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과사전의 기묘한 이야기를 재구성한 김수연의 개인전 <고스트 캐스트>
- 회화의 주제를 직접 만들어 재현하는 김수연의 개인전 <고스트 캐스트>
갤러리 2에서 김수연의 개인전 <고스트 캐스트>가 9월 3일부터 10월 10일까지 열린다. 존재와 부재의 모호한 경계를 회화로 박제시키는 김수연은 이번 전시에서 백과사전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하여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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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All times of the month, 60 x 60cm, oil on canvas, 2015
이미지는 부재에 저항한다. 인간은 부재로부터 오는 공허함과 불확실성을 몰아내고 ‘존재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사용했다. 김수연의 이전 작업 <새도우 박스>는 조류도감에서 선택한 새의 그림을 입체물로 만들고 사진을 찍어서 그 이미지를 다시 회화로 복원시켰다. 입체물은 파기되고 회화만 남았다. 폐기된 새의 운명을 슬퍼하지 말라. 그들은 이미지로 영원히 부활할 것이다. 애도의 시간은 충분하다.
김수연, Bristlecone pine, 90.9 x 60.6cm, oil on canvas, 2015
이번 개인전에서 김수연은 도감이 아닌 백과사전을 선택했다. 도감의 그림과 백과사전의 삽화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류도감에서 새의 구조는 유형화된다. 종의 공통된 특징과 성격을 결합해 그 종을 대표하는 가상의 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에 반해 백과사전은 인류의 지식을 수집, 분류해서 요약한 책이다. 여기에서 삽화는 하나의 증거로써 이야기의 사실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백과사전의 삽화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작가의 이전 작업이 도감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재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백과사전을 통해 허구가 아닌 사실을 재현한다.
김수연, Saturn, 40.9 x 53.0cm, oil on canvas, 2015
김수연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편찬한 『세계의 상식백과 : 재미있고 요긴한 이야기,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들』에서 작업의 소재를 선택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는 1922년 미국에서 출간된 잡지다. 건강, 생활에서부터 과학, 문화, 역사 등 세계의 주요 서적에서 발취한 흥밋거리를 요악해서 소개했다. 그중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 이야기, 미스테리한 사건 등을 모아 편집한 것이 『세계의 상식백과』다. 작가는 그 책에서 본인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골랐다고 한다. 그것은 17세기 천문학 천재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의 ‘행성의 공간배치 모형’, 독일 잠수함 U-보트 65에 얽힌 유령설, 과학계에서 5000년 이상 산 것으로 확인되는 캘리포니아 소나무에 대한 내용이다.
김수연, Space model, 100 x 100cm, oil on canvas, 2015
선택된 이미지의 출처는 다르지만, 작가의 제작 방식은 변함이 없다. 이미지를 출력하고, 종이 입체물을 만들고, 사진으로 찍어서 회화로 표현한다. 그리고 입체물을 파기한다. 작업 과정에서 작가는 스스로에서 새로운 과제를 부여했다. 특정 이야기의 기념품 제작을 의뢰받았다고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람들은 여행기념품을 간직한다. 여행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록하고 기념한다. 기억을 상기시켜주고 증명해줄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여행을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포장해줄 기념품은 조약하고 엉성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여행자의 기억과 애착이 그 공백을 메꿔준다. 여행지의 기념품을 수집하는 것과 김수연의 회화작업은 지금 눈앞에 보이진 않지만, 이미지를 통해 존재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종이 입체물은 파기되고 회화만이 간직되는 상황은 다시 그 여행지를 가는 것보다 기념품에 애착을 보이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김수연, U-BOAT 65, 72.7 x 100cm, oil on canvas, 2015
김수연은 이번 전시명을 <고스트 캐스트>로 정했다. 백과사전에 기술된 이야기들이 ‘이름뿐이고 실제는 없다’는 의미를 가진 ‘유령(Ghost)’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거기에 ‘그림자를 드리우다’, ‘주조하다’라는 의미의 ‘캐스트(Cast)’를 덧붙였다. 사실 이미지의 어원인 ‘이마고(Imago)’도 귀신, 유령이라는 뜻이다. 이미지는 사라져 버릴 불확실한 존재를 가두고 박제시키려는 욕망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생명체이지만 유형화된 가상의 새를 보여주는 조류도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증명하는 백과사전, 과거를 상기시키고 증명하는 기념품 그리고 유령의 이미지는 ‘존재와 부재’ 혹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있다. 이 모호하고도 엄격한 경계는 회화로 점철된다. 김수연의 회화는 그 삼엄한 경계 위에 서 있다. 날이 선 그 예민함과 긴장감이 회화의 가치와 목적을 환기시키며 가능성을 확장한다.
김수연, Universal block, 162.1x 259.1cm, oil on canvas,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