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소개
사물마다 고유한 형상이 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 그 고유한 형상의 바깥이 만들어내는 빈 공간입니다. 그 어둠, 그 여백,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비경이 있습니다. 일종의 초월일 것입니다. 그림엔 보이지 않지만 달빛이 있어요. 그 안에서 숲은 신령한 존재로 드러나는데, 달의 빛, 달의 소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_ 이재삼
이재삼_Moonscape 달빛_227x910cm_Charcoal on Canvas_2017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달이 밝게 보이는 것은 태양에서 나온 빛이 달 표면에 반사되기 때문이다. 이재삼은 그 달빛에 되비친 자연의 정경들을 그린다. 폭포, 물안개, 대나무, 옥수수밭… 배경은 검은 공간이다. 회색이라는 중립적 공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미색의 광목천이 드러난 지점이 달빛이 닿은 공간이고 목탄으로 뒤덮힌 지점이 달빛이 닿지 않은 공간이다. 달빛에 비친 반짝이는 자연과 검은 배경이 주는 명확한 콘트라스트에서 밤의 분위기가 들끓는다.
이재삼은 30여년간 <나무를 태워서 숲을 환생시킨 영혼>이라고 스스로 명명한 목탄만으로 달빛에 비친 자연을 그린다. 버드나무나 포도나무를 태워서 생긴 목탄 입자는 광목천 위에 끊임없이 쌓아 올려져 검은 그림으로 완성된다. 정착액을 바름으로써 목탄을 완전히 흡수한 광목천은 흩어지지 않는 반영구적 그림이 된다.
대부분 1,000호가 넘는 그의 작품에는 서구식 원근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가 개발한 <공기원근법>을 통해 생략되거나 번지는 부분이 없는, 중심과 주변이 존재하지 않는 전경이 펼쳐진다. 균질한 나뭇 가지들, 바위의 작은 틈새들, 세밀한 묘사를 생략하며 나오는 물안개 까지 철저하게 서구식 원근법의 초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속 모든 구석들이 중요해진다. 목탄의 완전히 균질하지 않은 검정의 차이와 함께, 깊이를 알 수 없는 무한대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림 속 시간은 시간이 사라진 비동시적 순간과 같다.
이번 전시는 2003년 옥수수밭으로 시작한 <숲> 연작, 2010년 시작한 <폭포> 연작과 2013년 시작한 <물> 연작을 소개한다. 강원도 태생인 작가에게 숲은 늘 그를 에워싼 환경이었다. 자신이 자란 토양이 목탄을 통해 화면에 스며든다. 이재삼의 작업을 처음 본 건 10여년 전이다. 그의 작업실은 대형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고음악과 흑백의 거대한 목탄화로 차 있었다. 그 작업들은 내게 어색한 낯섬을 느끼게 했는데, 그후 나는 그 ‘낯섬’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생각해 보곤 했다. <학교에서 배운 예술을 불식시켜야 작가가 된다>는 이재삼의 말처럼,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예술 세계를 가시화한다는 것은 낯섬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예술이란 인간의 감각이 가진 경계들을 확장하는 일이거니와.
양지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수석 큐레이터
Moonscape 달빛 이재삼 전_전시전경_미메시스 아트 뮤지엄_2017
나에게 목탄의 검은 빛은 검은 색이 아닌 검은 공간으로 존재한다. _이재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