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이든 원활한 흐름을 위한 일정한 테두리가 있다. 이는 어떤 강제이기도 하며, 우리의 태도가 고착화되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고,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도 모른 척하는 순간도 있다. 완벽한 합치란 없기에 대상과 테두리 사이 틈은 생기기 마련이다.
정진욱과 황민규는 이 묘한 균열에 예민함을 곤두세워 그 틈새를 파고든다. 제도와 개인, 허상적 슬픔과 실제, 입양과 유기, 이 관계의 구조와 모순을 드러낸다. 정진욱은 구조 아래 종속되어 객체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목격하고, 비체로서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을 유도한다. 의도적으로 연민을 차단한 황민규는 버려지는 것에 대한 일상적 태도를 거부한다. 그 실제를 드러내며 버려진 것의 새로운 유용성을 발견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Another들은 각자의 사이 ‘Between'의 구조를 목격하고 실체를 끌어온다. 정진욱의 동료들이 남기고 간 재료, 황민규의 유기견의 털. 쓸모를 잃어 빛바랜 그것은 작품으로 전환되어 보다 직접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들은 버려진 것의 새로운 유용성을 발견함과 동시에 지향점을 제시한다. 그들의 시도는 덧없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 Between human and society
젠가 게임을 할 때 신중히 조각을 빼내어 조심스레 올리는 사람도 있고, 장난스레 조각을 쌓는 사람도 있다. 젠가 게임의 마지막은 결국 무너지는 것이지만 우리는 언제든 이 게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쓰러지지 않게 노력할 것이다. 정진욱의 작품은 일종의 놀이로 볼 수 있다. 관객이 참여해야만 성립되고 그 과정에서 전시장은 일시적인 광장이 되며, 작품은 관계망을 형성케 해주는 점이 된다. 관객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관계망은 기존의 것을 뛰어 넘는 일련의 제도가 된다. 작가는 이런 개입과 움직임이 모여 제도 아래의 객체가 아닌 개개인이 주체가 된 유동적인 제도로 확장되길 희망한다.
- Between human and dogs
황민규는 사람과 유기견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는 유기견 센터에서 모은 털을 사용한다는 데에서 직접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자극적인 이미지를 삭제하고 그저 인간다움을 확인하는 이기적인 연민을 차단한다. 이로써 유기견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비단 유기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다른 생명의 고통을 접하고 휘발성이 짙은 순간적인 슬픔을 겪을 뿐이다. Between human and dogs로 시작한 황민규는 그 관계의 간극, 사회 구조를 꼬집는 것으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