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고무신, acrylic on canvas, 160x129cm, 1999,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하정웅6차기증기념전 ‘강경자-人間萬事’
2014.11.25 - 2015.03.22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제5, 6전시실
출품작가 강경자
작품수 36점
주최 및 후원 광주시립미술관
강경자의 세계, 유머로 풀어낸 인간만사
김희랑 |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재일교포 3세 화가 강경자전은 하정웅 제6차 기증을 기념하는 첫 전시이다. 강경자의 작품은 지난 1999년 ‘재일의 인권전’을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인 후, 2003년 하정웅 기증으로 광주시립미술관에 두 점 소장되었다. 올해 2014년 37점의 작품이 추가 기증됨으로써 강경자 예술세계 전반의 윤곽을 살펴 볼 수 있게 되었고, 향후 재일작가 연구의 한 가지를 추가하게 되었다.
강경자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그곳의 조선중고급학교에서 수학한 후, 고려미술전과 재일한국 조선현대작가미술전 등의 전시를 통해 재일화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강경자는 시기구분 상 재일교포 작가 3세대에 속하는 여성작가로, 기존의 재일화단이 이념을 통한 재일인 정체성 회복에 힘썼다면, 그녀는 이와 달리 순수한 미적대상탐구로서 모더니즘 미술을 수용해 발전시켜 왔다.
강경자 작품의 주제는 인간이다. 강경자는 인간 주변에 존재하는 삶의 다양한 형태와 방식, 그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발생하는 감정과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신기하게도 조물주가 만든 인간들은 서로 닮아있지만 제 각각이고, 같은 집단이나 테두리 안에 있어도 각기 다른 사고와 시각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만사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주체와 객체에 따라 무궁무진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또한 아무리 기계문명이 발달한 최첨단 스마트 시대가 될지언정, 자본주의의 범람으로 시대가 각박해질지언정 우리사회를 버티게 하는 힘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물질문명의 발전이 극에 달할수록 ‘나는 왜 사는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같은 삶의 방식과 철학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간다. 많은 곳에서 인문학 강연이 열리고 인문학 서적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모든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인간이다. 강경자 또한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틀, 상태, 입장 등에 대해 예민한 관심을 두었다. 특히 재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여성으로서 강경자는 보편적인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 외에 다소 소외되거나 불편한 상황과 마주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녀는 미술을 통해 자신을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기를 갈구했고, 암담한 현실 안에서 희망을 꿈꾸었다. 강경자는 미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자신의 문제와 인간사의 단편들을 표현해 내며 자기치유의 노력을 해왔다.
강경자는 제도권의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의 재현을 넘어선 독특한 표현법과 색채감각을 통해 독창적 예술세계를 구현해 왔다. 대범한 화면구성과 대상의 자유로운 묘사 그리고 강렬한 색채 사용은 그녀의 그림을 매우 개성적이고 현대적인 경향으로 분류하게 한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 중의 특정 순간을 설정하여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전개시켜 나간다. 특히 화면 속에 등장하는 사물과 대상들을 기호화하고 상징화함으로써 사건과 감정 상태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땅콩은 속을 감추고 있는 인간을 나타내고, 실타래는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된 인간사의 관계를 비유한다. 사회적 혹은 개인적인 사건을 특정 숫자나 문자로 표기하도 하고 고무신, 지네, 인형 등을 통해 인간의 상황과 심리를 반영하기도 한다. 특히 일러스트레이션 또는 만화의 한 장면과 같은 그녀의 그림은 매우 유머러스한 풍경으로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마치 인형이나 가상세계 속 아바타와 같은 인물 표현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다 객관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특정 상황을 나열해 놓은 화면 구성은 미로와 같이 복잡하고 분주해 보이지만, 일종의 수수께끼 풀기와 같은 재미를 제공하며 보는 사람마다의 추측과 상상, 그리고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재생산하게 한다. 흔히 솜씨 있는 입담을 보이는 언어의 마술사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쉽고 간단한 비유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강경자의 경우가 그렇다. 강경자는 인간만사의 복잡한 풍경과 감정 상태를 담아낼 적절한 상황을 선택하고, 재치 있는 비유를 사용할 줄 아는 작가이다.
강경자 작품은 매우 유머러스하다. 그러나 작품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리 즐겁거나 가볍지만은 않다. 인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간사가 그러할 것이고, 재일 디아스포라로서의 삶이 그러할 것이다. 많은 작품들에서 강경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자신을 둘러싼 세계 즉, 재일교포 혹은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들의 삶의 양상, 이 시대의 금기와 자신의 숙명을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강경자의 그림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 인간사 희로애락과 새옹지마의 단편들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강경자가 자신이 속한 테두리에 머물지 않고 독창적인 표현형식을 개발하고 내적체화 과정을 통해 특유의 예술세계를 다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정웅 컬렉션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강경자는 2000년 이후 회화이외에 설치작품으로까지 작업영역을 확장시켜가고 있다. 그녀의 그림이 재기발랄하고 많은 상상을 이끌어내듯이 강경자의 창작열과 실험정신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길 바란다. 재일 화단의 일반적 경향을 벗어나 개성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강경자의 발견은 재일작가의 스펙트럼을 한 층 더 넓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깔끔쟁이,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130.3cm, 1994,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강경자-비밀,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162.2cm, 1993,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강경자-점을 보다,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130.3cm, 1994,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강경자-지네,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130cmx2pieces, 2000,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강경자-편지,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130.3cm, 1997,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강경자-한글, 캔버스에 아크릴릭, 60.6×60, 2002,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