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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1928-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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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윤형근》회고전 개최

 ◇ 한국 단색화의 거목으로 알려진 윤형근의 삶과 작품 세계 조명
   - 장인 김환기를 비롯, 도널드 저드, 조셉 러브, 최종태, 황현욱 등 
     당대 예술가·지식인과의 교유관계도 재조명
  ◇ 2007년 작가 사후 유족이 보관해온 작품 및 자료 대거 공개
   - 미공개작을 포함한 작품 40여점, 드로잉 40여점, 아카이브 100여점 
   - 작가 아틀리에에 소장된 전통 고가구와 도자기 유물 등도 함께 전시
   - 8월 4일(토)부터 12월 16일(일)까지, MMCA 서울 3, 4, 8 전시실
  ◇ 배우 지진희 특별 홍보대사로 오디오 가이드 참여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한국 단색화의 거목(巨木)으로 알려진 윤형근(1928~2007)의 회고전을 8월 4일(토)부터 12월 16일(일)까지 MMCA 서울에서 개최한다.

윤형근은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1947년 서울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미군정이 주도한 ‘국대안(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류 조치 후 제적당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학창시절 시위 전력(前歷)으로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당할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기도 했다. 전쟁 중 피란 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1956년에는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한 바 있으며,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1973년에는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으로 부정 입학했던 학생의 비리를 따져 물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총 3번의 복역과 1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이른바 ‘인생공부’를 하게 되고, 극도의 분노와 울분을 경험한 연후인 1973년, 그의 나이 만 45세에 비로소 본격적인 작품 제작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했던 자신만의 작품 세계에 곧바로 진입했다. 이 작품들은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큰 붓으로 푹 찍어 내려 그은 것들이다. 제작 방법에서부터 그 결과까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이 작품들은 오랜 시간 세파를 견뎌낸 고목(古木), 한국 전통 가옥의 서까래,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흙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는 이렇게 ‘무심(無心)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전통 미학이 추구했던 수수하고 겸손하고 푸근하고 듬직한 ‘미덕’을 세계적으로 통용될만한 현대적 회화 언어로 풀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전시 구성은 작가의 삶의 여정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총 4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에서는 작가의 작업 초기,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1916-1974)의 영향을 보여주는 1960년대의 드로잉과 작품들이 전시된다. 윤형근의 조형언어가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1부의 드로잉들은 상당부분 처음 공개된다. 2부와 3부에서는 다양한 색채에서 출발했던 그의 작업이 역사와 부딪혀 순수한 검정에 도달한 상태를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색채인 청색과 암갈색이 섞인 ‘오묘한 검정색’이 담긴 <청다색> 연작을 시작으로, 2000년대 말년 작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작이 엄선되었다. 무엇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울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작된 작품과 같이 시대의 아픔을 담담히 담아낸 슬프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1980년 6월 제작된 작품 <다색>(1980)은 피와 땀을 흘리며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에 대한 헌사로서, 제작 이후 단 한 번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다가 이번 전시에 최초 공개된다. 

또 8 전시실은 서교동 작가의 아틀리에에 소장되어 있던 관련 작가의 작품(김환기, 최종태, 도널드 저드 등)과 한국 전통 유물(고가구, 토기, 도자기 등)을 그대로 옮겨, 작가의 정신세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와 노트가 처음 공개되고, 많은 양의 사진 자료도 선보인다. 아울러, 김환기가 작고 15일전 윤형근에게 남긴 엽서를 포함, 김환기가 윤형근과 김영숙 부부에게 보낸 편지도 공개되어, 작가와 그 주변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한층 풍성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배우 지진희씨가 이번 《윤형근》전시 특별 홍보대사를 맡았다. 부드러우면서 울림이 깊은 목소리의 지씨는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윤형근 작가의 극적인 삶과 작품의 여정을 들려준다. 관람객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전할 지씨의 오디오 가이드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단색화의 범주에서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윤형근의 진면모를 총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일반인 전화문의: 02-3701-9500 

1부. 프롤로그: 윤형근의 초기 작품 

제 1부에서는 1960년대부터 1973년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이전의 작품이 소개된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4.19를 겪은 이후, 윤형근은 숙명여고 재직 시절(1961~73년) 상대적으로 나아진 작업환경 속에서 다수의 드로잉과 소품을 남겼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밝은 색채의 추상화로, 스승이자 장인인 김환기의 영향을 짙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1973년 이른바 ‘숙명여고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밝은 색채가 사라지고 전형적인 ‘검은’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섹션에서는 작가가 인생 역경을 거치면서, 색채와 형태, 작업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점차 단순해지고 ‘순수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순수한 그림일수록 어렵다”- 윤형근, 1977년의 일기 중에서

윤형근, 드로잉, 1972, 한지에 유채, 49x33cm


2부. 천지문 (天地門) 

제 2부에서는 1973년 반공법 위반 협의로 서대문형무소를 갔다 온 이후 뚜렷한 직업 없이 요시찰인물로 등록된 채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하던 10여년의 시기 제작된 작품을 보여준다. 이 시기 작품에 대해서 작가는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하늘의 색인 블루(Blue)와 땅의 색인 엄버(Umber)를 섞어 검정에 가까운 색채가 탄생하는데, 거기에 오일을 타서 면포나 마포에 내려 그으면‘문(門)’과 같은 형태의 작품이 나오게 된다. 이 작품들은 검정색의 우뚝 선 구조들 사이로 무언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형태도 작업과정도 매우 단순한 이 작품들은 서툰 듯하면서도 수수하고 듬직한 멋을 지닌다. 1980년 광주항쟁의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쓰러지는 인간 군상을 연상시키는 일련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러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진실로 서러움은 진실로 아름다움 하고 통한다.”- 윤형근, 1988년 8월 17일 일기 중에서

청다색 Umber-Blue, 1978, 마포에 유채, 270x141cm


3부. 심간 (深簡) : 깊고 간결한 아름다움 

제 3부에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제작된 윤형근의 후기 작품으로 구성된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말해 한층 더 간결해진다. 색채는 검은색의 미묘한 변주가 사라진 채 ‘순수한 검정’에 더욱 가깝고, 물감과 함께 섞었던 오일의 비율도 줄어들면서 화면은 한층 건조해진다. 형태와 색채, 과정과 결과가 더욱 엄격해지고 간결해지지만, 그 거대하고 순수한 검정색 앞에 서면 관객은 왠지 모를 ‘심연(深淵)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후기 작업은 어떤 ‘확신에 찬 통찰’을 보여주며, 존재와 존재 간의 ‘관계’, 그리고 ‘고독’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이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 윤형근, 1990년 우에다 갤러리 개인전 작가노트 중에서  



4부. 윤형근의 세계 

제 4부에서는 윤형근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공간으로 구성된다. 그는 1983년 서교동에 스스로 설계한 집을 짓고 2007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하였는데, 그렇게 24년간 함께 했던 그의 생활공간과 작업실을 전시장에 옮겨왔다. 거기에는 그가 사랑했던 목가구와 목기, 도자기와 토기 등 조선의 공예품들이 가득하고, 추사 김정희의 글씨, 김환기의 그림, 최종태의 조각, 그리고 도널드 저드의 작품 등이 함께 했다. 그와 관계 맺었던 인물들, 사물들, 그리고 윤형근 자신의 일기, 노트, 사진, 드로잉 등 각종 아카이브를 통해, 윤형근이 추구했던 정신세계, 그리고 그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골동은 돈이 아니다. 조상의 얼이요 세월을 담은 기물이다. 골동을 보고 있노라면 옛 어른을 보는 것 같다. 점잖고 넉넉한 그 옛 어른을 보는 것 같다. 어리숙하고 인정어린 옛 어른을 보는 것 같다.”- 윤형근, 1990년 7월 5일 일기 중에서

윤형근, 작가일기, 1979년 6월 27일(수)


서교동 윤형근 아틀리에의 모습
벽 가운데 도널드 저드의 낙품이 걸려 있으며, 조선의 고가구와 도자기 등이 작가의 작품과 함께 놓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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