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7 ~ 2013-01-27
김성수, 박제성, 백남준, 부지현, 신성환, 신정필, 윤애영, 이상진, 이용덕, 이준우, 이진준, 장유정, 정정주, 최수환, 홍승혜.
02.580.1601
눈에는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빛'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한 작가 15인의 평면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60여 점.
예술의전당에서 오는 2012년 12월 7일부터 2013년 1월 27일까지 <현대미술과 빛-빛나는 미술관>전을 개최한다. 총 15명의 작가가 참여한 <빛나는 미술관>전은 ‘빛’을 주제로 한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작품으로 이루어져있다. 국내외로 빛을 이용한 현대 미술가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바, 이는 빛이 주는 시각적, 심리적, 조형적 매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관객들은 이 전시를 통해 만질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빛을 예술로서 경험할 수 있다.
미술가와 빛
빛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에게 큰 축복이었다. 빛이 주는 유무형의 세계는 단순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과학기술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뛰어넘는다. 빛은 인류에게 여러 가지 유무형의 정신사적 각성을 제공해주기 주기 때문이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한 기록은 물론,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비유도 마찬가지다. 구원의 상징, 혹은 철학적 깨달음도 모두 빛과 연관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렘브란트나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빛이 평생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19세기 이후 미술가들의 빛에 대한 연구는 빠른 속도로 치닫게 되는데, 20세기 초반부터는 전기를 이용하여 보다 적극적인 작품이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 빛에 대한 해석이 종교적, 철학적, 혹은 회화적 해석태도에서부터 광원, 곧 직접적으로 빛을 발생시키는 물체나 도구에 조형적 가치를 더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물체나 빛과 그림자의 관계, 또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파생되거나 응용된 방식도 여기에 적극 동참한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남준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능숙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빛을 다루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등장하는 동시대 미술가들을 검토해보자면, 지금이 곧 빛의 세기라 할 만큼 놀랍도록 다양한 빛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빛의 이야기
<빛나는 미술관>전은 첨단 기술력이 지배해가는 우리 사회에서 조형 예술가들이 빛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다룬다. 이렇게 함으로써 너무 흔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빛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고자 하였다. 빛은 우리에게 무한한 사유의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경이로움이나 숙연함을 느끼게 해주며, 가능성과 역동성을 느끼게 해준다.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빛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흑암이 깊은 곳에서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빛이 주는 숭고함, 장엄함이나 사물을 성장시켜주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은 자연에게 생명력을 가져다주고 인간에게는 영적인 힘을 더해주고 있다.
빛이 있는 전시, 빛이 들려주는 이야기
2012년 겨울, <빛나는 미술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빛을 해석하는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탁월한 기량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빛은 그 자체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을 받아왔을 터이다. 이 전시는 만질 수 없는 물질인 빛을 통해 현대미술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도시, 꿈,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에서부터 거리의 네온사인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사실적인 회화, 감상자가 직접 참여하면서 완성하는 작품 등 성인들에게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흥미롭고 교육적인 전시가 될 것이다.
빛의 미술, 빛나는 미술관
감윤조 | 예술의전당 큐레이터
1.
빛은 그 자체로만으로 인류에게 큰 축복이었다. 더욱이 예술가에게 있어서의 빛은 좋은 작품 소재이자 재료로서 세계창조에 기여해왔다. 빛이 주는 유무형의 세계는 단순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과학기술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뛰어넘는다. 빛은 인류에게 여러 가지 유무형의 정신사적 각성을 제공해주기 주기 때문이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한 기록은 물론,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비유도 마찬가지다. 구원의 상징, 혹은 철학적 깨달음도 모두 빛과 연관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렘브란트나 인상파화가들도 빛이 평생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후 빛에 대한 연구는 빠른 속도로 치닫는데, 20세기 초반부터는 전기를 이용하여 보다 적극적인 작품이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 빛에 대한 해석이 종교적, 철학적, 혹은 회화적 해석태도에서부터 광원, 곧 직접적으로 빛을 발생시키는 물체나 도구에 조형적 가치를 입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물체나 빛과 그림자의 관계, 또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파생되거나 응용된 방식도 여기에 적극 동참한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남준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능숙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빛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제 최근의 미술가들을 검토해보자면, 빛의 세기라 할 만큼 놀랍도록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전시회는 첨단 기술력이 지배해가는 우리 사회에서 빛의 문제를 조형 예술가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다룬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너무 흔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빛에 대한 우리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고자 하였다. 빛은 우리에게 무한한 사유를 제공해준다. 경이로움이나 숙연함을 느끼게 해주며, 가능성과 역동성을 느끼게 해준다.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한 것처럼, 빛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흑암이 깊은 곳에서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빛이 주는 숭고함, 장엄함이나 사물을 성장시켜주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은 자연에 생명력을 가져다주고 인간에게는 영적인 힘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빛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을 받아왔을 테다. 이 전시는 만져볼 수 없는 물질을 통해 현대미술이 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2.
총 15명의 작가가 참여한 <빛나는 미술관>은 우리 한국 미술가들이 어떠한 태도로 빛을 해석하는가를 다룬다. 최근 한국사회의 놀라운 성장력의 근본에는 기술력이 자리하고 있는데, 참여 작가들이 보여주는 빛의 파노라마는 최근 예술가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다. 빛을 이용한 현대 미술가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바, 이는 빛이 주는 시각적, 심리적, 조형적 매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운데, 김성수는 물질문명과 소비문화가 담고 있는 현상과 그 이면의 모습을 다룬다. 여기에는 도시의 네온 아이콘들과 현대 건축이 담고 있는 모던한 양식들을 이미지화한다. 그의 도시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 그 자체다. 소비, 밤의 문화, 인공적인 오브제. 그 화려하고 비대해져 가는 도시의 모습에 대비되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결핍을 얻는다. 순수 붓 작업을 통한 빛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객은 그의 작품 앞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박제성의 놀이기구 시리즈는 현대사회가 주는 자극에 대한 고찰이다. 놀이기구를 서로 조합하여 만든 외형적 형상은 마치 그로테스크한 생물체 같은 느낌마저 감돈다. 야간에 빛을 발하면서 끊임없이 회전할 것만 같은 그 기계장치. 거기로부터 작가는 현대인이 스스로 만든 공허를 발견한다. 나아가 일시적인 아름다움과 괜한 불안감이 뒤섞여있는 형태로 다가선다. 발하는 빛의 움직임 속에서 관조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백남준의「비디오 샹들리에」는 소형 비디오 모니터 여러 대를 샹들리에 형태로 구성해 천장에 설치한 작품이다. 케이블과 모니터가 얽혀있고 케이블 사이로 보이는 전구의 불빛으로 전체적인 모습은 화려하며 아름다운 샹들리에의 형태를 띤다.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이 작품은 그 아래에 선 관람객에게 ‘시청’이라는 행위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부지현은 독특하게도 바다어선에서 물고기를 유도하기 위한 집어등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집어등은 삶의 흔적이 베어있는 오브제이며 그에 따라 일상과 삶의 메타포를 보여주는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느낌을 준다. 집어등의 빛은 고유의 장소성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문맥으로 작동한다. 대단히 정적이고 고즈넉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그의 작업은 예술과 삶의 경계란 바로 이 지점이라는 느낌을 자아낸다.
신성환의「빛으로 세상을 그리다」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서 완성되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휴대용 LED로 허공에 원하는 이미지를 그리면, 이것이 컴퓨터의 데이터로 저장되어 실시간으로 전시장 모니터를 통해 슬라이드 쇼로 보여 지게 된다. 또한 완성된 결과물들은 다시 관객 각자의 이메일주소로 보내지도록 하여 소통의 가능성을 넓히도록 하였다.
신정필은 광섬유를 사용하여 대상의 본질 속으로, 사물과 사고를 이어주게 만드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빛을 연결하는 섬유의 선과 섬유 끝에서 발산되는 빛의 관계를 고려하여 제작한다. 빛에서 느껴지는 독특하고 모호한 분위기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만나게 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서로 다른 차원의 경계에서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윤애영은 검은색 알루미늄 판 위에 버튼과 LED, 스위치를 이용해 만든 설치작품을 전시한다. 감상자가 버튼을 직접 누름으로써 자신이 직접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작업이다. 설치된 작품 그대로 감상할 수 도 있으며 관객의 의지에 따라 작품이 달라 질수도 있다. 어떤 버튼을 누르는가에 따라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생성된다.
이상진의 「Lighting talk」는 빛을 매개로 사물에 다양한 이미지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빛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잔상을 이용하여 구조물의 내부에 입체적인 사물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객이 지각하는 형상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고 입체물의 내부에 빛으로 연출된 잠시 존재하는 환영에 불과하다. 디지털로 제어되는 이 빛의 조각은 이미지가 변하거나 움직이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에 대해 남다른 연구를 보여주고 있는 이용덕은 이번 설치작업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과 교감한다. 빛을 비추면 감상자의 모습이 기록되고 일정 시간 그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는다. 감상자는 자신의 몸이 빠져나온 상태에서도 정지되어 있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관조적 시간을 제공한다.
어두운 전시공간 속에서 화려하게 깜박이는 희망의 텍스트들이 있다. 관객들은 이준우의 작품을 통해 현대의 삶 속에서 사라지거나 변질되어가는 심지어 완전히 사라져버린 꿈들을 그린다. 과연 그 꿈이 존재나 한 것일까라는 현대인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지만 작가는 관객들에게 그 부재를 통하여 도리어 꿈을 다시금 추구하게 만든다.
이진준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있는 도시의 빛과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Insomnia」는 개별적 체험을 빛 작업으로 승화시킨 경우라 하겠다. 작가의 불면증은 실내에서 블라인드를 드리우게 했고, 나부끼는 블라인드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상념을 다루고 있다. 창문사이로 비치는 빛과 그것을 가리는 블라인드. 거기에서 발생하는 메타포를 서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장유정은 작업실이 위치한 장소의 자연과 작가의 사유가 결합된 사진을 담고 있다. 포도밭 울타리 장막에 빛이 비치면 뒤에 있는 포도밭이 그 사이로 보인다. 작가는 이 점에 착안하여 사진설치작업을 전시한다. 작가는 반투명한 필름에 사진을 인화한 후에 뒤쪽에 조명을 비추어 푸른 장막에 포도밭이 비쳐 보이는 효과를 보여준다. 자연과 인공물이 한 공간에서 오버랩 되도록 하여 잔잔한 빛의 여운을 느끼게 만든다.
정정주는 빛과 공간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그의 작품 속 공간들은 그가 현재 생활하고 있거나 한 번쯤은 들어가 본 공간들을 모델로 만든 것이다. 작가는 책상이나 책장, 옷장등과 같은 가구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보다 비어있는 공간에서 더욱 많은 흥미를 느낀다. 정정주의 작품 속에서 건축물의 공간은 실재공간이고 건물 모델내부에서 기계적인 움직임을 계속하는 카메라는 실재 공간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비교되어진다. 또한 카메라의 시선은 그 사람들의 시선들과 비교되어진다. 모델건물들의 공간, 카메라 그리고 카메라들의 시선은 기계적으로 변환된 실재세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수환은 검정색 아크릴 판(Plexi-glass)에 다양한 사이즈의 구멍들을 뚫어서 이미지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관객들은 그 구멍들을 통해 나오는 빛을 통해 이미지를 보게 하는데,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작품이다. 화려한 이미지와 빛이 만들어내는 환영(Illusion)을 경험하게 하는데, 뚫려진 공간과 액자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각적 요소를 다루고 있다. 반복적인 컴퓨터 픽셀 작업으로 유명한 홍승혜는 ‘Subway’, ‘Bar’ 등 보통명사이면서 고유명사이기도한 단어를 이용하여 네온간판처럼 보이는 작품을 설치한다. 이렇게 하여 순수미술과 디자인, 작품과 산업품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설치된 작품은 그 장소와 묘하게 어우러져 ‘이곳이 Bar 라는 것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3.
인류는 고대부터 빛을 통해 광학적 원리를 연구해 온 바, 이 전시는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작업을 해오고 있는 현대 미술가들의 시도들을 보여주게 된다.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 목격할 수 있는 다양한 빛과 관련된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자연의 빛에서 가공의 빛으로, 기존의 빛의 개념에서 보다 새로운 빛의 개념으로의 이행. 이 전시에서는 참여작가들의 개별적 세계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의 동심원을 그리듯이 빛의 경계가 만들어진다. 빛이 바로 주제이자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관객입장에서 볼 때도 빛이라는 소재는 대단히 흡인력 있는 대상임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빛과 교감하는 작품, 바라만 보아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품, 현대를 살아가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소중한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 있다.
나아가 그 빛을 통해 자아와 외부 간의 관계를 규명해보는 계기도 될 테다. 빛이 너무 과도하게 많아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이번 전시는 빛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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