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최영실의 작품들은 당연히 그의 몸에 배어 있는 그의 근원 즉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킨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또 한편으론 후기인상파, 프랑스의 끌로드 모네나 폴 세잔, 독일 표현주의 초기화파인 막스 슬레보트와 막스 리베르만 그리고 로비스 코린스의 영향을 축적시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최영실은 후기인상주의를 거쳐 표현주의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많은 세대에게 영향을 준 표현주의 화법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인, 오스카 코코시카의 작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오늘날의 성공적인 작업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회화적 역량에 이르기 위해서 그가 겪어온 그 험난한 과정과 냉정한 분석력이 요구되었던 수많은 작업들은 그에게 대단히 유용했으며 꼭 필요했던 과정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후기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이러한 흐름에 비추어봤을 때, 최영실은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자체 그리고 그 움직임의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붓놀림 을 통해서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맥락을 수용하면서도, 새로운 자신만의 방향성을 찾아냈다는 점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작가의 고통과 환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스러운 화폭’… 그림을 그릴 때에 생겨나는 몸의 움직임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화폭을 통해 예술가는 그의 집약된 예술세계를 완성한다.
최영실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감들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경우, 작가는 그 작품에서 자신의 행위를 완전히 드러내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회화적 측면에서 보자면, 최영실은 그 모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는 이들은 작가의 경쾌한 붓놀림과 속도감을 확인할 때, 떨리는 가슴으로 두 배 세 배의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서양미술의 흐름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동양미술의 정서를 품고 있는 최영실의 독특한 시선은,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들이 경험했던 행복한 시간들, 불어오는 바람과 마주 선 느낌, 그리고 아름다운 기억 등이 기록되어 있는 어떤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충만한 느낌과 행복한 느낌을 얻게 된다.
안드레아 볼로 Andrea Volo
시원한 그림
최영실의 그림은 쉽다.
보는 그대로다.
그대로 보면 그만이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그림에 억지로 어려운 개념을 부여하는 것은 도리어 무의미하다.
보고 나면 이미지가 잠간 남았다가 금방 사라지고 만다.
시원하고 개운하다.
그는 순간적으로 포착한 대상의 이미지를 삽시간에 쏟아낸다.
그의 붓놀림은 현란하다.
그가 그림으로 그렸듯이, 현악기 연주자가 활을 놀리는 것처럼.
그의 그림에는 밑그림이 없다.
그의 영감과 속도에 밑그림은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마치 찰나에 귀를 스쳐가는 음률처럼 그의 그림은 음악적이다.
얼핏 보면, 그의 그림은 유화도 수채화처럼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그림에 여백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유화를 선線으로 그린다.
이탈리아에서 오래 공부했으면서도 그는 동양화의 선을 놓지 않았다.
선이 살이 있기에 여백이 있는 것이다.
춤추는 숲, 너울거리는 물결, 빠른 길.
이 움직임 뒤에는 바람, 소리, 속도가 있다.
차를 타고 음악을 들으며 숲을 지나 소실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멀리 고요한 하늘이 있다.
정靜 속의 동動이다.
‘우리는 늘 영원을 향하여 가고 있을 뿐인가?’
최영실의 그림을 보고 - 하영휘
이렇게 감상을 정리하고 보니,
그의 그림은 동양화의 전통에 접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겸재정선의 진경산수화〉라는 학위논문을 쓴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그는 풍경만 그렸다.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제를 바꾸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작가노트
넓게 펼쳐진 들판과
멀리 보이는
구름사이의 산등성이
깊고 푸른 초록과
노랗게 줄쳐진 해바라기 들판
중학시절 읽었던 헤세가 기억나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생각한다.
나를 들뜨게 했던
그들의 꿈들이 아직도 내게 남아
이렇게 달리고 있는
오늘도 꿈속이다.
되돌아가려해도
나는 또 달리는 기차위에 있다.
바람과 풍경이 달려든다.
나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되돌아 달린다.
떠나지도 되돌아가지도 못하는
그곳에 항상 멈춘다.
언제나 지나치는 것 같지만
언제나 제자리인지도 모른다.
나의 꿈속이며 지금이다.
2011.07.20. 최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