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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시뮬라크르의 진리, 그리고 주체 : 노영훈의 <Fiction-Objet>연작에 대하여
김원방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공간 한 가운데 높이 매달려 있는 무인항공기 모형이다. 소위 "Drone"이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진 물체이다. 무인항공기 드론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정찰 및 살상무기로 대활약을 벌였고, 유인 항공기를 대체할 미래의 전략무기로 이야기 된다. 무기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라도 최근 미국이 중동에서 치른 전쟁과 테러에 관련된 보도영상을 통해 드론의 이미지에 상당히 익숙해 있을 것이다.드론은 요란한 경고없이 원격 조종에 의해 깊은 산맥과 사막에 숨은 적의 요새로 침투해서 정찰하고 살상하는 최첨단 무기이다. 그것은 "첨단무기, 스텔스, 극비, 전지구적 감시, 전지구적 살상, GPS, 전략위성, 미래의 전투기" 등, 미국의 패권주의와 미래 군사전략에 관련된 다양한 키워드를 함축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반면 이 드론 밑에서 관객이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은 탁자, 의자, 램프, 화분 등이 놓여진 일종의 '일상적' 혹은 '사적'(私的)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론의 출현은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 공간이 몇초 후면 폭음과 함께 불바다와 시체더미의 참극으로 변해 버릴 수 있으리라는 긴박함과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러한 불안감은 이미 일상공간을 채우고 있는 그 사물들에 형태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탁자, 램프, 화분 등의 물건들은 마치 열에 의해 뒤틀리거나 또는 우리 지각 자체에 이상이 발생한 것처럼 변형되고 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주체의 심리적 공황상태나 환각, 광기 같은 것으로도 느껴진다. 드론의 침입을 통해 일상의 안정된 공간과 주체의 의식은 함께 무너지는 듯 나타난다.
드론의 이미지가 주체에게 야기하는 효과를 지젝(S. Zizek)의 방식으로 바꿔 표현하면 '상징계적 질서를 와해시키는 실재(The Real)의 침입'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히치콕의 영화 <새>의 경우, 수백만 마리의 새떼가 인간을 공격하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상상 속의 괴물 '드론'이 거실에서 차를 마시던 나를 공격한다? 바로 '불가능성의 가능성'(지젝)이야말로 바로 '실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外傷(trauma), 재난, 우연, 믿기 힘듬, 불가능성이야말로 '실재'의 진정한 얼굴이다.
노영훈의 <Fiction-Objet>에는 이러한 라깡-지젝적인 이야기가 나타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뮬라크르 기호로 채워진 세계와 주체'라는 또 다른 주제의식도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 중에서 드론을 직접 보고 그 존재를 확인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드론은 실물이라기보다는 실체성이 없는 순수한 '상상적 창조물' 같은 것이다. '용'과 같이 거의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창조물이다. 한마디로 실물이 부재하는, 오직 상상적 기호로서만 작동하는 '시뮬라크르' 같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를 실시간으로 통합하는 미디어 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이것은 하나의 가상공간을 이룬다. 가상공간은 실재(실물)와 무관한 또는 오히려 실재의 부재를 조건으로 작동하는 시뮬라크르들로 채워져 있고, 이러한 가상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믿음이란 것은 사실상 실재세계에 기반한 진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된다.
드론은 바로 그 시뮬라크르, 혹은 진리로 위장한 진리, 실물 없는 실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순수한 상상이 곧 실재이고, 상상과 실재가 분리불가능해지는 상황,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와 똑같은 위장막'이이라는 사실, 드론은 바로 그러한 시뮬레이션 세계의 인식론적 상황을 체현하는 대표적 기호이다. 따라서 노영훈의 작업은 서두에 말한 '실재의 침입'이기도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는 상상적 세계 속에 몰입하는 주체의 상황, 그리고 상상적 진리가 실재의 진리를 대체하는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시뮬레이션 시대에 진리가 계시되는 방식'을 시각화하고 있으며, 이 경우 그 진리의 계시는 '진리가 없는 텅빈 계시'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영훈의 작업의 또 다른 모습이 자연스레 나타난다. 그것은 외부의 가상세계로부터 끊임없이 침투되고 변형되고 정처없이 흘러가버리는 '액체적 주체'의 모습이다. 이러한 주체는 테크놀로지적 가상공간과 접합되어 있어 그 안으로 침투하고 또 침투되는 액체적 주체이다. 오늘날 감시기술은 우리의 일상공간과 접속되어 있으며, 우리와 드론은 사실상 결합된 하나의 존재이다. 그런데 가상적 시뮬라크르들이 나의 주체적 창조의 결과물이 아니라 반대로 보이지 않는 외부의 환경을 통해 주체에게 강제로 침입한다면(디지털 감시와 드론의 경우처럼), 결국 우리 주체는 '감시 테크놀로지와 접속된 하나의 새로운 주체'로 재구성 될 것이다. 전자는 능동적인 혼성인 만큼 '해러웨이적 사이보그'가 되겠지만, 후자는 미디어 이론가 조프리 배천(Geoffrey Batchen) 말한 것처럼 '미셀 푸코의 판옵티콘적 주체의 디지털 버전'에 해당한다. 후자는 간단히 말해 디지털 감시-훈육테크놀로지가 주체 내부로 '내사'(introjection)하여 주체의 일부를 구성한 양상이다.
이와 같이 노영훈의 <Fiction-Objet>는 '상상계를 깨는 실재의 문제', '시뮬라크르 세계에서의 진리의 문제', 그리고 '첨단테크놀로지를 통해 감시되는 세계에서의 주체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건드리는 작업이다.
노영훈(NO Yanghoun, 1971- )
egamgak@yahoo.fr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
Université Paris 1 Panthéon-Sorbonne 석사 졸업 및 동 대학 박사 수료 (Paris, France)
개인전
2013 초대 개인전, 포네티브 스페이스, 헤이리 (경기도, 한국)
개인전, 조각페스타, 예술의전당 (서울, 한국)
2009 초대 개인전, Mac Paris (Paris, France)
2008 초대 개인전, Galerie Guislain Etats d’Art (Paris, France)
주요 단체전
2013 « 점,심 Re-fresh », 한원미술관 (서울, 한국)
« 두 개의 유토피아 », 예울마루 미술관 (여수, 한국)
2012 « 소나무, 파리-서울 », 아라아트갤러리 (서울, 한국)
« 돈키호테 », 장흥조각공원 (경기도, 한국)
« 100L », 인사갤러리 (서울, 한국)
« 감성에서 생명으로의 전회-공간의 생성 », MOA갤러리 (경기도, 한국)
« Sense », 유중아트센터 (서울, 한국)
« 2012홍익국제미술제 동문중진작가전 Art Fair », HOMA 미술관 (서울, 한국)
« 한국조각가 협회전 »,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서울, 한국)
« 아트 에디션 », 코엑스 (서울, 한국)
2011 « Temps, après temps », 갤러리89 (Paris, France)
« Habiter l’image », 주불 한국문화원 (Paris, France)
2010 «Tryptique », 앙제 뮤지엄 (Angers, France)
« 11 », 갤러리 89 (Paris, France)
« 현대미술 재불 작가 초대전 Becoming », 주 폴란드 한국 문화원 (Warszawa, Poland)
« Entre deux », 갤러리Espace des art sans Frontière (Paris, France)
« Neo-graphie »,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Paris, France)
« Les Femmes Au Pay Du Matin Calme », 갤러리Lipao-Huang (Paris, France)
2009 « Transposition », 갤러리 Michel Journiac (Paris, France)
외 다수
작품소장
홍익대학교 HOMA 미술관, 장흥조각공원, 장흥조각아뜰리에 등.
주요수상
제1회 소나무작가상(Paris, France)
현재
홍익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출강
장흥조각아뜰리에 레지던시 3기 입주작가,
홍익조각회, (사)한국현대조각회, (사)한국조각가협회 및 (사)한국영상미디어협회 회원
노영훈 Fiction- Object
2013. 09. 28 -10. 13
2013. 28. sat 5pm
포네티브 스페이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345 예술마을 헤이리길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