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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 The Spiritual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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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 The Spiritual Journey
2019-02-28 ~ 2019-03-10
금호미술관




이미연의 조형세계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세련된 심미 표현


신항섭(미술평론가)

서양회화는 채색 물감을 사용하여 캔버스나 종이 위에 이미지를 그리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물감이 캔버스나 종이 위에 얹히게 된다. 이에 반해 동양회화는 채색이든 수묵이든 종이에 스며들게 하는 방식이다. 그리하여 종이와 물감 또는 수묵이 일체가 되는 식이다. 동양회화의 주재료인 한지는 안과 밖이 있다. 전면에 물감이 닿으면 종이가 이를 흡수하여 배면으로 내보내게 된다. 이렇듯이 제작방법의 차이는 한지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에서 비롯된다. 이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동양회화는 보다 다양하고 정교한 표현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이미연의 작업은 두터운 한지를 위주로 하지만 때로는 캔버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재료에 따른 차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최종적인 이미지에서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캔버스든 두터운 한지든 완성된 작업에서 바탕으로서의 소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그리고, 덮고, 긁고, 바르고, 붙이고, 뜯어내고, 흘리고, 지우는 등 다양한 표현기법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소지 자체의 존재감이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인 수묵이나 드로잉 또는 채색기법과는 다른 풍부하면서도 오묘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2018-4, 38x47cm, Acrylic on Korean Paper, 2018


그의 작업에서 그 중심적인 요체는 한지와 채색이다. 여기에 연필이나 수묵의 드로잉이 덧붙여짐으로써 기존의 전통회화와는 사뭇 다른 조형세계가 펼쳐진다. 따라서 현대회화의 표현영역 그 전체를 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복잡한 구조 및 기법이 혼재한다. 전통적인 회화의 맥락에서 보자면 종이와 채색 그리고 수묵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전래의 회화가 구사하는 조형언어 및 표현기법은 단순하다. 물성을 이용하여 그린다는 조형기법을 관철하는 것으로 시종하기에 그렇다. 이에 비해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재료와 더불어 아크릴이라는 서구적인 재료를 병용함으로써 시각적인 이미지는 한층 더 풍부해진다. 
 


2018-14, 100x97cm, Collage on Korean Paper, 2018


그의 작업은 무엇을 보여주는가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한다. 삶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현실에 직면한 문제, 그로 인한 정신적인 갈등 및 감정의 변화가 작업에 그대로 반영된다. 작가정신이란 현실을 외면하고 오로지 탐미적인 창작행위 그 자체에만 천착할 수 없는 까닭이다. 현실과 예술을 유리시킬 수 있는 냉정함이 그에게는 없다. 한 인간으로서 겪는 희로애락이 작업에 관여하도록 방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어쩌면 다채로운 기법이 필요한 것도 복잡한 사유의 세계와 수시로 변하는 미적 감정을 자신의 의지대로 장악할 수 있는 묘안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달리 말해 이렇듯 들끓어 오르는 욕망이 지배하는 내면세계의 분출을 제어하지 못해 복잡한 이미지 전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 



2018-18, 102.5x133cm, Acrylic on Korean Paper, 2018


이러한 표현기법 및 방법은 논리적이며 획일적인 전래의 보편적인 표현기법에 대한 반발인지 모른다. 표현적인 즉흥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조형적인 형식마저 거부하는 듯싶다. 수차례 이어지는 작업과정에서 자기부정, 자기파괴가 거듭되는 것은 매우 아슬아슬한 일이다. 어쩌면 최종적인 작업을 마치고 사인을 한 이미지는 그 이전에 부정되었던, 아니 파괴된 이미지들보다 조형적인 완성도가 떨어질 위험성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멈추지 못하고 표현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은 이미지의 집적 또는 중첩에 의해 생성하는 공간적인 깊이 때문이리라. 작업의 특성상 한두 차례로 끝나는 것과 수차례 반복하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한두 차례로는 심연과 같은 혹은 우주와 같은 공간적인 심도가 형성되지 않는다. 
 


2018-20, 140x100cm, Acrylic on Korean Paper, 2018



2018-22, 22.9x30.5, Collage on Korean Paper, 2018


그의 작업과정은 최종적으로 마주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혼란스럽고 거칠다. 처음부터 정해진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기에 작업과정에서 미의식 및 미적 감정을 통제하고, 아름다운 구성 및 조화를 모색하며, 최종적으로는 세련된 형식미로 귀결하고자 한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찬찬히 음미하다보면 거기에는 조형적인 다양한 코드가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지향하는 조형미는 궁극적으로 탐미적인 세계이다. 혼돈으로부터 시작된 작업이 시간이 흐르면서 정연한 조형적인 논리에 의해 질서가 생기고 마침내 그 자신이 안도할만한 심미적인 형식미에 이르게 된다.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또는 거친 돌 속에서 나오는 보석처럼 스스로 발광하는 조형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가 가꾸는 미의식 및 미적 감정의 정원에는 실상과는 엄연히 다른 심미세계가 펼쳐진다.  


2018-1, 38x47cm, Acrylic on Korean Pap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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