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5-11-04 ~ 2015-11-10
조혜정
무료
02.733.1045
존재함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사유적 고찰
홍경한(미술평론가)
1.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인간은 명백하게 불확정적이고 혼란스러운 존재이며, 차이와 차별이 공존하는 세계를 번거롭게 오가는 일시적 여행자에 가깝다. 대개의 사람들은 때론 고달프게, 그러면서 예민하고 날카롭게 하루를 살며,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와해되는 탈구조주의적 상황 속에 거주한 채 가끔은 허구와 경험으로부터의 실체적 자각을 겪는 존재로 머물곤 한다. 이는 습속 적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선 끔찍하기까지 한 삶이라는 보편적 속성을 심어주는 환경에 의탁하며 그 내부에 거주하는 한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조타를 맞춰야할지 알 수 없는 여정, 그리고 표류하는 자아를 들춰낸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은 채 성찰의 언어로 삶의 환희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의 경주는 뒤엉키고 혼재된 삶을 이끌고, 인식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임을 깨달음으로써 새로운 환경을 구축한다.
위와 같은 기술(記述)은 작가 조혜정의 연작들에서도 읽을 수 있는 외형적인 인상이다. 즉, 작가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과 장소, 혼재된 기억과 실체, 가공된 공간의 틈새에서 발현된 조형적 서술(敍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대작 <Mt. Sinai>(2015)에서처럼 종교적 상징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의도를 지니거나 신실한 태도로 삶을 지속하지만 실제화 되지 못한 비의도적인 것으로부터 포박된 측면도 배척하지 않는 존재로써의 삶을 그려낸다. 추상성을 내재하고 있으나 감각적으로 표현된 <올림픽공원>(2015)에서처럼, 또는 다소 초현실주의적인 여운을 갖춘 <인사동 화단>(2015) 등의 작품에서처럼 외향적-자기지시적인 언어의 결박에서 잉태되는 존재, 존재되지 않는 존재로써의 삶을 언급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포착되는 ‘존재성과 비존재성’, ‘존재되지 않는 존재성’에 관한 화두를 자신의 삶과 연계된 현실의 다양성을 의식한 상태로 수사적 동일성을 찾는 대신 일상의 ‘장소’에서 마주하는 의제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며, 거칠거나 투박하지만 섬세하게 화면 속으로 끌어 들여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 격랑에 찬 조형적 표현 아래 흡사 ‘고해’처럼 펼쳐 놓는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삶의 투영이 진실하게 이뤄지며 미를 가장한 시각적 쾌락, 혹은 유희에 불과한 매개로 남겨질 가능성과는 거리를 둘 뿐만 아니라, 되레 장소를 근거로 사유를 담아내고, 편애된 가치에서 풍요로운 자각과 기억의 범주를 읽어낸다 해도 그르지 않다. 그것이 설사 익숙한 듯 낯선 풍경, 심적 정경일지라도 말이다.
2. 예술 표현에 있어 그 방식이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든, 어떤 페르소나로 나타나던 예술가의 경험과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애초 자아에서 발현된 모든 예술적 테제는 작품으로 순연되어 나타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수순임을 인정한다면, 그의 작업이 어떤 지점에서 미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은 여타 작업들과의 변별력을 구성하는 기초가 된다.
이와 관련해 조혜정의 작업은 명징한 실존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장가계(장자제)>(2015)처럼 몇몇 발길이 머문 장소를 필두로 한 기억의 변형이 이뤄지는가하면, 걸음이 닿은 적 없는 장소를 통한 실제와 인위의 교합, 이성과 상상력이 직조된 채 설정된 실체와 존재성의 교집 등도 결국은 작가 자신의 실존성을 텃밭으로 개간되는 지류일 따름이요, 이것은 항상 각각의 작품마다 특수하고 개별적으로 부상한다. 또한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가 외적으로 부유하는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며 이 변주 역시 일정한 장소성을 통해 선택되고 있음을 고지한다.
실존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존재형식에 대한 내적 문제를 언급하며, 의미에 대한 탐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조혜정의 작업도 같은 범주에 놓인다. 다만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에선 그 실존의 문제가 마치 빛이 자연 아래 물들어 향기를 피우다 사그라지듯 조용히 응시되고 의탁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비록 짙은 에너지로 인해 투박함이 앞서 눈에 띄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의지의 존재, 실체적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존재’의 역설이 감지된다는 것도 하나의 사실이다. 그건 신(神)일 수도 혹은 자기 자신의 믿음에 근거하는 무엇일 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 해서 귀납되는 것은 ‘현존재’라는 것과 맞닿는다. 나로부터 시작된 존재성에 대해 우리가 자기의 본질이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하여 ‘창조’한 세상과의 조우이며 단순한 이해를 넘어선 깨달음으로써의 나를 지향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자기를 상실(loss of self identity)하게 됨을 드러내는 장치이고, 여기서 그는 동시대인으로써의 기억과 판단, 실제적 경험과 가공된 기억의 그리드임을 회화 언어로 보여준다. 그리고 조혜정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장소들을 소환한다.(이는 조혜정 작업에서 발견되는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방식이다.)
물론 기명 또는 무명으로 기록되는 조혜정의 장소들은 화자와 사물 및 타자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종의 매개로 작동하고 궁극적으론 나와 관련된 장소가 곧 실존의 세계, 세계 내 존재로의 세계로 유도하는 장치로 효용 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조혜정이 언급하고 있는 그 많은 장소들은 결국 실존에 대한 선택을 제한·제약하는 구체적 상황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고의적으로 인지해낼 수 있거나 인지토록 안내하는 매개임을 알 수 있다.
3. 인간 존재와 인간적 현실의 의미를 그 구체적인 모습에서 다시 파악하고자 하는 조혜정의 근작들에 있어 두드러진 특징은 공간성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회화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구성요소가 다분히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의도와 의미의 중첩이 간결하게 혹은 아주 디테일하게, 매우 상징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목도하게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앞서도 잠시 언급한 에너지가 공간과 사물의 의미, 시간성마저 채우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 공간을 비워둔 채 외곽선을 타고 흐르는 면과 선이 상주하고 있는 <논두렁>(2015)이나, 공간 속에서 차분하게 질서화 된 <그곳>(2015) 등의 작품들이 그 한 예이다.
시각적 환영과 부유하는 에너지의 교합이 조혜정 작업의 인상적 결정을 돕는다면, 형태는 구체적으로 그의 작품 외부와 내부를 연결 짓는 브리지 역할을 한다. 기실 그의 작품에는 한껏 휘몰아치는 거센 형태적 흐름-사실적인 형태와 속내가 보일 것만 같은 빈 공간을 함유하는 음의 형태가 공존한다. 사실적인 형태는 <그림자가지지 않는 숲>(2015)에서, 거세고 추상적인 형태는 <경주>(2015), <올림픽 공원> 등에서, 내부와 외부를 잇는 다리로써의 형태는 <Mt. Sinai>에서 매우 적절하게 읽힌다.
그는 이 모든 형태를 골고루 융합시켜 공간성과 시간성을 구축한다. 즉, <인사동 화단>에서의 여백이 일종의 형식적-추상적인 공간이라면 <Mt. Sinai>에서의 작은 별과 같은 기호, 하단으로 내리 뻗은 도원은 내용적-추상적 공간임을 포박하는 기능을 지닌다. 반면 <그곳>과 <그림자가지지 않는 숲>이 가시적 시간성과 공간성을 뒤로 한 채 존재하는 실제적인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면, <Mt. Sinai>은 그 이면까지 넘보게 만드는 작업으로 손색이 없다.(당연히 여기서 또한 그의 에너지는 여전히, 지속적으로 그 사이의 빈틈을 메운다) 이와 같은 각각의 작품에 대한 분리적 해석은 작품 자체가 가지는 ‘양의 공간’과 맞물린 ‘음의 공간’을 지정하는 또 하나의 요소임을 가리킨다.
이 중 대표작이랄 수 있는 <Mt. Sinai>은 형태와 색감, 구성자체로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함유하고 있는 반면 허구성과 진실성을 동시에 건설하는 특징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히 조혜정 회화가 갖는 고유의 면, 즉 형상성을 타고 흐르는 면들이 하나의 선이 되어 실루엣처럼 빛을 내게 하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 작품의 외곽선은 실제의 외곽의 면이요, 선적인 개념에서 방향과 면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 선과 암시선(暗示線)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달리 말해 작가의 내적인 상태, 곧 선계와 지계가 공존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무의식 속의 상상의 선(線)까지 고루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선계와 지계 사이엔 언제나 그렇듯 공통적으로 조혜정 만의 특유의 에너지가 깃들어 있다.
4. 실체와 이미지의 전위, 대상과 타자의 대화, 익숙함과 낯섦의 교류, 재현과 감응의 소통이라는 매력을 지닌 오늘날 조혜정의 작품들은 외적인 것, 드러나는 것 자체보다는 기억과 장소로부터 발현되는 본질적인 것, 고정적인 것과 변화하는 것, 오인되거나 오판되는 실체의 혼돈, 자신에 관한 사유로서 삶에 대한 회고를 건드린다는 데 초점이 있다. 나아가 예술자체와 그 예술을 행하는 작가 간 호환성에서 기록의 권역을 되찾고 이를 통해 내재된 자의식, 즉 고해성사와 같은 관념의 접속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자아에 매스를 가하는 것이면서 외적으론 시공을 관통해온 삶의 편린과 현재성이 부여되고 있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의 다른 말을 장소와 기억, 인위와 무위의 가운데에서 건져내는 순차적 결과물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더불어 그 모든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회로를 구성하는 알고리즘으로 존재되고 있음을 증면한다. 그것은 때로 실제와 허구의 판단가치를 구분하는 나름의 방법론으로, 새로운 예술적 태도와 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되며, 따라서 그의 작업은 그의 말마따나 “현실에서 허구적이라고 판단되어지는 실체들은 지금도 나에게 실제적 진행형인 모든 것들로 존재함으로써 구체적 이미지가 되고, 정말 현실에서 경험된 것들은 오히려 비현실적 추상으로 다가오게 되어 캔버스위에 이미지화 된다.” 그리고 그의 존재함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작업은 사유적 고찰을 거치며 자기 발언을 이어간다. 오늘도.
한편 필자는 작가 조혜정의 작품에 내재해 있는 그 본연의 내면성(內面性), 그것의 감춰진 소환을 엿본다. 이것이 온전히 맞는지는 확언할 수 없으나 어딘가 소외적 현상에 대한 탐구와 외계와 맞닿은 ‘나’라는 존재성에 대한 언어가 배회하듯 부유하는 고뇌의 실체를 감지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불안한 인간의 위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상황을 가리킬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그저 살아간다는 것에 내재된 의미를 통해 존재의 근원적인 것과 변하는 것 사이에서 드러나는 여러 심상들의 교집합은 아닐까를 염두에 두도록 한다.
특히 그의 그림은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유독 분출이 드세고 격정적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심리성이 투영된 내부를 발견하게 하고 나를 통한 외부 속에 존재하는 자아의 가시성을 상이함과 모순과 공생의 방법의 모색을 열람케 한다. 그리고 조혜정은 이러한 다층적 상태, 복잡 미묘한 감정과 기억과 그로 인한 판단을 다면적인 회화로 꾸준히 반추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거론하자면 그의 그림은 풀어냄의 자유로움이 풍부하다. 즉, 스스로 프레임을 깨뜨리고 있는 듯한 여울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예술적 발전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보다 깊게 나와 마주하는 유무형의 모든 것에, 그림 자체와의 대화가 농익을 수 있다면 더욱 짙은 알고리즘으로 작동하겠지만 말이다.■실체와 이미지의 전위, 대상과 타자의 대화, 익숙함과 낯섦의 교류, 재현과 감응의 소통에 그의 작품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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