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조각가 이윤석의 이번 전시 주제는 ‘주(宙)’이다. 그는 주(宙)의 사전적 의미들, 예컨대 ‘집(house)’, ‘무한한 시간’, ‘하늘’, ‘하늘과 땅의 사이’라는 의미에 매료되었고, 그러한 의미를 조형화 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의 작업노트를 보면,
“조각이라는 표현양식을 통하여 이러한 실체를 발견하고 만들어 가는 방법의 일환으로 나는 철선을 용접하여 내가 작품에 들인 실질적인 시간을 하나의 덩어리, 혹은 공간의 암시로서 나타내 보려 하였다. 여기에 다소 관념적인 숫자와 구조적인 괴체를 배치하여 서로 대비시켜 공간 속에서 그것들을 하나의 총체로서 ‘나’ 라는 자아를 설명하는 공간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있어 ‘실질적인 시간’이란 철선과 철선을 붙여 가는 긴 노동의 시간이자 선(線)이 면(面)으로 확장해 나가면서 발생하는 무의식의 느린 흐름이다. 용접을 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오직 그 순간에 몰입되어 세상과의 관계를 벗어나는 지점에 이르는 것을 보는데, 하나의 선이 거대한 물결(波)로 변화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오직 그 순간 속에 놓이는 것, 의식이 사라지고 무아(無我)상태로 놓이는 이 노동의 과정을 통해 그는 참된 ‘나’를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굵은 철사를 붙여 면을 만들고, 면의 굴곡이 부정성(否定性)의 힘에 의해 형상을 만들어 가는 작품을 보여주는 이윤석의 작품들은 그래서 전통적 조각에 대한 시각적 환유(換喩)에 넘친다. 또한, 굳이 새로울 것 없는 형식적 틀을 완고히 지켜내면서 내재적 힘의 상징체인 기(氣)의 운율을 드러내는 작품들은 ‘역동(力動)’에 차 있다. 역동의 줄기들은 시작과 끝이 없으나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긴장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과 작가사이의 질긴 투쟁(引張)은 오랜 시간성을 요구하기에 그러한 긴장의 형성과 소진이 오히려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류(流), 소(素)와 같은 제목을 가진 작품이 등장한다. 주(宙)와 더불어 이들이 갖는 주요한 속성은 수직, 수평의 의미망이다. 류(流)가 수평에의 의지를 드러낸다면, 주(宙)와 소(素)는 수직적 개념을 지닌다. 특히 소(素)는 빛과 식물의 관계처럼 생명에너지와 성장의 상보적 관계로서 ‘수직’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들은 ‘불’이라는 에너지를 통해 성장의 확산을 거듭한 ‘조형(造型)’이다. 즉, 빈 공간의 투명성으로 몸을 이룬(形)뒤 이를 가두고 있는 거푸집인 셈이다.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 탈아(脫我)의 집을 짓는 곤충처럼 그는 스스로를 소진시켜 새로운 ‘나’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원초성에 담긴 우주(宇宙)적 기운이며, 흩어짐과 생성됨이 찰나에 이뤄지는 대자연의 이치이다. 이 독특한 조형성이 뿜어내는 충만한 조각적 힘은 그래서 당혹스러우나 감동적이며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