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2016-05-19 ~ 2016-06-01
진훈, 정일영, 전성규, 이창남,이영훈,이강성, 류희숙,류지선,권기동,고자영
유료
02-379-4648
시공간의 민낯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의 주제는 <공간의 너울>이다. 여기에서 ‘너울’은 두 개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여인들이 머리에 씀으로써 개개인의 범주화된 외관을 만드는 ‘너울’과 같은 공간의 양상을 지칭한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개별적 객체와 조합을 통해 공간의 외형은 가시화된다. 하지만 여인의 너울로 인해 살아있는 내재적 면모는 은폐되듯이 공간의 겉보기 모습 안에는 한없이 움직이는 공간의 속살이 내재한다. 그렇다고 내부와 외부가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 안에서의 꿈틀댐이 외부를 변화시키며 밖의 변동이 내부에 되먹여 또 다른 모습을 파생시킨다. 안팍으로 쉴새없이 넘나드는 시공간의 움직임은 순환적이면서 파동적이다. 그러한 흐름의 양상들이 또 다른 ‘너울’의 의미이다.
시공간은 어떻게 그렇게 내부에 있으면서 동시에 외부에 있게 되며 일렁거리는가? 불활적으로 고정된 고전적인 시공간의 관점은 이 지점에서 타당성을 상실한다. 미시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양자역학에서 시공간의 현상을 기술하는 용어인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은 시공간의 점멸하면서 출렁이는 모습을 일정부분 설명해준다. ‘양자 요동’이 미시공간을 설명하는 용어이지만 미시세계는 거시세계, 우리의 일상적 세계와도 한 몸이다. 때문에 우리의 일상공간도 그러한 요동적 면모를 띤다. 과거, 현재, 미래, 이곳과 저곳, 있음과 없음은 양자 요동적 상태로 불특정하게 변동한다. 혼돈적으로 얽히는 현상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시공간이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겹들은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에서 드러냈듯이 우리가 속해있는 공간의 계(界) 안에서는 그 계의 공리적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채 섞이면서 다양한 통계적 양태로 공간을 포용한다. 때문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시공간의 층위적 겹들은 전체적이면서도 개별적인 독립 가치를 갖는다.
<공간의 너울>전을 구성하고 있는 작품들은 관조적 참여(고자영), 정지적 운동(권기동), 이질적 결합(류지선), 심연적 부유(류희숙), 교호적 얼개(이강성), 맥동적 공간(이영훈), 외연적 내밀(이창남), 노출적 잠복(전성규), 이탈적 결속(정일영), 수동적 발산(진훈)의 특성을 갖고 있다. 이들의 작품들에서 표면과 내면의 공간들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섞인다. 그 과정을 통해 각각의 고유한 공간의 출렁임이 작품 안에 포획된다. 살갑지만 엄정하게 공간의 결기를 훑어내고 있는 작품들이 내보이는 시공간의 다양한 속내를 노정하고 공유하고자 이 전시는 조직되었다.
이영훈(미술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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