로 지킨다”는 이 남자의 질긴 뚝심이 일군 왕국이다. 돈으로 셈할 수 없는 한국 미술사의 희귀 사료가 그득 쌓여 있다. 이 곳간(daljin.com)을 둘러본 사람들은 미술자료에 대한 그의 집념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무거운 전시도록을 두 어깨로 실어 나르느라 무리한 끝에 두 차례 위험한 목척추 종양수술을 받기도 했다.
“화랑과 신문사 등을 돌며 미술 관련 자료를 살뜰히 챙겼지요. 폐지 수집상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쪼가리 카탈로그까지 주워오니 메고 든 가방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고생은 했지만 자칫 쓰레기가 될 뻔했던 어제의 자료가 내일의 한국 미술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미술계 넝마주이의 전설을 일군 그 자료 섬김의 정신이 이제 빛을 받는다. 자료 활용 미술전이 늘어나면서 국내외 전시기획자들이 계획 단계에서 가장 먼저 그를 찾는다. 대여가 증가하고 연구자들 발길이 잦아졌다. 자료와 작품을 함께 평가해주니 기증 의사를 밝히는 작가도 많다.
“어릴 때부터 우표, 담뱃갑, 껌 상표 등 인쇄물 수집이 취미였어요. 청계천 고서점이 놀이터였죠. 여성 잡지에 나온 세계의 명화를 오려 모은 것이 미술자료와의 첫 만남이었고요. 이 스크랩북을 들고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찾아가 보여 드리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 인연으로 198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일하게 됐지요. 2012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가 창립했으니, 미술자료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정받는 데 30여 년 세월이 필요했던 셈입니다.”
김달진 관장이 뿌린 씨앗은 그의 뒤를 이으려는 후학들의 열성으로 열매 맺고 있다. 4년째 주최하고 있는 ‘라키비움 프로젝트’로 100여 명 아키비스트를 배출했고 올해도 11일 시작하는 6차 교육프로그램 정원 30명이 일찌감치 마감됐다. 라키비움(Larchivium)은 도서관(Library)과 기록보존소(Archive)와 박물관(Museum)의 영어 합성어다.
“이 세 곳에서 일하는 자료 연구원들의 공통점은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야 하고, 작업이 오래 걸리며, 단독 연구가 안 되고, 빛이 안 난다는 것인데 그래도 지원자가 늘어나니 보람 있죠. 연구소 방명록에 남겨진 말 중에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가 기억에 남아요. ‘디지털 아카이빙’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인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걱정입니다.”
◆김달진=1955년 충북 옥천생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 ▶1981~96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 ▶2002년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창간 ▶201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014년 한국미술저작출판상 ▶현재 김달진미술연구소장·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장
[출처: 중앙일보] 폐지수집상 오해까지 받으며 45년간 한국 미술자료 모아
- 중앙일보.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20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