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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백년되어 고향에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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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2013. 08.28-2013.9.22

- 초대일시 

초대일시 2013.9. 3 오후 5:00

- 주    최 : 광주시립미술관, 신안군, 갤러리현대

- 입장료/관람료

일반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 단체(20인상) 400원

- 관람가능시간 및 휴관일

휴관일 : 매주 월요일, 9월 19일(추석)

관람시간 : 주중 오전 10시-오후 6시, 주말 오전 10시-오후 7시  

- 전시장 정보

갤러리명(한글_영문) : 광주시립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l

주소 : 500-170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운암동 164)

전화번호 : 062-613-7100

홈페이지주소 : http://www.artmuse.gwangju.go.kr/

 

 

 

 

- 전시내용

 

수화 김환기, 100년만의 귀환

 

홍윤리(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 들어가며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광주시립미술관은 《김환기, 백년되어 고향에 돌아오다》전을 개최한다. 2월 환기미술관에서 열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전시와 갤러리현대가 7월 개최한 《Works on paper》전에 이어 세 번째 열리는 100주년 기념전이다.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한국 근현대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그는 한국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작가 고유의 예술세계를 정립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동경, 파리와 뉴욕 등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가장 많은 작품을 후대에 남긴 작가이며, 미술가, 이론가 등 전문가들로부터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만인의 사랑을 받은 화가이다.

  아름다운 섬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김환기는 이후 일본, 서울 등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도 고향을 왕래하며 안좌도의 자연 풍경을 작품 속에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김환기의 작품과 전시를 광주 ․ 전남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았으며 이번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를 통해 그의 고향 광주 ․ 전남에서 대규모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김환기 점화의 대표작품으로 알려진 전면 점화작품을 포함하여 다수 종이 유화, 푸른색의 달 시리즈, 초기 드로잉, 유품 등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하여 신안군청, 갤러리현대, 환기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목포 MBC, 개인소장가 등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김환기 특유의 자연을 보는 통찰력과 한국적 전통미, 한국적 정서가 담긴 추상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를 통한 예술세계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2. 고향과 자연  

  김환기는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구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1927년 서울로 상경하여 중동중학교에 다니기 이전까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신안 안좌도에서 지냈다. 1931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 김환기는 일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936년까지 일본대학 예술학원에서 미술교육을 받았으며 대학원에서 학업을 지속했다. 그는 자유미술가협회, 백만회, 이과회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김환기는 입체파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수용하였고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했다. 이러한 경향으로는 일본 이과회에서 입선한 작품 <종달새 노래할 때>(1935)가 있다. <집>(1936), <장독>(1936)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항아리, 창문, 계단 등 일상의 소재를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였으며 실험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자연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고향인 안좌도를 왕래하며 보았던 바다와 하늘, 섬 등을 소재로 사용했다. 김환기의 초기작품인 <바다A>(1937), <섬 이야기>(1940) 등을 통해서도 고향에서 본 바다와 섬은 그의 회화에 영감의 원천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환기는 1956년 파리로 떠났으며 파리체류기간 동안 니스와 브뤼셀을 포함하여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1959년 귀국하여 홍익대학교 학장으로 취임하면서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나 1963년에 뉴욕으로 떠났다. 국제적 동향을 파악한 그는 좀 더 넓은 세계에서 활동하기를 원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 타지생활을 하면서도 시종 한국의 자연풍경을 즐겨 작품 주제로 삼았다. <산과 달>(1958), <산>(1958), <산월>(1958), <섬의 달밤>(1959), <여름 달밤>(1959), <운월>(1963), <산월>(1960), <달 두 개>(1961), <기좌도(여름 달밤)>(1961), <구름과 달>(1963) 등에서 살펴볼 수 있듯 그는 산, 달, 바다, 바다에 비친 달 등을 직선과 곡선, 그리고 면 등으로 표현했다. 

  김환기는 탁월한 색채 화가였고 항상 푸른 청색을 즐겨 사용했다. 실제로 ‘환기의 푸른색’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김환기의 작품은 푸른 청색의 작품이 많고 그의 색채는 오묘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특히 점화연작을 제작하면서는 천연재료에 쪽물을 염색하듯 푸른 남색과 회색조로 작품을 제작했다. 푸른색을 청아한 조선의 풍토를 상기하는 의미에서 사용했을 수 있지만 그의 푸른색은 하늘이나 바다의 푸른 색채를 넘어 무한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고향 안좌도의 풍경에서 보았음직한 자연의 향수를 함축한다. 

 

3. 달과 달항아리 

  김환기는 전통미술에 대한 애착과 뛰어난 감각으로 한국의 풍류와 정취를 지닌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한국의 미에 심취해 도자기와 목기를 수집하고 이를 완상하며 도자기와 전통기물이 갖는 조형미와 내재적 의미를 탐구했었다. 이들 소재 중에서 특히 달항아리는 1950년대 김환기 작품의 주된 모티브를 이룬다. 조선 백자항아리를 한국 전통미의 정수로 받아들인 것이 김환기만은 아니지만 특히 김환기는 백자항아리를 과거의 정신적 유산의 정점으로 여기며 백자항아리의 미를 자신의 작품 속에 투영하였다. 

  그는 <백자와 꽃>(1949)와 <항아리와 여인들>(1951)을 비롯해 달항아리를 들고 있는 <여인과 달과 달항아리>(1950년대), <여인들과 항아리>(1951), 매화와 함께 그려진 <항아리와 매화>(1954)과 <항아리>(1955-1956), <항아리와 시>(1954) 등 다수 달항아리가 있는 풍경을 그렸다. 이후에 김환기는 달항아리와 달을 겹쳐 표현한 <매화와 항아리>(1957) 등을 그리기도 했고, 이런 달항아리에 대한 애정은 <산과 달>(1958), <기좌도(여름 달밤)>(1961), <달 두 개>(1961), <운월>(1963) 등 원과 선 등 형태로 단순화시킨 달이 있는 풍경을 그리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환기의 달 그림은 196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해서 그려졌다. 직선과 곡선 등이 서로 어우러지며 포용한 산과 구름의 형상이 달과 함께했다. 푸른색을 주색으로 사용한 이들 작품은 한국의 청명한 자연과 조선의 도자기 등을 한국의 미라고 믿고 자신의 예술세계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김환기가 백자를 사랑했던 것은 기능성을 유지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단순성과 자연의 미를 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환기에게 푸른 청색 빛을 내는 백자항아리는 한국의 서정과 색채를 반영한 작품이며 돌, 산, 달과 같은 자연물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졌다. 조선의 도공들이 보름달을 보며 그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듯 김환기는 자신의 작품에 조선백자처럼 자연으로부터 온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춘 회화의 정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시도를 했다.     

 

4. 전면 점화작품

  김환기는 1963년 제7회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한 이후 세계적인 작가로의 도약을 위해 뉴욕에 정착했다. 뉴욕생활 초기에는 달과 산, 바다 등의 형태가 드러난 작품을 제작하지만 1965년경부터는 대상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인〈메아리3>와 <봄의 소리>(1965)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 구상적 경향이 사라지고 점과 선 등을 통해 자연의 시정을 담았다. 

  이후 김환기는 적극적인 조형실험을 거쳐 흡수하거나 퍼지는 기법으로 고국의 산천을 비추고 있는 듯한 십자구도와 화면을 무수히 많은 점으로 가득 메운 전면 점화작품을 전개했다. 대표적인 점화작품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있다. 이 작품은 1970년 제1회 한국일보 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한국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환기의 전면 점화작품들은 추상적이면서 그의 회화 전반에 녹아 있는 동양적 서정성과 사유를 담고 있으며, 그의 예술세계의 완성을 보여준 작품들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연구자들에 따라 점화시리즈에서 보여준 그의 순수한 색과 형의 표현을 고향의 별로 해석하기도 하고, 뉴욕 아파트 집의 불빛, 한국에서 사는 또는 세상을 떠난 지인들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며, 우주 또는 저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한다고도 한다. 김환기는 1970년 일기에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이라고 했다. 

 

5. 마치며

  김환기는 독보적인 감수성과 안목의 소유자였다. 그는 자연의 미와 한국 전통미의 조형성과 내재적 의미를 탐구했고, 이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사고하여 추상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믿는 소재의 본질적인 요소를 추출하여 그만의 예술적 감각으로 표현했고 이를 점, 선, 면, 색으로 단순화시킨 추상회화를 완성했다. 함축적이고 절제된 조형언어로 이루어진 전면 점화시리즈는 오랜 시간 작가가 추구하고 지향했던 예술세계를 이루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뉴욕시기 김환기는 점화 시리즈를 제작하기에 앞서 신문지, 한지 등 종이의 물성을 이용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한편에서는 다양한 종이 작품들도 이번 전시를 통해 함께 볼 수 있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이번 전시는 고향의 자연과 그의 골동 취미에서 연유한 작품, 한국적 정서와 독창미를 이룩한 그의 예술세계를 다시 살펴 볼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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