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옥전
2018-06-19 ~ 2018-07-01
세종갤러리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독창적인 방법론으로 순화된 동양의 정신세계를 현대적으로 구현해내는 한국화가 김춘옥의 개인전이 세종갤러리 초대로 열린다.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인 미감으로 표출하는 작가의 신작 30여점이 전시.
김춘옥, 포근하고 고격한 조형
김춘옥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어느 호젓한 정원에 안긴 듯하다. 도시의 소음과 차단된 정원에는 잔잔한 물위에 고개를 내민 연잎들이 소복하다. 보이는 것은 연과 잔잔한 물결뿐이지만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같다. 눈부시게 하얀 햇살이 호수위에 쏟아지며 부서지는 수많은 광채를 볼 때 세상은 얼마나 찬란한지 김춘옥은 그런 자연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김춘옥의 회화는 군더더기 없이 아담하고 정갈하다. 수묵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탈속 및 순화된 정신세계가 그림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표면이 아닌 이면, 깊이를 지닌 고격한 조형이 그가 추구하는 회화세계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회화는 그리지 않고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종이를 붙이고 그것을 다시 걷어내면서 이미지와 색감을 얻는 것이 김춘옥 회화의 특성이다. 일견 그림에서 떠나 있는 듯하지만 그의 작업은 여전히 회화 범주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김춘옥은 소지(素地)를 그 자체가 의미있는 조형으로 간주하면서 이를 통해 동양화의 아취를 되살리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이러한 데콜라쥬(decollage)의 작업을 한 것은 아니다. 데뷔할 당시만 해도 그 역시 기본에 충실한 사생적인 회화를 발표하였다. 82년 <동아미술제>에서 동아미술상을 수상한 작품과 83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없는 장려상을 받았던 <그림자> 연작은 저수지 가장자리의 갈대밭과 물속에 비친 그림자, 물결을 부드러운 세선으로 그려낸 수묵담채화였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간결한 필선은 대담한 붓질로 변화되고 바람이 몰아치듯이 표현수법이 과감해진다. 같은 <그림자> 연작이더라도 이 무렵의 작품은 대상에 얽매이기보다는 수묵실험을 방불케 하듯 묵흔(墨痕)과 파묵(破墨)이 강조되었다. 90년대 들어오면 구상과 추상의 경계는 더욱 흐려진다. 이 무렵에는 은은한 색채에다 표면의 얼룩진 자국들이 새롭게 발견된다. 종이위에 물감을 떨어뜨려 수묵의 계조적인 농담과 함께 종이위에 물방울이 맺힌 것같은 효과를 주었다. 굵은 비가 내리는 듯한 빠른 필선 등 90년대 초반에는 그의 수묵실험이 최고조에 이른다.
지금과 같은 종이작업이 첫 선을 보인 것은 2002년 조선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질 무렵이었다. 몇 년의 준비 끝에 그가 발표한 것이 김춘옥만의 독자적인 스타일, 즉 ‘촉각적 회화’(윤진섭)라고 명명한 그림이다. 여기서는 수묵에 의한 조형보다는 한지를 앞세운 조형이 두드러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회화는 그린다기보다는 만들어진 것으로 종이를 붙이고 붙인 종이를 다시 뜯어내는 과정에 의해 완성된다. 손으로 뜯어내기도 하고 찰싹 달라붙은 종이에 물을 먹인 다음 기구를 이용해 뜯어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생긴 흔적들이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온다. 자세히 살펴보면, 말아올리고 찢고 뜯겨나가고 덧붙이고 잘라내면서 생긴 무수한 표정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종이를 걷어내기 시작한 것은 종이 자체를 단순한 표현수단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 지지체로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되었으나 좀더 직접적인 계기는 먹이 종이와 맞딱뜨릴 때 종이 속으로 배어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먹이 옆으로 번져가는 것에 유념하는 경우는 흔해도 안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에 유념하는 경우는 드물다. 작가는 수묵이 종이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광경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지층처럼 종이를 집적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작가는 종이를 대여섯번 배접하고 그 위에 수묵과 채색을 하는 식으로 두께를 어느 정도 쌓은 다음 그것을 다시 한 장씩 걷어낸다. 검정 표면을 자신이 원하는 구성에 맞추어 걷어내고 또 걷어내는 식으로 꽃봉오리도 만들고 줄기도 만들며 잎사귀 형태도 만들어갔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공감의 깊이감과 훨씬 풍부해진 수묵의 계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근래의 작품에서도 전체 흐름에 큰 변화는 없으나 데콜라쥬의 수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 색감이 한층 풍부해졌다는 점, 대상의 구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순수조형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특이점으로 들 수 있다.
근작에서 주의를 모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종이의 삶’이다. 종이의 표정이 애환과 굴곡을 거친 인생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흑암같은 세상에서 시작하여 종국에는 광명한 빛을 찾아가는 것도 인생사와 비슷하다.
작가는 수묵에 대한 의존도보다 종이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 종래에 종이를 여섯번 정도 배접하였던 데서 근래에는 여덟 번 정도로 늘였고 각 층마다 색종이를 깔아 매번 다른 표정의 색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앞면에는 흑색이 스며들게 하고 점점 바탕쪽으로 갈수록 흰색이 드러나 보인다. 색감이 풍부하게 보이는 것은 중간에 배접한 색지를 걷어낼 때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색지가 마치 양파를 벗겨내면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듯이 자연스럽게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2002년부터 작가가 시종 강조해오고 있는 것은 ‘유현(幽玄)의 미감’이다. 작가는 유현에 대해 “대상을 눈앞에 보이는 존재, 직접적인 관계로만 보지 않고 다른 사물과의 연관속에서 간접적으로 누리는 미감이 유현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즉 연을 그렸다고 해서 화조화나 실물 사생으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대상이든 사물이든 그것을 독립적이고 고정적인 존재로만 보지 않고 반드시 상호관련성속에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연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그의 작품은 삼라만상의 이치를 담고 있다. 꽃이 자라는 곳은 자그만 연못이고, 그 연못은 숲속에, 그숲은 다시 자연의 품안에, 자연은 계절의 범주안에, 계절은 시간의 섭리안에, 시간은 영원의 섭리안에 있다. 결국 하나의 존재는 더 큰 존재와의 관계성속에 존립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법칙에서 자유로운 존재란 세상에 없다.
우리는 좋든 싫든 이러한 고정된 틀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인간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사물과의 접촉, 자연과의 접촉, 실재와의 접촉, 신과의 만남속에서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란 참으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이에 호응하듯이 미국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는 아름다움을 ‘관계에 대한 호의(good will)’에서 찾았다. 그에 의하면 순수한 호의란 일차적으로 존재가 다른 존재에 연합하고 동의하고 일치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럴 때 ‘참된 미덕’을 얻게 된다고 했다. 이것은 예술을 관계성속에서 파악하는 김춘옥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나 싶다. 그에게 있어선 관계에서 촉발되는 ‘호의’와 ‘연합’,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애정(affection)’이 제일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호의’란 다른 존재에게 월계관을 씌우는 행위요 좋은 예술작품을 발효시키는 ‘누룩’같은 존재임을 알려준다. 그의 그림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지를 다뤄서가 아니라 작가의 따듯한 마음이 깃들어 있어서가 아닐까.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장)
작가 약력
김춘옥
金春玉, Kim ChunOk (1946 ~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업
개인전
45회 / 조선화랑, 선화랑, 갤러리 우덕, 필립강 갤러리, 그로리치화랑, 세종갤러리, 예술의전당 등.
2012 한국예총 예술문화 대상 수상 ( 미술부문)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함회
2003 옥관문화훈장 서훈 / 대한민국 대통령
2002 동아미술제 제1회초대작가상 / 동아일보사
1983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 중앙일보사
1982 동아미술상 / 동아일보사
단체전
600여회
2018 한,중,일 동방채묵전 / 영월군 스포츠파크 실내체육관
2017 2017광화문 국제아트페수티벌 / 세종미술관
2016 KIAF2016 / 조선화랑, COEX
2015 “하얀 울림” 전 / 뮤지움 산
2014 MANIF2014 SEOUL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13 2013죠지아현대미술전 / 죠지아 국립현대미술관
2012 Art NewYork Korean Art Festival / Hutchins Gallery. NewYork
KOREAN ART SHOW2011 (조선화랑, 뉴욕 미국)
ART CHICAGO 2011(조선화랑, 시카고, 미국)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한국화1953-2007전 (서울시립미술관)
드로잉의 지평전 (덕수궁 미술관)
한국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대표작가100인의 오늘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동과 서의 만남전 / 5880갤러리, 리치몬드, 미국
퀼른 (독일). 마이애미, 뉴욕, 시카고, 시애틀(미국). 북경, 상해, 광저우 (중국). 제네바, 쮸리히(스위스).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KIAF, SOAF, 화랑미술제 등 국제 아트페어 출품
작품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일민미술관, 월전이천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뱅크, 버지니아 뮤지움(미국). 일본 북해도 도청(일본), 주이란 한국대사관, 주 뉴욕한국문화원, 주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 베르린 한국문화원, 문화관광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가톨릭대학교 도서관, 가톨릭 중앙협의회, 광주 가톨릭대학교, 자연보호중앙협의회, 서울 행정법원, 국회의원회관, 한국전통문화학교, 송파구청, 겸제기념관, 서울 시티타워, 대한투자신탁, 한국마사회, 경향신문사, 서울 성모병원, 인천국제CC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