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시 명 : 개관1주년 기념전 <simple 2015 장욱진과 김종영>
❍ 전시기간 : 2015. 04. 28(화) ~ 08. 16(일)
❍ 개 막 식 : 2015. 04. 28(화) 16:00
❍ 장 소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전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211)
■ 전시초점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개관 1주년 기념전시
▶ 연례전 [SIMPLE]의 첫 번째 전시로 장욱진-김종영의 심플정신을 선보임
▶ 자연과 생명에 대해 연구한 화가 장욱진과 조가가 김종영의 추상정신 조명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개관1주년 기념전
<simple 2015 장욱진과 김종영>개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개관 1주년 기념전시로 <simple 2015 장욱진과 김종영>전을 개최한다. ‘심플(simple)’, 심플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소박함과 순수함이 함께 의미를 더한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장욱진의 이러한 ‘심플(simple)’ 정신을 잇고자 매년 [SIMPLE]에 대해 연구,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전시로 <simple 2015 장욱진과 김종영>을 선보인다.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나무, 집, 새, 아이, 가족 등 일상적인 소재를 순수하게 그리며 그 속에서 예술적 이상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 온전한 자연을 표현하려고 하였고, 자연의 순수한 세계에서 욕심내지 않으며 ‘심플’한 그림을 그렸다.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은 한국의 추상조각을 개척한 1세대 조각가이자 엄격하고 단순화된 작품들로 순수한 추상예술의 세계를 선보였다. 그는 서구 추상미술의 흐름에 대한 반성을 통해 나무, 돌, 철, 금속, 석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자연적이고 유기체적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는 각각의 질료가 가진 특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이번 전시는 화가 장욱진의 유화작품 27점과 김종영의 조각작품 17점이 선보인다. 치열하고도 고독한 자기절제와 수행을 거친 장욱진과 김종영 두 거장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순수성을 향한 예술의 강렬한 열정인 ‘심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관람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changucchin.yangju.go.kr)
전시소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개관 1주년 기념전시로 <simple 2015 장욱진과 김종영>전을 2015년 4월 28일에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심플(simple)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 온 화가 장욱진과 김종영의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심플(simple)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심플에는 소박함과 순수함의 의미가 함께 내재해 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장욱진의 이러한 ‘심플(simple)’ 정신을 잇고자 매년 [SIMPLE]에 대해 연구,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전시로 <simple 2015 장욱진과 김종영>을 선보인다. 치열하고도 고독한, 철저한 자기절제와 수행을 거친 장욱진과 김종영 두 거장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순수성을 향한 예술의 강렬한 열정인 ‘심플’을 목도하고 있다.
장욱진 (張旭鎭, 1917-1990)
: 장욱진은 나무, 집, 새, 아이, 가족 등 일상적인 소재를 순수하고 소박하게 그려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정립하였다.
장욱진, <얼굴 A Face>, 캔버스에 유채, 40x30cm, 1957
붉은색 바탕에 화면가득 동그란 얼굴, 나무기둥과 같은 목과 윗면의 집, 해와 달을 표현한 유쾌한 작품이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의 단순화한 기하학적 도형을 통해 얼굴, 눈과 코 집을 표현하였는데, 동그란 얼굴이 나무가 되기도 하고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 어귀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장욱진의 추상은 형태가 가진 본질을 표현하면서도 전체적인 자연과 인간의 삶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장욱진, <무제 Untitled>, 캔버스에 유채, 30x23cm, 1974
화면 중앙의 검은색 집을 중심으로 위에는 해, 아래는 사람이 서 있다. 화면은 수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집 안의 사람은 턱을 괴고 엎드려 있다. 검은색 안의 사람은 긁어내는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장욱진의 작품은 이와 같이 단조로울 수 있는 수직의 구성안에서 변화와 조화를 추구하여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조형미를 선보이고 있다.
장욱진, <천막 A Tent>, 캔버스에 유채, 37.5x45cm, 1973
장욱진의 <천막>은 화면가득 사각의 공간 안에 세 사람이 앉아있거나 서있는 모습을 그렸다. 하늘에는 옅은 해와 새가 있다. 덕소시절 강가에 천막을 치고 휴양하던 사람들을 그린 이 작품은 간결한 선으로 구성되어 일상생활을 바라보는 장욱진의 심플한 예술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김종영 (金鍾瑛, 1915-1982)
: 김종영은 자연적이고 유기체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나무, 돌, 철, 금속, 석고 등
다양한 재료가 가진 매체적 속성 안에서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김종영, <작품 78-28>, 돌, 20x14x27cm, 1978
재료가 가진 특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미의 원형을 삼는 김종영의 작품은 추상조각의 관념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본질을 추구 하였다. <작품 78-28>는 단단한 돌이 가진 질료적 특성을 최대한 살리되 형태의 근원을 기하학적 사각의 직면에 두고 있으며 그 안에서 구성적 리듬을 통해 조각의 조형미를 표현하고 있다.
김종영, <작품 71-6>, 돌, 25x13x23cm, 1970년대 초반
김종영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심은 자연의 질료를 유기적 생명체로 환원시킨다. 작품의 균형미와 조형미는 생기가 없는 심메트리(Symmetry, 대칭)가 아니라 아심메트리(Asymmetry, 비대칭)틀 통해 생성된다. 자연을 바라보는 동양의 철학적 부드러움과 변화는 김종영의 작품을 불각(不刻)의 미로 향하게 하였다.
김종영, <작품 74-9>, 나무에 채색, 12x21x69cm, 1974
인체조각으로부터 시작한 김종영은 수많은 인체드로잉을 통해서 인체안에 있는 생명력과 부드러움을 연구하였다. 그는 인체를 소우주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 자연과 질서, 비례, 조화가 있다고 보고 이를 추상화시켰다. 김종영에게 인체의 추상은 기하학적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서부터 드러나는 자연이자 조화이고 살아있는 생명의 표현인 것이다.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에 속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몸을 온통 새까맣게 칠하고 눈만 하얗게 그린 까치로 최하점수를 받았으나 일본인 미술선생의 배려로 까치 작품을 “전일본소학생미전”에 출품하여 1등상을 받는다. 그는 부상으로 수여된 유화물감을 가지고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 학생미술전람회(1937)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1939년 동경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는 길로 들어선다. 한국전쟁 이후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54-1960)로 일하였으나 6년 만에 작품창작을 위해 스스로 그만두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동화적이고 심플한 선 표현과 독창적인 색채를 선보였다. 1963-1974 덕소, 1975-1979 명륜동, 1980-1985 수안보, 1986-1990 용인 마북리의 화실에서 작품활동을 하였고, 1990년 12월 27일 74세로 선종하였다. 장욱진은 “나는 심플하다”라는 그의 말대로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평생을 아이, 어른 모두 좋아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은 1915년 6월 26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다. 고향 창원에서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장발선생의 안내로 조각의 길을 택하여 일본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1948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에 봉임, 1980년에 정년으로 퇴임하였다. 김종영은 6.25전쟁 중인 1953년 3월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무명정치수無名政治囚를 위한 기념비>란 제목의 국제조각공모전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입상하여 한국 미술계에 희망을 심어 주었다. 1954년부터 철재, 청동, 목재, 석재와 같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추상조각의 길을 열었으며, 이후 채색조각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한국 조각의 선구자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김종영은 혼탁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한국미술이 나아갈 바를 앞서 보며 고고한 창작의 발자취를 남겼다. 오늘날 김종영은 선비 작가, 교육자, 국제적인 조형언어를 작품으로 표현해낸 조각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1974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0년 <국가유공자사후대통령포상>과 <4.19 유공자건국포장>을 받았다.
장욱진과 김종영의 심플(simple)
백 곤(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수석학예연구사)
1960년대 한국 미술계에는 ‘추상미술’이라는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현대성, 모더니티의 세련미는 서구의 합리적 이성주의로 향했다. 재현의 형식이 인간의 시각에서 탈각되어 정신과 합쳐졌을 때 추상의 의미는 이성의 선입견을 통해 가장 모던하고 세련된 형식이 되고자 하였다. 이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른바 추상실험을 하였다. 자연과 일상을 그리는 화가 장욱진도 그러하였으나 그에게 ‘추상’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각실험이었다. 즉, 추상이 사물 속에 내재해 있는 정신적인 본질을 찾고자 한 것에 동의하지만 장욱진은 ‘사실’을 새롭게 보아야 하며,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순수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장욱진은 평생을 두고 일상성에서 ‘추상’의 의미를 발견해내고 그 안에서 삶을 살고, 삶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자연 속에서 보편자의 정신을 찾고자 하였다. 장욱진의 추상은 사실을 바라보는 화가 그 자신의, 그리고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심상 속에 파고드는 정서적 간결함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간결함은 모든 사물을 사물답게 바라볼 수 있는 미적정서이자 동시에 사물에 붙어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적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장욱진에게 ‘추상’은 사물의 개념적 축약이 아니라, 사물의 근원으로 향하는 가장 자연적인 예술이었다.
김종영 또한 모든 사물로부터 발견되는 그것 자체의 자연적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추상성’을 사유였다. 김종영의 추상조각은 형식상으로 크게 기하학적인 선과 유기적인 곡선형으로 나누는데, 실상 이러한 분류보다 그의 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추상성에 대한 조형의식 즉, 사물을 향한 사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김종영의 추상은 형이상학의 개념이 아닌 자연과 생명, 일상의 환경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간결하고 순수한 조형의식이자 고요한 절제의 미로 읽혀진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과 생명, 일상의 삶이 엄격하고도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김종영은 사실에 입각한 장욱진의 추상성과는 사뭇 다르지만 단순미, 심플의 개념으로 서로 통한다. 자연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우치고자 한 자기 수행적인 삶, 생명에의 무한한 애정, 무위자연과 동양적 사상의 심취는 두 거장의 예술세계를 하나로 이어준다. ‘심플(simple)’, 심플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소박함과 순수함이 함께 의미를 더한다. 장욱진과 김종영의 예술과 삶에서 보여준 ‘심플’, 두 거장의 ‘심플’ 정신은 예술의 가장 극점에 도달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그리하여 인간의 일상적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가장 훌륭한 예술정신 그 자체가 아닐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장욱진의 이러한 ‘심플(simple)’ 정신을 잇고자 매년 [SIMPLE]에 대해 연구,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전시로 <simple 2015 장욱진과 김종영>을 선보인다.
1. 김종영의 심플, 사유의 원형
"나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든다는 것-이런 따위의 생각은 갖고 싶지 않다. 기술과 작품의 형식은 예술을 위해서 사용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단순한 것이 좋다.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은 한국의 추상조각을 개척한 1세대 조각가로 엄격하고 단순화된 작품들 로 순수한 추상예술의 세계를 선보였다. 김종영은 1930년 장발(1901-2001)이 지도하고 있던 휘문학교에 입학하여 그의 제자가 된다. 이후 동경미술학교를 입학하는데 스승 장발의 권유로 조각을 택하게 된다. 장발은 일찍이 한국 미술의 조각의 확장과 조각분야의 인재를 알아 본 선각자였다. 당시 한국인 최초로 동경미술학교에서 근대 조각기법을 배운 독보적인 조각가 김복진(1901-1940)을 통해 인체조각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의 이른 타계와 김종영의 두각은 한국 조각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1953년 런던 테이트갤러리에서 개최한 국제조각공모전에서 김종영은 구상조각 <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로 한국 최초로 입상하였으나, 이후 추상으로 방향을 바꿔 추상조각의 선구자가 되었다. “나는 일찍이 주로 인체에 한정되어 있는 조각의 모티프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가져왔다. 예술이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감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그후로 오랜 세월의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숙제가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과의 조화 같은 문제도 어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김종영의 조형의식의 변화는 현대조각의 확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의 추상은 서구의 개념적 추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김종영의 조각은 브랑쿠시의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작품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브랑쿠시가 추구하고자 했던 정대칭의 완벽한 구조에서 벗어나 비대칭의 생명성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즉, 김종영은 심메트리(Symmetry, 대칭)가 작품을 평면화하고 운동성과 입체의 생기를 잃게 하는데, 반대로 아심메트리(Asymmetry, 비대칭)는 동적인 변화를 수반하여 조화롭게 만든다고 보았다.
“지난 십 년 동안은 형체와 사물의 순수성을 탐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실험적 노력을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은 사물의 전체와 종합성을 등한시했다는 데 불과하였으며, 지나친 단순은 매양 단조(單調)와 빈곤으로 되어버려 결과적으로 작품은 사물의 전체성을 갖추지 못한 부분적 작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나는 자연을 관찰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인체나 식물에서 불순(不純)을 발견하지 못했다.”
서구 추상미술의 흐름에 대한 반성을 통해 김종영은 더욱 자연적이고 유기체적 작품을 제작한다. 그는 나무, 돌, 철, 금속, 석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였는데 각각의 매체가 가진 속성을 연구하고 또한 그것을 뛰어넘어 온전히 그의 예술정신에 합일시키는 수행적 태도를 보였다. 김종영의 심플은 각각의 질료가 가진 특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돌과 나무의 자연적 형상을 무시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추상성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즉, 김종영의 단순함은 자연의 물체가 가진 가장 순수함을 발견하는 것이자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물질의 원형을 돋보이게 하는 예술행위이자 사유인 것이다. 그렇기에 김종영의 추상조각은 개념을 향한 서구예술의 순수함이 아니라, 자연과 합일된 동양적인 순수함으로 향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의 조각을 ‘유기적 추상’이라 부른다. 그의 예술세계는 사대부 가문의 유교적 배경과 도가적 무위자연, 불교적 선사상에 영향이 있다. 그의 작품을 ‘불각(不刻)의 미’라고 부르는 것에는 또한 이러한 사상적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순수함을 찾고자 하는 김종영의 심플은 진정 심플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2. 장욱진의 심플, 그대로의 순수함
“여름의 강가에서 부서진 햇빛의 파편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수면 위에 떠도는 아지랑이를 타고 동화가 들려올 것 같다. 물장구를 치며 나체로 뛰노는 어린아이들이 모습에서 적나라한 자연을 본다. 그리고 천진했던 어린 시절에의 향수가 감미롭고 서글프게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치스치는 여름 강바람 - 이런 것들이 나 역시 손색없이 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공허하지 않다.”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자연 속에서 예술적 이상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 온전한 자연을 표현하려고 하였고, 자연의 순수한 세계에서 욕심내지 않았다. 추상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개념화하거나 패턴화하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자연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기에 그는 심플한 그림을 그렸다. “나는 심플(simple)하다”라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의 작품이 온전히 이를 보여주고 있다.
"내 평생에 가장 큰 죄를 위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그건 아주 고약한 거예요. 욕은 욕대로 맛이 있는 거요. 욕은 참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욕은 자꾸 먹어야 그림이 되는 거고, 근데 요새 말은 위선으로다 뱅 돌려서 이상해. 환쟁이가 그런 말에 솔깃하기 시작하면 붓대 놓아야 한다구. (…) 화가면 화가, 학자면 학자 그래야지 요것도 좋으니까 조금 집어넣고 조것도 조금 섞어놓고 그럼 다 똑같애져요. 그 버릇, 그 버릇으로 그림도 그리지. 우리는 뭘 설정해놓고는 그림 못해."
그는 평생 ‘심플함’을 외치며 심플하게 살았다. 체면보다 진정성 있는 순수함을 추구했고, 그 순수함을 작품에 온전히 쏟아 부었다. 순수하다는 것은 그가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부터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위선들을 하나씩 걷어냈다는 말이다. 또한 심플하다는 것은 이것저것이 섞여 있는 상태가 아니라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단지 하나, 사물의 뼈대만 남았다는 말이다. 이 사물의 뼈대가 바로 장욱진이 평생에 걸쳐 완성하고자 한 순수함이다. 사물 그대로의 순수함, 인간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작품 그대로의 단순함이 바로 화가 장욱진이 추구하고자 했던 심플함이다. 이러한 심플함에는 그가 생명에 무한한 애정을 품었던 인본주의적 사상과 도가적 무위자연의 이상적 세계관, 그리고 불교적 깨달음의 비워냄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동경 제국미술학교를 유학한 그가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벗어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심플한 삶을 살기 위해 평생을 치열하게 고뇌한 것은 분명 심플함을 진정으로 추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장욱진의 추상은 본질 그대로의 형상을 추구하는데 예술가이기에 특별하지 않은,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똑 같이 바라보이는 사물들을 사물들로 그렸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어린아이의 낙서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초상이 되기도 하고, 어느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순수한 그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원히 늙지 않은 ‘일곱 살’ 화가 장욱진의 심플은 정신적으로 맑고 깨끗한, 순수이상의 모습 그대로 친근하게 우리들 곁에 존재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선구자 장욱진과 김종영의 심플정신은 시대적 흐름을 넘어 현대에 고스란히 전승되어야 할 예술철학이다. 심플은 미술의 역사에서 개념을 걷어내고 비워내는 동양의 정신이자 한국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제시한 시대의 미학으로 이해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자연의 식물이 땅 속에서 솟아나 하늘 위로 올라가듯이, 또한 바람이 불어 나무가 옆으로 흔들리는 듯이 자연의 이치에 맞는 심플함은 두 거장의 심미안을 통해 간결한 추상성으로 다가온다. 심플에 대한 이러한 추상성은 양식적인 차원이 아닌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조자이자 진심어린 예술가의 구도적인 순수함을 향한 의지일 것이다. 자연과 인간, 간결한 선과 색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 화가 장욱진의 유화작품과 돌과 나무, 비정형과 유기적 추상을 선보인 조각가 김종영의 순수하고 간결한 조각들은 그러하기에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하고도 고독한, 철저한 자기절제와 수행을 거친 장욱진과 김종영 두 거장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순수성을 향한 예술의 강렬한 열정인 ‘심플’을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