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내가 선 자리에서 겪는 삶의 과정과 그것으로부터 얻는 경험은 소중한 지혜의 보고가 된다. 삶의 과정에서 관계로 맺어진 존재자들이 남긴 기억, 내 발이 닿았던 환경에서 습득한 경험. 삶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기록을 요구한다. 도예가 김미경은 기억을 기록하는 것에 천착한다. 지난 1년간 일상 속 하루의 일기(日記)를 매일 한 점의 그릇에 새겼다. 그 그릇은 주변의 존재자들로부터 남겨진 기억의 일면으로 조각된 오브제다. 흙의 물성을 따라 손으로 생각한 기록이다. 희로애락의 감정과 정서의 기억을 담고 있다. 행여 철학적 해석만으로 과거 찻그릇에 담긴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찾아, 해석해낸 이들의 주장을 쉽게 떠올릴 법도 하나 그것과는 어긋난다. 전시장 바닥에 열두 개의 줄로 나란히 줄지어 놓인 300여 개의 그릇은 끝이 뾰족해 똑바로 설 수 없다. 마땅히 지녀야 할 본연의 기능성을 상실했다. 둥글고 끝이 뾰족한 그릇의 형상은 여성성 즉, 생명의 근원 의미를 지닌다. 인간이 겪는 사회와 자연과의 다양한 관계성을 가장 근원적인 형상으로 상징화 한 것이다. 인간의 삶과 예술, 현대미술표현과 공예 본질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