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취지
▶ 역사 속에 드러나지 않은 김명철 ․ 박영무라는 잊혀진 사진가의 발굴
한국사진영상학회와 현대사진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시간의 풍경-Time in Camera」전은 지금까지 익명으로 존재했던 두 사진가의 부활을 알리는 전시다. 전시에 초대된 김명철과 박영무는 역사 속에 드러난 적이 없었던 사진가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사진가가 그야말로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가히 완전한 무명의 사진가라거나, 그들의 작품이 여태 단 한번도 드러난 적이 없는 미공개 작품이라는 말도 아니다. 김명철은 1978년에 작고한 이래 24년이 흐른 1992년 첫 전시에서 그의 존재와 그의 사진을 세상에 나타낸 사진가였고, 박영무는 단 한번의 전시도 갖지 못한 무명의 사진가로서 작년에 처음으로 사진을 세상에 드러낸 사진가다. 이들은 역사 속에 있었으면서도 역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진가였으며, 사진은 있되 작품으로서 제대로 평가 한번 받지 못한 사진가들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부활을 작가의 부활로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들 이상으로 그들의 사진에 더 많은 부활의 의미를 전가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이 전시가 강조하는 “익명의 존재성” 역시도 이들 사진가들의 익명성보다는 사진 속의 존재들의 익명성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 사진속의 익명의 존재, 미완의 포즈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
사진의 부활이란 어떤 경우든 시간의 부활이다. 존재의 부활 또한 그렇다. 존재의 부활 역시 시간의 부활 속에 있으며, 시간이 부활했을 때 그 의미가 되살아난다. 종종 사진이 우리를 낯설게 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어렵게 하는 것도 부활을 고대하는 시간의 편차 때문이다. 이번 전시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서로 다른 시간, 시간차가 나는 시간의 간극 속에서 익명의 존재들이 어떻게 부활하는가를 지켜보는 데 있다. 부활은 늘 새로운 해석을 이끈다. 또한 새로운 평가를 고대한다. 새로운 해석과 평가는 무엇보다도 시간 창고에 갇혔던 익명의 존재들이 펼친 미완의 포즈가 아닐까 한다. 역사는 어떤 면에서 익명의 존재들이 펼친 그 미완성의 포즈들의 총합일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결코 드러난 적이 없는 말없는 존재, 말해질 수 없었던 포즈들의 희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의 기획 포인트는 이것이다. 역사와 개인사의 차이, 그것들의 심연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것들을 메우고, 그 사이를 미끄러져 갈 수 있는 사진이란 도구가 있다. 사진의 책무는 바로 이것, 익명의 존재들을 드러내고 그들의 미완의 포즈들을 완결시키는데 있다.
▶ 50-70년대 시간 픙경과 그 앞에 선 사진가의 눈에 대한 새로운 자각
김명철과 박영무의 사진은 '익명'의 존재들이 펼친 미완의 포즈들이다. 역사의 본무대에서 벗어났거나, 역사의 프레임 밖에 있었던 존재들이 펼친 미완의 포즈들이다. 김명철의 <아름다운 삶>은 6.25동란부터 60년대 후반까지 인천과 인천근교의 작은 풍경 속에 내재한 소담한 삶의 포즈들을 보게 한다. 동란의 참혹함과 개발의 역사 앞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던 그 시대 말해질 수 없었던 미완의 포즈들을 보여준다. 박영무의 <머무를 수 없는 순간들>은 6,70년대 산업사회 서울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다. 산업화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휘몰아쳐 가는 사회의 이면과 그 뒤안길에서 살아가는 익명의 존재들이 펼친 미완의 포즈들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사진은 그 시절 시간풍경을 통해서 존재의 부활로 나타난다. 익명의 존재들이 사진가의 눈, 카메라 속의 시간을 통해서 부활하는 것이다. 그 모든 부활의 징표들이 시간의 풍경 속에 들어 있다.
▶ 디지털 시대 사진의 본질과 사진의 의미를 새롭게 성찰
사진이 사라진다는 것은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점에서 사진의 본질은 시간과 존재를 드러내는 데 있으며, 매체로서의 사진의 기쁨 또한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때이다. 카메라가 삶의 소소한 작은 의미들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메라가 어떤 경우든 삶의 한 순간에서 마주했던 익명의 존재들과, 그 익명의 존재들이 생산했던 크고 작은 미완의 포즈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의 풍경 전에 초대된 두 사람의 사진은 그것들을 말하는 데 결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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