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 전시 소개
봉산문화회관의 기획, 「2016유리상자-아트스타」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합니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74'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하여 ‘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가치 있는 동시대 예술의 ‘스타성’을 지원하려는 의미입니다.
4면이 유리 벽면으로 구성되어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람방식과 도심 속에 위치해있는 장소 특성으로 잘 알려진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는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6년 유리상자 다섯 번째 전시인, 전시공모 선정작 「2016유리상자-아트스타」Ver.5展은 유리조형을 전공한 이규홍(1972년생)의 설치작업 ‘자연의 침묵 Silence in Nature’입니다. 이 전시는 작가 자신이 감지한 인식의 흐름, 즉 ‘의식意識이 빛의 속도로 시간을 거스를 때가 있다.’라는 상태狀態를 시각화하면서, 아무런 말없이 즉각적으로 전해지는 자연의 충만한 전율이 우리 삶에서의 망설임과 소외를 대신하기를 바라는 기원입니다. 또한 지금, 이곳의 풍경이 유리 물성의 표면과 투명성에 깃든, 이와 함께 과거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 시간동안 유리를 만져온 미술가의 신체행위가 관객과 공유하는 경계 없는 시․공간적 상상想像이며, 그 충만함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언어와 논리에 앞서는 인식의 흐름을 시각화하려는 지속적인 미술 설계의 어느 부분을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상자 공간에 담아내려는 작가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곳 6×6×5.5m 크기의 유리상자 내부 천장에 매달거나 바닥에 펴놓은 77개의 투명하고 붉은 덩어리는 작가가 입으로 취입吹入하여 만든 유리조형입니다. 짐작하듯이 쇠로된 파이프 끝에 뜨겁게 녹인 유리 덩어리를 묻혀 숨을 불어넣어 부풀리는 유리 취입 행위는 상당히 오래된 유리 가공법이며, 이는 작가의 호흡과 신체행위가 작업과정에 일체되어 긴요하게 결합하는 장인匠人의 태도가 요구되는 작업이고, 현재의 디지털 문명과는 대척되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탄생의 숨을 불어넣는 고귀함, 인간적인 손맛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감성적 지향을 담은 작가의 유리조형 행위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과거의 기억과 잇는 정신적인 미술 행위로서 인간 삶의 망설임과 변화의 순간마다 기명記銘, 보유保有, 재생再生, 재인再認의 단계로 기억하는 인식체계의 주목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이규홍의 신체행위는 생의 현실에서 경험했던 불안과 소외의 시간을 잊고 전혀 다른 충만의 기억으로 재생하고 재인하려는 몰입沒入 장치이며, 자신의 감수성과 직관 그리고 반복과 지속을 더하여 붉은색의 투명한 유리 덩어리를 포개고 나열하는 ‘자연의 침묵’이라는 입체 그림으로 남겨집니다.
작가가 일곱 살이던 어린 시절, 몸이 아픈 아버지와 떨어져 진도珍島의 할머니 댁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보냈던 3년 동안의 시골생활은 이번 전시를 위한 기억으로 호출되어 재생됩니다. 기와로 이은 지붕과 넓은 마당이 있는 한옥, 그 마당 한편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고, 가을 햇살을 한껏 머금고 떨어질 듯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홍시紅柹, 고추 말리던 멍석을 뛰어넘어 다니며 동네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던 기억들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순리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세상의 모든 존재나 상태로서 자연이 작가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이며, 행복과 충만의 시간입니다. 홍시를 닮은 유리상자 안의 유리조형물들은 과거 기억의 호출에 다름 아닙니다. 주변의 풍경과 관객의 출현을 투영해내는 이 유리조형은 생명을 다하기 직전의 살아있는 찬란함을 증거 하는 ‘지금, 여기’의 ‘충만’, 그 충만을 기억하려는 ‘염원’의 스펙트럼, 가슴이 공허한 부재와 결핍, 소외의 시․공간을 치유하려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생노병사生老病死하는 자연의 이치를 수긍하고 기억하기바라는 제안이고, 또 머금기도 하고 뱉기도 하는 투명성이 곧 햇빛으로 충만한 자연을 호출하지 않을까하는 기대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향을 실천하려는 신체행위 과정에서 스스로와의 만남과 관객과의 공감, 유대의 경험으로서 세상과 ‘소통’하려는 매개인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침묵’은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비롯한 세계의 충만을 참조하는 그리기이며, 그 기억을 따르며 지속적으로 진선미眞善美를 구하는 미술가의 심리적 환상이고, 인간 삶의 머뭇거림에 관한 정서적 치유의 제안입니다. 충만의 경험을 기억하며 현재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미적 신념을 소통하려는 예술의 실천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
▢ 작품이미지
자연의 침묵 Silence in Nature / 유리, 신축성 섬유, 와이어 / 가변크기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