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그 의미를 찾으려 했다.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는 20세기로 향하는 세기말의 전환점에서 유럽 모더니즘의 선구자적 인물이었다. 뭉크는 작품을 통해 기존의 회화적 관습과 단절함으로써 동시대 부르주아들과 보수적인 미술 비평가들을 도발했다.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는 에로티시즘, 멜랑콜리, 사랑, 슬픔과 관련된 감정을 시각적으로 밀도 있게 표현해내는 능력이다. 뭉크의 작업은 무엇보다도 극화, 강렬함, 역동성에 집중되는 성향을 지닌다. 이러한 관점은 이번 전시를 통틀어서 나타나며, 전시는 크게 6개의 주제로 구분되어 뭉크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섹션 1. 뭉크 그 자신에 대하여 Munch Himself
에드바르드 뭉크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실존적인 주제는 그의 자화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많은 자화상에서 뭉크는 자신을 병들고, 우울하거나 불안하게 극화시킨다. 뭉크는 그의 자화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힘썼다. 이러한 점은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작품에 투영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예술가적 기질을 표출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뭉크가 스스로를 오슬로 외곽 에켈리에 있는 그의 집 유리 현관에 있는 젊은 남성, 요양 중인 모습, 그리고 노쇠한 모습으로 각각 표현한 자화상들에서 이를 동일하게 관찰할 수 있다.
**섹션 주요작품:<지옥에서의 자화상 Self-Portrait in Hell>(1903 ), <팔뼈가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1895)
지옥에서의 자화상 Self-Portrait in Hell,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2 x 66 cm, 1903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뭉크의 자화상은 자아에 대한 탐구의 표출이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작품 속에 솔직하게 드러낸 기록으로 남은 많은 자화상들은 그의 청년기부터 죽음을 앞둔 말년까지의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준다. <지옥에서의 자화상>에서는 내면의 불안을 지옥으로 묘사 하였다. 표현주의적 기법과 강렬한 색채, 보는 이를 응시하는 눈, 그리고 뭉크 뒤로 피어오르는 어둡고 커다란 그림자 등을 통해 지옥 속에 떨어진 자아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섹션 2. 새로운 세상으로 Modern Breakthrough
뭉크는 노르웨이의 정치적, 문화적 격변기에 화가로 데뷔했다. 1880년대에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새로운 보헤미아적인 철학을 접했고, 파리와 니스에서는 인상주의 회화를 공부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동적인 철학과 더불어 문학과 시각예술의 퇴폐적이고, 상징주의적인 풍토는 그 당시를 이끄는 시대정신의 하나였다. 파리와 니스에서 사는 동안 뭉크는 전시회와 미술관을 통해 인상주의 회화를 접했고, 짧은 기간 동안 이 회화기법을 열정적으로 실험했다.
섹션 3. 삶 Existence
<생의 프리즈>는 뭉크가 1890년대에 작업했던 회화 연작들로, 연속되는 주제의 실내 장식화로 계획되었다. 뭉크는 평생에 걸쳐 회화와 판화 작품을 통해 <생의 프리즈>의 주제들을 다루었다. 이 프로젝트는 사랑, 불안, 죽음 등 인간의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경험과의 조우를 다룬다.
이 섹션의 작품들은 6개의 소주제 상실 Loss, 불안 Anxiety, 에로스 Eros, 사랑과 고통 Love and Pain, 욕망 Desire, 여자 Woman, 붉은 방 The Red Room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죽음에 관한 작품인 <병실에서의 죽음>, <임종의 자리에서>, <병든 아이>와 불안에 대한 작품 <절규>, <불안>, <키스>를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여름밤, 목소리>, <뱀파이어>, <질투>, <재>, <마돈나> 등 다수의 대표작이 포함되어 있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섹션 주요작품: <절규 The Scream>(1895), <마돈나 Madonna>(1895/1902), <키스 The Kiss>(1897),
<뱀파이어 Vampire>(1916–18), <생의 춤 The Dance of Life>(1925)
절규 The Scream, 석판화 Lithographic crayon and tusche, 35.2 x 25.1 cm, 1895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절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뭉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절규>는 절대자인 ‘신’을 잃고,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가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 현대인들의 불안에 시달리는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해석되어왔다. 이 모티프는 대중 문화에서 수없이 복제되고 상업화 되었으며, 현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모티프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마돈나 Madonna, 석판화 Lithographic crayon, tusche and scraper, 60.5 x 44.4cm, 1895/1902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마돈나>는 뭉크가 다수의 회화와 판화로도 발전시킨 주제이다. 원래 성경의 성모 마리아를 칭하는 '마돈나'는 서유럽 예술에서는 자주 다뤄지는 주제이고, 보통은 아기 예수와 함께 그려진다. 뭉크가 표현한 이 매혹적인 여성은 성경에 나오는 성스러운 마리아의 모습은 아니다. 대신, 몸을 젖히고 배를 내밀며 관능적인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임신한 여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아랫배가 부각된 포즈는 생명을 잉태함으로써 여성의 존재가 완성됨을 말해 주고 있다. 작품의 왼편 아래쪽에 무기력한 태아로 표현되어 있다. 프레임을 두르고 있는 정자의 모티프와 함께 힘없고 쇠약한 존재로 그려졌다.
키스 The Kiss,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1 x 99 cm, 1897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뭉크는 동일한 주제의 작품을 다양한 매체로 제작하곤 했는데, <키스> 역시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4가지 버전의 키스가 전시된다. 회화버전의 작품이 어둡고, 욕망으로 가득 찬 연인의 키스를 보여주는 반면, 목판화 작품은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난 소박한 키스를 보여주어 다채롭다.
뱀파이어 Vampire,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3 x 104 cm, 1916–18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재 Ashes,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39.5 x 200 cm, 1925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뭉크의 작품에서 여성은 주로 남성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고통에 빠트리는 존재로 나타난다. 뭉크의 여성편력은 전 생에 거쳐 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에게 여성은 두려운 존재였다. <뱀파이어>는 이러한 뭉크의 여성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재>에서는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두 남녀를 보여준다. 마치 연극 무대의 순간을 일시 정지한 것 같은 화면에서 등장인물들은 극적인 포즈와 표정으로 사랑의 고통을 전달하고 있다.
생의 춤 The Dance of Life,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43 x 208 cm, 1925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생의 춤>은 뭉크가 전 생애에 걸쳐 완성한 <생의 프리즈> 연작의 중심이 되는 작품이자 사랑을 주제로 한 마지막 작품이다. 1899년 당시 뭉크는 상징주의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사랑과 열정, 고통을 뜻하는 붉은 색, 젊음, 순결, 그리고 환희를 상징하는 흰색, 고독과 비애, 죽음을 나타내는 검은 색 등 인간이 지닌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각각의 상징적인 색을 사용했다.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는 다른 커플들과는 달리 중앙에는 춤 제안을 거절하는 붉은 드레스의 여성과 드레스에 휘감긴 뭉크가 있다. 양 옆에는 축제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암울한 분위기의 두 여성이 중앙을 향해 외롭게 서 있다. 이는 뭉크의 자화상인 동시에, 인간의 욕망이 표출된 작품이기도 하다.
섹션 4. 생명력 Vitality
삶에 대한 긍정은 뭉크의 후기 작품 다수에서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이 시기는 생기론(vitalism, 生氣論)의 개념이 유럽 미술과 지적인 삶에 영향을 미쳤던 시기다.
<태양>과 <건초 만드는 사람>과 같은 생기론적인 주제는 뭉크의 예술 세계가 다루는 광범위한 주제를 두드러지게 한다. 이 작품들은 뭉크의 불안과 질병, 그리고 사랑에 대한 묘사를 상쇄하며 여전히 강렬하고 극적이다. 눈부신 색채와 역동적인 구성은 일상적인 주제를 활력과 삶으로 가득 채운다.
**섹션 주요작품: <태양 The Sun>1910–13
태양 The Sun,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63.5 x 202 cm, 1910–13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뭉크는 빛을 이용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는 프랑스 화풍과는 달리 자신의 눈으로 본 주관적인 자연을 작품 안에 녹여냈다. 1911년 뭉크는 오슬로 국립 대학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대강당 신축 벽화의 공모전에 응모하여 3부작으로 구성된 11면의 연작 벽화를 제작 하였고, 벽화의 테마 중 <태양>은 뭉크의 후기작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태양>은 자연의 힘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노르웨이 회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바다 위로 솟는 거대한 태양광선이 뿜어내는 강력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섹션 5. 밤 The Night
이 섹션의 작품들 속에는 고독과 어둠, 그리고 멜랑콜리가 스며들어 있다. 말년의 뭉크는 에켈리에서 세상과 동떨어져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뭉크의 작품에 나타난 밤은 푸른빛이 불러일으키는 우울한 감성과 어둠으로 가득 찬 과장되고 왜곡된 배경이 주를 이룬다. 이는 ‘죽음’을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부각시킨다.
섹션의 대표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은 쓸쓸함이 묻어나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작품인 동시에 빈센트 반 고흐의 밤하늘과 유사점을 지닌다.
**섹션 주요작품: <밤의 방랑자 The Night Wanderer>(1923–24),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1922–24)
밤의 방랑자 The Night Wanderer,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90 x 68 cm, 1923–24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노년의 뭉크는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면서도 언젠간 다가올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는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말년을 보낸 에켈리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당시 제작한 작품들은 대부분 세상과 동떨어져 고독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밤의 방랑자>에서는 당장이라도 시린 바람이 들이닥칠 것 같은 어두운 밤공기와 백열등 빛으로 얼굴에 드리워진 노란 그림자, 그로 인해 움푹 패어 형태를 알 수 없는 두 눈이 더욱 고독함을 강조한다.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20.5 x 100 cm, 1922–24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별이 빛나는 밤>는 엷은 푸른빛들이 자아낸 겨울의 밤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광활한 공간에서 도시의 불빛과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외로이 반짝인다. 이 작품에서 중앙에 자리잡은 견고하고 둥근 난간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동명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