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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사라진다. 이 세상이라는 전제 하에 유한함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한편, 각 개인의 관점은 사고의 폭을 넓혀가고 더 깊은 곳에 관심을 두며 세상의 기준을 바라보지만, 생활은 항상 구체적인 과제로서 서로의 관계성을 물으며 보편적인 곳으로 우리를 끌어 내린다. 회화는 이러한 경계에서 구체적인 사물을 형상화하기도 하고 추상의 선과 색으로 좀 더 근원적인 사고의 구조를 다루기도 하는데, 대상이 되는 모든 사물과 인간 스스로의 모습은 사라지며 다만 그 생각이 남을 뿐 결국 그 표현된 이미지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사라지는 것 안에서의 영원함의 시도--. 그 안에서 모든 인문학과 예술은 성장하며, 생활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생활의 범주 밖에서의 예술가의 창조의 행위는 영원함을 꿈꾸는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이 된다.
김상윤 작가가 그려가는 미니멀 계열의 추상회화는 반복적인 색채와 리듬감 있는 직선의 사용으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시각화하고 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줄무늬는 때론 심히 단절되거나 때론 빛과 같은 흰 공백으로 소멸하거나 증폭되면서, 음악에서 악장이 바뀌는 쉼이 되거나 새로운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김상윤의 추상회화는 시각에서 청각으로, 나아가 마음의 치유와 정신의 숭고함으로 이어지는 감각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김제나 작가의 작품은 대담한 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다면체를 통한 추상을 담고 있다. 반복되는 평면과 과장된 원근감은 실재할 수 없는 공간의 형성을 통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단일이 아닌 다원화된 시점은 공간의 요철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으며, 건축적 이미지를 차용하지만 건축적 논리의 시야와는 다른 유희의 환영을 보이고 있다. 이미 몽타주에 익숙한 우리에게 김제나의 비현실적인 건축적 환영은 새롭지만 어색하지 않은 즐거움을 주며 어쩌면 미래에는 구현가능한 도시의 모습에 관한 제시일 수도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혹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가변적 다면체의 미래 모습에 관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특히 간간히 보이는 산수와 같은 풍경은 원색의 대담한 색과 함께 매우 동양적인 감성에 따른 미래의 공간을 생각하게 한다.
김하영 작가의 작품은 무수히 많은 점과 선으로 반복되는 빛의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바탕에는 깊이 있는 색이 있다. 가늠할 수 없는 큰 에너지를 담고 있는 가는 선들은 작은 점으로 응축되는 지점을 만들며 낯선 도형의 모습을 형성하는가 하면, 서로 교차되어 지나치며 확장되는 색의 공간으로 뻗어가기도 한다. 마치 별빛이 이어져 만들어진 별자리와 같은 가상선이 공상 속의 인공물을 은유하며 자유를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 있는 관계를 보여 그 존재를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작은 그간 보여왔던 깊고 추상적인 공간과 빛을 은유하던 선의 일관적인 바탕 위에, 사람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감정과 기분, 정신의 상태를 회화 속에 도입하고 있다.
전현선 작가는 이야기 전달의 가능성, 즉 내러티브의 구성을 회화의 범주 안에서 질문하고 있다. 화면 안에 배치된 대상들이 주고받는 시선과 위치에 따른 상호 관계가 어떤 모호함을 창출하면서 이야기를 형성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옮긴다. 특히 작가는 어린 시절 읽은 동화에 주목한다. 동화는 인류의 집단적 기억이면서 우의적, 은유적, 환상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적 의무를 부여하는 사회 장치이고, 동화가 취하는 서사구조에는 배경과 인물의 고정적 위치가 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 고정적이고 닫힌 요소를 회화를 통해서, 즉 인물과 사물을 회화 속에서 불평형 상태로 위치시키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백한 사건의 일직선적인 진행이 아닌 사건의 전후를 보여주는 듯한 모호의 장치를 통해서 전현선 작가는 새로운 회화의 이야기를 만든다. [옆집갤러리]
김상윤 Sangyoon Kim, Visible Rhythms 006, 2011, digital C-print, Diasec, 56 x 70 cm
김제나 Jena H. Kim, Red Stripes, 2011, acrylic on panel, 22.9 x 30.5 cm
김하영 Hayoung Kim, NIGHT, 2013,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paper, 38.0 x 53.7 cm
전현선 Hyunsun Jeon, 쓰러진 흰 나무 White Tree, 2013, watercolor on canvas, 97.0 x 130.3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