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늦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작업실 앞마당에 수탉을 한 마리 키웠었다.
어느날 그 닭은 나뭇가지 위에도 올라가고 지붕에도 올라갔다.
장난삼아 그 닭을 쫒아 가면 그 닭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무로부터 제법 멀리 도망쳤다.
나의 날아라 닭 작품은 여기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야생에서 자란 닭은 날개짓을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날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둠을 뚫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닭...
이것이 내가 이번 전시에서 작업을 통해 꿈꾸는 세계이다.
■ 성태훈
'Fly Roosters'
Five years ago, I raised a rooster at my studio yard far away from the city.
One day, the rooster went up on the branches and to the roof.
When I chased the rooster for fun, it ran away from the tree, flapping its wings.
My series Flying Chickens derives from this.
Chickens living in the wild begin flying someday after flapping its wings.
Chickens freely flying through the dark: This is what I dream of through the exhibition.
■ Seong, Tae hun
닭은 아득한 이상의 공간에서 봉황으로 난다
닭이 하늘을 난다. 어린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나들이 하듯이 하늘을 난다. 도시의 하늘을 부유하기도 하고, 향기 그윽한 매화나무 속을 날기도 한다. 작가 성태훈의 작업을 견인하는 것은 나는 닭이다. 그의 닭은 그렇게 날아오르며 작가로서의 그를 각인시켰다. 닭은 다양한 공간들을 날아 오늘에 이르렀다. 그것은 작가가 감내한 현실적인 삶과 작가로서의 이상, 그리고 자신이 속한 시공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기록이다. 사실 이러한 여정은 적잖은 질곡과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전통회화로서의 한국화의 정체성과 시대정신,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번민을 오롯이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를 화두삼아 수행과도 같은 성실하고 묵묵한 여정을 통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작업은 개인의 사유를 각인하는 조형 언어인 동시에 그가 마주한 현실의 또 다른 반영이기도 하다.
그의 닭은 아픔과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업은 실경에서 비롯된다. 우리 현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광주’라는 시공과 남도 일원에 산재한 유배지의 순례를 통해 그는 자신의 가슴에 아린 상처를 품었다. 실경을 통해 역사의식을 명료하게 다잡고 이를 자신의 내밀한 삶의 역정과 연계하고자 하는 그의 작업은 애초부터 분명한 지향을 지닌 것이었다. 그에게 실경은 전통적인 한국화의 경직된 형식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시대를 기록하고자 하였다. 실경이 산수, 혹은 풍경이라는 제한적 의미와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당시, 그의 의식은 매우 분명하고, 그 지향은 대단히 구체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절박한 인식은 어쩌면 그의 작업에 있어 태생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작이 그러하였고, 또 일련의 전개 과정을 거쳐 오늘에 펼쳐 보이는 결과를 가늠해 본다면 이는 어렵지 않게 확인되는 바일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와 모순은 그의 작업을 지탱해주는 화두라 할 것이다. 그는 이를 자신의 이상과 삶, 그리고 자신이 속한 시대를 통하여 부단히 고민하고 표출하였다. 그것은 극히 이성적인 것인 동시에 다분히 감성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시공을 넘나드는 공간의 구성과 수묵과 채색을 구분하지 않는 분방한 표현, 그리고 다양한 소재에 대한 다양한 선택과 융합 등은 그의 사유를 표출하기 위한 모색의 결과라 할 것이다. 그의 작업이 일정한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마 ‘9.11 테러’로 기록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목도한 이후일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작가는 현실과 이상을 가늠하며 그 괴리와 간극의 부조화와 모순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소박한 욕실 풍경과 거대한 문명의 폐허의 대비는 아마 그 극렬함만큼이나 큰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어 그의 작업은 현상 자체의 대비나 충돌을 통한 메시지의 제시에서 보다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사군자, 특히 매화를 비롯한 식물 등 모필 취미가 드러나는 관념적인 사물과 헬리콥터, 전투기 등 전혀 이질적인 사물들의 공존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관념적인 사물들의 병열을 통해 또 다른 시각적 자극과 관념을 구축하는 것이다. 유교적 덕목을 상징하는 매화는 문인들의 정신적 이상의 상징이다. 작가는 이를 기계문명의 절정인 전쟁 무기들과 대비시켜 그 이상의 허망함과 모순의 현실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라 이해된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 닭을 날아오르게 하였다. 그것은 아름답고 우아한 비행이 아니라 치열한 실존의 확인인 동시에 생존을 위한 처연한 몸부림이다. 물질문명의 상징인 빌딩 숲을 날아오르고 유교적 가치의 지엄한 정신세계를 가로지르는 닭은 생존을 위한 뜀박질과 절규로 그 시공을 날아올랐다. 그것은 풍자라기에는 보다 심각하고, 해학이라 하기에는 무겁고 슬픈 것이었다.
작가의 근작들은 날아오르는 닭에게 새로운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검은 수묵보다 훨씬 깊고 아득한 옻칠의 세계는 작가가 천착하는 새로운 공간이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길어 올린 사변의 색이다. 이는 단순히 재료의 변용이나 조형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조형적 지향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곳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지하듯이 옻은 인류문명과 연륜을 같이하는 대단히 오랜 재료이다. 특유의 물성에서 비롯되는 그윽한 깊이와 불변성 등의 특질은 근자에 들어 새삼 현대미술의 새로운 매재로 각광받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를 통해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질적인 가치를 현상이 아닌 관념으로 수렴하고 있다. 그가 설정한 옻칠의 공간은 이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절대공간인 셈이며, 그것은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식되는 것이다. 반복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 구축되는 침잠되는 공간의 깊이는 매우 깊고 아득하며 또 무작위적인 것이다. 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자체가 일정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조형의 주체이다. 작가가 옻칠에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재료의 특성과 그 독특한 심미 때문일 것이다. 이는 재료와 표현의 변화라는 제한적인 의미를 넘어 그의 사유를 확대할 수 있는 효과적인 공간을 확보한 점이라는 면에서 긍정되는 바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닭은 자신의 반영인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는 소시민적 존재의 처연한 자화상일 것이다. 그는 퇴화된 날개의 치열한 날개 짓을 통해 이상을 지향한다. 봉황은 그의 이상을 대변하는 상징일 것이다. 날지 못하는 새의 현실에서 삶의 곤궁함과 현실의 피폐함을 확인하고, 다시 그 날개 짓을 통해 봉황의 비상을 꿈꾸는 그의 이상은 어쩌면 멀고도 아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옻칠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아득한 침잠의 공간을 통해 짐짓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이상의 아득한 곳에서 자신의 비상을 꿈꾸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작업에서 닭은 봉황으로 읽음이 당연할 것이다. 단지 그것이 아직 삶이라는 현실의 공간을 미처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또 장차 봉황으로서 비상할 닭의 내일을 가늠할 여유나 안목이 없는 현실에서 여전히 닭으로 읽히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신의 삶과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주변에 대한 치열하고 따뜻한 그의 관심과 지향이 비상할 날을 기대해 본다.
■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