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 Line of Memory and Healing
2019-01-22 ~ 2019-01-31
갤러리도스
전시 전경
박현주는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로서 그녀의 작업에서 주요한 테마는 ‘기억(memory)’이다.
대개 ‘기억’이란 온전한 현실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대개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으려 하기 때문에, ‘기억’ 역시 우리가 떠올리고 싶은 것만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기억하기 싫은 사실들은, 늘 떠올리고 간직하고 싶은 추억 속에 밀려나고 잊혀지기 십상이다.
MEMORY AND HEALING, 40*25*30, STAINLESS
MEMORY AND HEALING, 40*25*30, STAINLESS
그렇다면 이렇게 정확한 시공간도 과정도 생략된 채 미화되어 ‘떠올려진 ‘기억’ 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단지 숙명처럼 죽음의 바다로 밀려가는 인생의 허무함을 어루만지는 한낮 위안에 불과한 것일까?
시간과 기억에 관해 오랫동안 숙고했던 철학자 베르그손은 잴 수 있고 쪼갤 수 있는 물리적 시간 인식을 거부하고, 우리에게 생생하게 떠올려지는 이러한 기억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LINE OF MEMORY AND HEALING, 6000*4000*3000, WOOD
베르그손에 따르면, ‘과거’란 우리의 체험들 중 이미 지나간 것들이기는 하지만, 의식은 ‘지속하는 것’이므로, 의식에 의해 일단 체험된 이러한 의식들은, 비록 지나간 과거의 것들일망정 결코 사라져 버리지 않고 지금 바로 우리 앞에 여전히 존재하게 된다. 즉, 현재의 체험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현전하고(présent)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가 이렇게 우리 앞에 ‘여전히 존재하는 그러한 존재방식이야말로 ‘기억(mémoire)’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과거 체험 전체 중에서 ‘삶에 대한 주목’은 현재의 상황을 밝히는 데 유용한 일부만을 외적 지각을 구성하는 데 참여하도록 허용하며, 이렇게 참여된 과거는 과거라기 보다 현재이다. 그것은 더 이상 지나가버린 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체험을 이루는 데 참여하는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박현주의 ‘기억’ 시리즈는 단순한 과거의 추억 소환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오늘’을 스스로 각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LINE OF MEMORY, 100*60*10, WOOD
LINE OF MEMORY, 100*60*10, WOOD
박현주는 1년 전 <Illuviation of Memory>2018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하였는데, 그 전시회에서 기억의 표상은 찬란하게 굽이치며 부상하는 듯한 보랏빛 혹은 청보라 빛의 강줄기 같은 오로라의 신비한 형상을 이미지화 한 작업들이었다. 영롱한 표상과 신비한 색조로 기억되는 작업인 <Illuviation of Memory>2018가 작가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자 한 것이라면, 이번 전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기억들을 긍정적으로 돌아봄으로써 스스로를 힐링하고 또한 그런 힐링의 느낌을 관람자와 적극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작가는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으로 황폐해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치유의 가장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방법 중 하나가 긍정적 기억의 회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즉 박현주는 ‘기억’이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창조적 실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의미한 매개체라고 보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생에서 긍정적인 기억의 집적(集積)을 테마로 발표했던 이전의 전시 <Illuviation of Memory>2018전과 연장선상에 있다.
FLOW OF HEALING, 40*100*20, WOOD
작가는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으로 황폐해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치유의 가장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방법 중 하나가 긍정적 기억의 회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즉 박현주는 ‘기억’이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창조적 실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의미한 매개체라고 보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생에서 긍정적인 기억의 집적(集積)을 테마로 발표했던 이전의 전시 <Illuviation of Memory>2018전과 연장선상에 있다.
FLOW OF HEALING, 40*60*20, WOOD
전시 전경
물론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시각예술은 시간을 두고 언어적 개념을 음미하며 소통할 수 있는 문학예술과는 달리 작가의 감성을 전달하는 데에 더 직관적일 수 밖에 없고, 그 때문에 작가가 느끼는 긍정적 기억의 치유작용이 관람자들에게 전달되는 것 역시 시각적 표상, 즉 조형언어로 한 번에 전달되어야 한다.
박현주의 이번 전시에서 유독 가을날 자연의 바람소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선율적 이미지들, 은은하게 파고드는 섬세한 조명 등의 공감각(共感覺)적 효과가 두드러지게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작가의 그러한 고심(苦心)의 결과들인 듯하다. 특히 자연스런 색조가 특색인 오동나무를 3미터 높이로 수직으로 연결하여 6미터길이로 물결치는 느낌으로 리듬감을 강조한 메인 작품은 강한 대비를 피한 조명 속에서 마치 일본 선사(禪寺)의 명상을 위한 정원인 가레산스이(枯山水)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강하게 광선을 반사시키는 스테인레스와 같은 재료의 사용에서도 조도의 효과를 최대한 조절하여 빛과 어둠의 효과에 운율의 묘(妙)를 최대한 살리게끔 의도하고 있다. 조형언어의 한계를 너머 관람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깊은 고심이 엿보이는 작업들로서, 작가의 다음 ‘기억’의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다.
- 신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