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기획초대
우민아트센터는 2011년 9월 2일 개관 이후, 지역문화예술을 위한 공공적 기여와 창의적 소통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2014년 개관 3주년을 맞이하여, 첫번째 ‘기획초대’와 2012년 이후 두번째 ‘충북연구와 미술’을 연계하여, 충청북도 진천에서 출생한 임충섭 작가의 개인전을 준비하였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설치 미술의 선구자로서 미술사적으로 중심적 위치에 있는 임충섭 작가는 1970년대 초 뉴욕으로 건너가 평면, 드로잉, 설치 오브제 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실험과 조형방법을 꾸준히 탐구해왔습니다. 작가는 자연과 문명을 가로 지르는 경계를 비춤과 동시에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 시도와 함께, 한국과 미국, 과거와 현재, 예술과 삶, 자연과 사회 ‘사이’의 끊임없이 접촉하며 그 ‘사이’의 관계 맺음 또는 ‘사이’의 대화를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2000년부터 최근작을 포함한 26여 점의 작품이 선보이며, 특히 <1000개의 강>이란 뜻의 <Tarae - Thousand River II>은 우민아트센터 전시장의 장소적 특성을 고려해 설치한 작업으로 작가적 역량을 집약적으로 드러낼 것입니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준비하였다는 이번 전시에 담겨진 작가의 작업 세계와 만날 귀한 경험을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보도 부탁 드립니다.
기 간 : 9월 17일 수요일 – 11월 15일 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주 일요일 휴관
장 소 : 우민아트센터 전관
기자 간담회 : 9월 17일 수요일 오전 11시
작가와의대화 : 9월 17일 수요일 오후 3시 진행 최태만(국민대 교수)
초 대 : 9월 17일 수요일 오후 5시
후 원 : 우민재단
미디어 후원 : 중부매일, 청주문화원, KBS청주
문 의 : 코디네이터 조지현
T. 043-222-0357, 043-223-0357 E. info@wuminartcenter.org
귀향(歸鄕): 달아, 높이곰 돋아샤
“나의 작업은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경계를 비춤과 동시에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 임충섭
인연1
내가 임충섭의 작품을 처음으로 본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던 시절 ‘한국미술95’란 제목의 전시를 맡아 진행하면서였다. 당시 이 전시의 기획을 맡은 나는 “사물의 양은 부피이며, 질은 그것의 그림자이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대기원근법 이론에 착안하여 ‘질·량·감’을 주제로 설정하고 당시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보여주던 4·50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이때 동료 큐레이터들도 작가를 추천하고 회의를 통해 참가 작가를 최종적으로 선정하였는데 그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임충섭이란 작가가 명단에 올라왔다. 그래서 임충섭이란 낯선 작가에 대한 조사가 나에게 주어진 과제였지만 1986년 원화랑의 개인전이나 1991년의 국제갤러리 개인전 자료를 뒤적이며 그의 작품에 대한 기초지식을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설치하면서 나는 그가 이지적이면서 구조적인 사유를 하는 독특한 작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은 차갑거나 건조하지 않은, 명징하되 여백이 있는 공간구성을 지향하고 있음도 발견했다. 그것은 젊은 큐레이터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해 겨울, 임충섭은 국제갤러리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시간과 공간, 과거와 현재, 문명과 자연을 가로지르는 작품으로 나의 관심을 다시 한번 자극했다.
인연2
내가 임충섭의 작품을 제대로, 그것도 본격적으로 본 것은 2012년 12월에 개막해 이듬해 2월말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달, 그리고 월인천지’를 통해서였다. 60년대의 앵포르멜로부터 모노크롬을 거쳐 미니멀리즘의 경향을 띤 작품도 있었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넓은 전시공간을 압도하는 설치작품인 <월인천지>였다. 분석적이고 비평적이어야 할 미술평론가로서 자제해야 할 감성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이 설치작업이 나에게 준 인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의 귀향전시라 할 수 있는 이번 개인전에 글을 쓴다는 것에 우선 흥분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과거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느꼈던 ‘앎에의 욕구’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규명하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에 소용돌이쳤던 것이다. 보들레르가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나를 그토록 흥분시킨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비평은 바로 이러한 강한 앎에의 욕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과문한 내가 임충섭의 작품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으니 작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수적인 절차이자 과정임에 분명하다. 비록 반나절의 짧은 시간이었으나마 그의 작품이 설치된 우민아트센터에서 그와 독점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예사로운 인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중국의 화론에 따르면 남종문인화를 개척한 당대(唐代)의 시인이자 화가, 유마거사를 흠모하여 스스로 자를 마힐(摩詰)이라 정할만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왕유(王維)는 어느 날 집 앞으로 지나가는 취주악단의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직관과 통찰에 의해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인데 나처럼 평범한 필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지만 예술에 있어서 논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비약 또는 초월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선불교의 돈오(頓悟)와도 같은 문득 깨달음의 기회가 임충섭에게도 왔던 것이다. 어느 날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속에서 읽었던 책이 계기를 제공했다. 지루한 비행동안 그는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에 대한 비유를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유명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얽힌 논쟁을 읽었다고 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임충섭은 서양 현대미술이 추구해왔던 본질과 가상에 대한 논의가 이미 오래전 조선의 성리학자들에 의해 개진되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2010년에 발표한 <월인천강>이 탄생할 수 있었다.
‘월인천강’은 물론 세종의 명에 따라 수양대군이 지어 바친 『석보상절』을 보고 몸소 훈민정음으로 지은 악장체의 찬불가(讚佛歌)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으로부터 연유한 개념이다. 석가모니의 진리는 하나이지만, 여러 중생을 널리 교화시킨 것이 마치 달은 하나이나 달빛이 수만 개의 강에 골고루 비치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월인천강’인 것이다. 그렇다고 임충섭의 작품에서 이 개념이 석가모니의 깨달음과 성도 후 중생구제를 위해 바친 생애를 칭송하는 종교적 배경과 목적으로 채택된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의 창시자 주희(朱熹) 역시 ‘달이 만 개의 도장처럼 찍혀있다(月印萬川)’는 비유를 통해 태극(太極)의 리(理)가 인간 개체 안에 본성으로 내면화됨을 설파한 바 있다. 인식론적 맥락에서 하늘에 떠있는 달과 물에 비친 달그림자는 실재와 현상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예컨대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여기에 착안하여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로 맹신하는 ‘동굴의 우상’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인천강은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 사상, 즉 하늘의 달이 하나이듯 천 개의 다른 강에 비친 달도 결국은 하나이다는 가르침의 비유이므로 강물에 비친 달은 실재의 그림자일 뿐이므로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논리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유방식이 낳은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달이 하나이듯 그것이 아무리 천개의 강에 비친다 하더라도 물속의 달 또한 하나이다. 물이 출렁인들 달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흔들리는 물에 비친 달은 하늘의 달이 사라질 때 비로소 자취를 감추므로 물에 비친 달 또한 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임충섭은 이러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비유를 통찰함으로써 문명과 자연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그 사이를 관조할 수 있는 <월인천강>을 제시했고, 그것의 자기발전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월인천지>의 거대서사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잇
이번 우민아트센터 개인전에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주제는 ‘사이’이며 그것은 비단 이번 전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탐구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크게 회화, 발견된 물체, 설치 등 세 개의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인 경향으로 구성된 것이다. 먼저 회화의 경우 문, 기와, 단청, 공포(栱包) 등 한국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자유로운 선적 드로잉의 활달함에도 불구하고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단아한 질서이다. 평면 위에 그려진 오브제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색조는 모노크롬 지향적이다. 이런 점은 그의 회화를 평면과 입체, 리듬과 절제된 구조 사이에 위치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액자를 잘라내고 그 파편을 다시 조립한 사이에 형성된 틈이다. 말하자면 이 틈은 사각의 프레임 속에 갇혀있는 선과 형태가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이자 회화가 호흡할 수 있는 숨길인 것이다. 두드러진다. 거기에 비하면 발견된 물체들은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뉴욕거리를 산책하다 주운 평범하고 어떤 점에서는 무가치한 사물이 아주 천연덕스럽게 벽에 부착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견된 사물이 원래 있었던(버려졌던) 장소를 떠나 전시장에 부착됨으로써 그것은 더 이상 폐기물이 아니라 의미를 발산하는 오브제가 거듭난다. 빛은 이 연금술적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사이의 내러티브가 생명을 획득한다. 비천한 것이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현대미술에서 발견된 물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벌써 한 세기 전에 마르셀 뒤샹이 이미 기성품으로 창작과 발견의 경계를 해체해 놓았기 때문에 발견된 물체란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맥락과 해석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1980년 뉴욕의 퀸즈뮤지엄의 전시에 창호지에 바둑판처럼 기하학적인 선을 긋고 그 교차점에 검은 점을 새긴 작품을 출품하여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저명한 미국평론가인 핀커스 위튼(Robert Pincus-Witten)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높은 경쟁을 뚫고 이 미술관의 ‘연례(Annual)’ 전시 참가작가로 선정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물론 작가로서 그의 첫 개인전을 O.K 해리스 갤러리에서 가질 수 있는 기회도 맞이했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미니멀리즘이라고 규정하자 그는 뉴욕근대미술관(MoMA)의 전시장 경비였던 로버트 라이만(Robert Ryman)이 매일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모노크롬을 제작했고, 그의 작품으로 미니멀리즘과 모노크롬은 이미 완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규정에 환호하거나 용인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미 확정된 경향이나 방법 사이를 가로지르는 모험을 시도했으며, 발견된 오브제를 거쳐 무명실로 공간을 직조하는 설치로 나아갔던 것이다. 실타래에서 무명실을 뽑아 공간에 설치하는 작업은 엄밀하게 말해 직조라기보다 차라리 현악기의 줄처럼 공간을 정돈하는 것에 가깝다. 이 정돈, 즉 가지런한 배열은 베틀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건축적 구조까지 결합시키고 있으므로 그의 설치는 복잡하지만 단아하며 완결성이 높은 공간설치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명실이 감긴 실타래, 베틀, 한국의 전통건축구조는 그가 조형언어를 통해 읊고 있는 월인천강이란 시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배열을 그는 문명과 대자연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과 동일시한다. 따라서 사이는 물리적 거리이거나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심리적 이격이 아니라 대립적 관계를 조화로 이끄는 관계의 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연3
언젠가 임충섭은 “한 개인(의) 노스텔지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정서에 에너지가 된다.”라고 말했다. 1941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나 1973년에 뉴욕으로 떠났던 그는 서울에서 몇 차례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나 이번 전시를 통해 어린 시절 마음의 낙원이었던 고향에 바치는 경의를 표현하고자 한다. 한국의 고시가 중에『악학궤범』이 전하는 <정읍사(井邑詞)>는 행상을 떠난 낭군이 위험한 것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한 백제여인의 애절한 심경을 노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달아, 높이곰 돋아샤’는 이제 고향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임충섭이 저 달을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다. 달은 귀향을 꿈꿔온 작가의 소망을 반추한다. 이것 또한 인연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인연은 마냥 운명에 맡길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고향의 산천, 어린 시절 보았던 베틀에 앉은 어머니의 모습, 기와집의 기둥과 대들보, 보름달이 그를 월인천강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고향에서의 전시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니 그가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을 표현한 것이야말로 인연의 베를 짜는 것은 아니었을까. 마침 그의 전시가 보름달 밝은 계절에 열리는 것을 보니 예사 인연은 아닐 것이다.
최태만(국민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임 충 섭 (Choong Sup LIM)
1941 충청북도 진천 출생
1964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73 뉴욕 브룩클린 미술관 미술학교 수료(막스 베크만 기념 장학금)
1993 뉴욕대학교 대학원(NYU) 졸업
개인전
2014 “임충섭 : 사잇 Between”, 우민아트센터, 청주
2012 “임충섭 : 달, 그리고 월인천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1 “CHOONG SUP LIM - Pond ll <Spider, Dichotomy, and Thread>" 신세계갤러리 샌텀시티, 부산
2010 “Choong Sup LIM, Luna”, 학고재, 서울
2009 “Choong Sup Lim, Madang”, 창 아트, 베이징, 중국
2008 “Choong Sup Lim, Object-Perception-Landscape" Atelier705, 서울
2006 “Vanishing-Scape-Fan", 아시아 아메리카 아트 센터, 뉴욕, 미국
“되돌린 버릇”, 국제갤러리, 서울
2005 “되돌린 버릇”, 사비나 리 갤러리, 로스엔젤레스, 미국
2000 “임충섭 : 빛의 건축”, 로댕갤러리, 서울
1999 “실과 흙으로 치유하기”, 국제갤러리, 서울
1997 “화석풍경”, 샌드라 게링 갤러리, 뉴욕, 미국
1995 “임충섭”, 국제갤러리, 서울
그룹전 (2000년 이후)
2011 스코프 바젤, 더브너 모던 아트 갤러리, 바젤, 스위스
아트 파리 2011, 더브너 모던 아트 갤러리, 파리, 프랑스
“텔미텔미 : 한국-호주 현대미술 1976-2011”,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 시드니 현대미술관, 호주
2008 신발 혹은 신발 아닌 미술관, 벨기에
2008 “나침반의 끝”, 하바나, 쿠바
2005 “아모리 쇼”, 산드라 게링 갤러리, 뉴욕, 미국
2003 “2002년 9월 11일 운하 아래”, 아시아 아메리칸 미술 센터, 뉴욕, 미국
"Artists to Artists", ACE gallery, 메리 윌쉬 샤아프 예술재단, 뉴욕
“꿈과 현실 : 한인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한국과 미국의 현대미술”, 스미소니언 국제갤러리, 워싱턴D.C.,미국
“표시 : 한국 현대작가 드로잉”, 개관전, API, 코리아 소사이어티, 뉴욕, 미국
“교차로에서 : 한인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 코리안 컬쳐 서비스, 뉴욕, 미국
스페이스 월드 갤러리, 뉴욕, 미국
2002 “작가에서 작가로”, ACE 갤러리, 메리 윌쉬 샤프 예술재단, 뉴욕, 미국
2000 “새 천년의 항로 : 주요 국제전 출품작가들 1990-9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수상경력
2010 김세중 조각상
1998 우경 문화재단 “올해의 예술가상”
1994 뉴욕시의회 예술기금
1991-2 메리 윌쉬 샤아프 예술재단 “스페이스 프로그램상” 수상
소장기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리움 삼성미술관, 서울
환기미술관, 서울
선재미술관, 경주
국제갤러리, 서울
갤러리원, 서울
일신문화재단, 서울
우민아트센터, 청주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미술관, 캔버라, 호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미국
허시혼미술관 : 스미소니언 인스티튜트, 워싱톤 DC.,미국
신발 혹은 신발 아닌 미술관, 벨기에
스페이스 월드 갤러리, 뉴욕, 미국
샌드라 게링 갤러리, 뉴욕, 미국
환기재단, 뉴욕 / 파리
호주 아시아 아메리칸, 캔버라, 호주
시각예술센터, 타베르나, 이탈리아
프로덴셜 보험, 뉴욕, 미국
시드니대학교 파워 미술연구소, 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