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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 :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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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 특별전시

 < 비단길 > 展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선 (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


∙ 40주년 ‘푸른 상처, 별의 공존’ 이후
 인류 공동체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의 존재와 의미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으며 이후 어떻게 남겨질 것인가는 현재를 넘어 미래에 이르기까지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오늘날 예술은 동시대의 중요해진 무의식을 명명하고, 잊었던 과거의 의미를 찾아주는 과정 중에 있고 더불어 예술가는 그것들을 실행하여 연결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과거 역사의 상처와 슬픔은 사회와 시대적 배경뿐만 아니라 예술에 있어서 뗄 수 없는 관계를 각인시킨다. 예술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을 다양한 의미의 죽음, 공포, 삶, 인간, 역사, 기억 등으로 확장되며 층위적 방식으로 표현되어 보여지게 한다.

“이 세상에 물질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는 물질을 주장하는 유물론을 반대하는 사상적 배경 위에서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자 했다. 이론은 자연히 무신론으로 흐르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회를 몰락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교육을 통하여 유토피아적 사상을 펼치려 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관념만 존재한다.'는 불온전한 주장을 남겼고 1970년 발표한 <인간 지식의 원리론>에서 유심론적 경험론을 설명하며 신플라톤주의 형이상학이론 및 데이비드 흄의 경험론 철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정신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인정되는 감각적 특성을 부여하지 않고 어떤 사물의 견고함이나 이동성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다양한 해석만이 있을 뿐...’ 이라 제안했다.

‘인체를 통해 나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무등산과 더불어서 무한한 내일의 소망을 담고 
오색 무늬의 비단길은 온누리에 펼쳐질 것이다.’
                                                                 이강하, 1990년 작업노트 중...

 故 이강하 작품에 등장하는 ‘비단길’은 경험이나 증명하기 힘든 사실이기도 하다. 실제 작가도 무등산에 비단길을 깔아두고 보면서 그리지 않았고, 무형의 전통적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남도에 대한 정한(情恨)과 애착 등 비물질적 형상을 시각화(이미지)하는 일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시간 <무등산> 연작 작업을 통해 비단길이 광주의 오월, 민주주의 이상향을 넘어 ‘자유와 평화를 향한 구원의 길’로 이어져 끝내 통일의 꽃을 피우길 간절히 희망하였다.

 광주광역시 남구 이강하미술관 기획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 특별전시 <비단길> 부제: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展은 서양화가 故 이강하와 퍼포먼스 예술가 신용구 작업을 통한 다원 형식으로 샤머니즘적 은유와 초현실주의 관점을 전시로 구현하고자 했다. 숭고한 신화적 모티브를 통해 현대적 주술과 영(靈)을 몸과 행위로 연결하고자 했던 퍼포먼스 작가 신용구와 남도의 풍경과 자신만의 내러티브(Narrative)를 통한 독자적 회화를 구축했던 故 이강하 작가의 작업은 <비단길> 展에서 이강하 작가 회화 속 무등산의 비단길을 현시대 관점에서 오마주(hommage)1)하여 신용구 작가가 재해석한 한지길과 퍼포먼스의 생경한 설치·영상작업으로 보여준다.

∙ 샤머니즘(shamanism), 예술의 혼(魂)불
 1980년대 광주시민들이 구현했던 집단지성과 이타심을 오월의 주제로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넘어 희망의 관점에서 언어나 글로는 담지 못 할 행위예술과 미래적 메시지를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故 이강하와 신용구 작가는 다른 시대의 세대이며 다른 지역(광주와 거창)에서 출생했다. 두 작가는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다른 장르와 재료,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민주화운동 이후 다양하게 변모한 동시대적 다원 예술의 확장성을 이번 <비단길> 전시로 전하고자 한다.

 故 이강하 작가는(1953-2008) 남도의 애환과 일상적 삶, 남도의 풍경들을 독자적 리얼리즘 화풍으로 보여주었다. 1980년 5월 조선대학교 미술교육과 1학년 재학 중 계엄군에게 구타당하는 학생들과 시민을 목격하며 울분을 참지 못하고 시민군에 가담하였고 특수강도 및 포고령 위반 등 8가지 죄목으로 오랜 기간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1980~2000년까지 그룹 ‘남맥회(南脈會)’를 창립하여 이끌었고, 목우회와 한국파스텔작가회, 선과 색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80년대 당시 샤머니즘 사상이 깃든 남도의 ‘맥(脈) 연작’과 남도의 정경이 담긴 ‘영산강 사람들’, 90년대 무등산과 비단길 위 누드가 상징적인 ‘무등산’ 연작을 대표 작품으로 제작하여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생전 총 11회 개인전과 8권의 화집을 발행하였고, 100여 차례 그룹전 및 기획 초대전에 참여하였다. 그의 <무등산> 연작은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 구축과 함께 등급이 없는 산이자 어머니의 산, 자연 자체 의미를 넘어 ‘80년 5월, 광주현장의 증인이자 목격자’의 다층적 상징성을 담고 있다. 과거의 발포명령과 무수한 총알, 무고한 시민들의 진실을 품은 채 현재 무등산은 우리 곁에 굳건히 존재한다. 그의 작품 속 무등산에 깔린 전통 단청무늬와 오방색의 화려한 비단길은 5월의 수많은 영령들을 위로하는 듯 무등산 그리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여 펼쳐진다. 



이강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부분)


이강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200x1270cm, 캔버스에 유채‧아크릴릭, 1995


 신용구 작가는(1971년~) 퍼포머(Performer), 현대적 무당의 후예. 이미지 행위예술가로 몸과 행위를 매개로 세상에 대해 말을 건다. 그래서 작가의 행위예술은 조형예술보다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공연예술에 가깝다. 모더니즘의 장르적 특수성 이후 보편화된 탈장르 현상이나, 통섭이나 융합 같은 현대미술과 관련한 주요 담론들, 그리고 원래 신에 대한 제사로부터 예술이 유래했고 당시 예술은 장르 간 구분이나 경계가 없는 토탈아트(Total Art)로 나타난 예술기원론에도 부합한다. 그는 특히 서구적 신화로부터 온 내러티브를 혼성한 퍼포먼스와 그 결과물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순환 속의 삶, 생명의 의미를 설치·영상과 퍼포먼스를 통해 샤머니즘적 현대인이 상실한 꿈의 조각들을 잇는다. 욕망으로 인해 날개를 잃어버린 이카로스(Icarus), 실타래로 미로를 헤쳐 나온 아리아드네(Ariadne), 산 위로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Sisyphus)의 내러티브를 혼성함으로써 현대인의 일상적 삶으로 투영시킨다. 결국 그의 퍼포먼스는 자연을 둘러싼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되묻는 정화(淨化) 의식이 연출된다.2)





신용구, 광주-꿈의 조각들을 모으다, 설치‧영상, 2021


  <광주, 꿈의 조각들을 모으다, 2021> 작품은 신용구 작가가 오월광주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무등산과 구 국군광주병원에서 작업한 신작으로,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인간의 실존에 대한 비물질적이고 샤머니즘적 행위들의 사유 과정들이다.

∙ 나아가, 여명(黎明)을 향한 길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오월의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우리는 아픈 역사와 마주하며 예술을 통한 기억에 대한 숭고함을 이번 특별 전시 <비단길> 로 준비하였다. 아픈 역사 속 오랜 시간 침체된 설움과 아픔을 지내 온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기도는 현재 우리에게 도달했다.

 이강하의 길은 ‘곧 인생의 시작이요 끝이며 태어나 돌아가는 이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만든 수많은 길을 만들어 발길을 옮겨놓았다. 그 길은 인간과 대지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거부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오늘날, 길은 산업화되고 고속화되면서 인간의 편리성에 이롭게 되었지만 인간의 근원적 감성에는 역행하고 말았다.’3) 라 남겼다.

 결국, 과거 역사의 길을 기억하려는 예술의 무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지난 상처의 역사, 인간의 존엄성, 아픔의 기억과 공간을 기억하며 다시 그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는 희망적 미래를 탐구해 나가는 정동(情動)일 것이다. 과거 광주민중항쟁의 자유를 향했던 역사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다음 세대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전하기 위한 희생이었을 것이다. 
 
 작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시 <푸른 상처, 별의 공존> 展에 이어, 41주년 전시 <비단길> (부제 :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展은 오월 광주의 ‘푸른 상처’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희망으로 이어지길 염원했던 두 예술가가 던지는 미래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1980년 격정의 시기를 꿋꿋하게 견뎌냈던 故 이강하 작가의 작품과 시대적 시선으로 여러 국가의 역사와 기억을 희망의 메시지로 표현하는 신용구 작가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예술적 의미를 사유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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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마주(hommage)란 불어에서 온 말로 '경의의 표시' 또는 '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라는 뜻이다. 예술작품의 경우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부러 모방을 하거나, 기타 다른 형태의 인용을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같은 어원의 영어 단어는 'homage'인데 이것은 철자와 발음이 다르지만 뜻과 쓰이는 용도에서는 같다. 이 오마주는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장르에도 쓰이며 특정 대상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점에서 패러디나 표절과는 다르다. (시사상식사전)
2)평론가 고충환, 『이미지 시, 꿈과 현실의 언저리에 있을 존재의 원형이며 비의를 찾아서』, 2014년
3)故 이강하, 『길의 개념』 전시 서문 중, 서울 예술의 전당,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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