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무제, 2018-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162 x 130.5 cm
갤러리현대 제공
도윤희
BERLIN
1월 14일(금) – 2월 27일(일)
갤러리현대는 도윤희 작가의 개인전 《BERLIN》을 개최한다. 《BERLIN》전에 선보이는 40여 점의 작품은 2016년부터 202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도윤희의 과감한 도전과 파격적 변신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갤러리현대 1층 전시장은 작가가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 7점으로 구성된다. 전시의 출발점이 되는 이 작품들은 2015년 《Night Blossom》 전시로 변신을 꾀한 작가가 한 단계 전진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서정성을 간직한 초기 모델들이라 할 수 있다. 지하 전시장에는 화면의 촉각적 질감과 색채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베를린과 서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2층 전시장은 팬데믹 이후 대다수 서울에서 작업한, 높이 3m 이상의 대형 작품과 최근작으로 채워져 있다.
도윤희는 40여 년 동안 시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한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화가다. 지난 2007년 스위스 갤러리바이엘러(Galerie Beyeler: 20세기 최고 화상/아트 바젤 설립자인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설립한 갤러리)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나의 작업은, 현상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눈에 띄지 않고 숨겨져 있거나, 낯선 삶의 파편과 구석, 가려진 뒷면,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어떤 현상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들을 섬세한 회화 언어로 포착한다.
좌) Untitled 무제, 2017-2019,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200 x 150 cm
우) Untitled 무제, 2017-2019,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200 x 150 cm
갤러리현대 제공
2011년 갤러리현대와의 첫 개인전 《Unknown Signal》에서 작가는 세포나 화석의 단면, 뿌리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이미지를 흑연으로 그리고 위에 바니쉬를 반복적으로 칠해 올리는 작품을 발표했다. 고대의 시간성을 연상케하며 생명의 본질과 근원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이 작품에, ‘읽을 수 없는 문장’,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으로 연두색 모래알들이 반짝인다’, ‘살아있는 얼음’,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등 한 편의 시구와 같은 문학적 제목을 더해, 쓴다와 그린다는 행위 사이에 놓인 회화를 고민했다.
도윤희는 회화의 특정 방법론에 고착되길 거부하고 새로움을 갈구하며 2012년 베를린 동쪽에 스튜디오를 마련한다. 베를린만의 데카당스함과 기괴한 무거움에 매료됐다는 도윤희는 이곳에서 창작 활동의 돌파구를 찾는다. 서울에서 베를린으로의 물리적 이동은 그의 심연의 ‘무언가’를 깨운다. 작업, 장소, 경험 등 모든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벗어난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기억과 시간을 반추하며, 내면의 실체와 본연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된다. 전시 제목 ‘베를린’은 도윤희가 작가로서 전환점을 마련한 전략적 은신처이자, 50대를 지난 한 인간의 “인생, 생각, 감각 그런 모든 것들, 삶, 정신의 여정을 기호화 한 단어”(작가의 말)이다.
좌) Untitled 무제, 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300 x 200 cm
우) Untitled 무제, 2019-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220 x 170 cm
갤러리현대 제공
2015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Night Blossom》에서 그 첫 결과물을 공개했다. 작품 제목은 모두 ‘무제’로 정하며 문학적 요소와 결별을 암시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사용을 억제했던 색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미지를 캔버스로 구체화해 옮기는 과정에서 연필이나 붓이라는 전통적 미술 도구를 벗어나 보다 원시적 수단인 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손의 감각에 의지한다. 손의 적극적인 사용은 캔버스와 작가 내면의 물리적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실재하지 않지만, 작가의 내면에는 이미 존재했던 세계가 캔버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어나오는 형형색색의 환상적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색채’, 나아가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세계의 이면’을 제시한 것이다.
《Night Blossom》 이후 7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BERLIN》에서 도윤희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다. 작가는 회화의 기본적 언어이자 재료인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의 물성을 더욱 되살린다. 《Night Blossom》에서 작가의 손길에 따라 캔버스 화면에 만개한 꽃잎이나 뭉게구름처럼 퍼져 가던 얕은 층위의 물감은, 《BERLIN》에서 색 덩어리로 강렬한 물질성을 획득하고 생명체처럼 육감적인 질감을 지닌다. 거침없는 선과 색 덩어리가 쌓이고 뒤섞여 형성한 다층적인 레이어들 사이에 구멍을 뚫어 빈 공간을 마련하는 등 익숙한 회화의 모습과 다른 매혹적인 미감을 선사한다.
좌) Untitled 무제, 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145 x 110.5 cm
우) Untitled 무제, 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72.7 x 60.6 cm
갤러리현대 제공
우리의 인식과 감각을 총체적으로 자극하는 도윤희 작품의 이미지들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커다란 입구처럼 보이며, 형형색색의 꽃다발이나, 해 질 녘 강변의 쓸쓸한 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화면을 장악한 색의 파노라마와 물결 같은 터치는 인상주의 그림의 세부 장면을, 물감을 움켜 줬다 빠르게 펼친 손의 흔적은 고대 동굴 벽화를 떠올린다. 작가에 따르면, 이 화면들은 그가 평생 경험한 다양한 시공간이 내면에 쌓였다가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추상적 풍경이다. 도윤희는 미세한 감각이 형성한 이러한 이미지의 세계를 회화의 언어로 포착하려는 집요한 실험을 전개하며, 이전의 서정적이며 문학적인 작업에서 시각적인 언어(pictorial language)로의 대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얇고 반짝이는 표면과 두껍고 탁한 층, 둔탁한 덩어리와 민첩한 선, 밝음과 어두움, 강렬한 색과 은은한 기운, 커다란 동작과 미세한 움직임까지, 새로운 연작에서는 수많은 상반되는 요소들이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충돌과 조화를 동시에 이룬다.
시시때때로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찬란한 빛과 소용돌이치는 색들, 부유하는 형태가 증발해버리기 전에 재빠르게 붙잡기 위해, 작가는 캔버스 앞에서 마치 육탄전을 벌이듯 손, 붓, 부러진 붓의 모서리, 유리병, 망치 등 도구를 가리지 않고 활용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전통적 행위는 물감을 만지고, 주무르고, 찍고, 쌓고, 선을 긋는 역동적 제스처로 나아가며, 내면의 에너지가 응축된 물감 덩어리의 병치와 축적은 조각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새로운 추상의 세계를 제시한다. 보다 직관적이고 육체적인 행위를 통해 내면의 언어를 소환하는 도윤희는 강조한다. “추상은 환상이 아니에요. 환상, 몽상, 상상 같은 게 아니고 인식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실체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
작가에 관하여
도윤희는 1961년 서울 태생으로,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고 판화과 연구과정을 거쳤다. 1992년부터 2년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서울로 돌아와 1985년 두손갤러리의 첫 개인전 이후, 꾸준히 회화 작업에 매진하며 갤러리바이엘러(바젤, 스위스), 갤러리현대(서울), 금호미술관(서울), 몽인아트센터(서울), 아르테미시아갤러리(시카고, 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과천), 서울시립미술관(서울), 예술의전당(서울), 동아시아미술관(베를린, 독일), 제주도립미술관(제주)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출품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서울), 서울시립미술관(서울), 아트선재센터(서울), 세계은행(워싱턴 D.C., 미국), 필립 모리스(뉴욕, 미국)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갤러리현대
1970년 4월 4일, 인사동에 ‘현대화랑’으로 첫발을 내디딘 갤러리현대는 고서화 위주의 화랑가에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파격적 행보이며 미술계 흐름을 선도해 왔다. 이제는 ‘국민화가’로 평가받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갤러리현대를 통해 세상에 빛을 보았고, 김환기, 유영국,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등 추상 미술의 거장과 함께 전시를 개최하며 단색화 열풍이 일기 오래전부터 추상미술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198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의 흐름에 발맞춰 호앙 미로, 마르크 샤갈, 장 미셸 바스키아, 크리스토 부부 등 해외 거장의 미술관급 전시를 열며 미술계 안팎의 화제를 모았고, 1987년부터 한국 갤러리 최초로 해외 아트페어인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한국 미술을 해외 무대에 소개하는 선구적 역할을 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비디오아트를 비롯해, 곽인식, 이승택, 박현기, 이강소, 이건용 등 한국의 실험미술을 주도한 작가들의 작품도 갤러리현대에서 많은 관객과 만났다. 이 밖에 김민정, 문경원, 전준호, 이슬기, 양정욱, 김성윤, 이강승 등 동시대 미술을 이끄는 중견 및 신진 작가를 지속해서 발굴 및 소개하고 있다. 각각 1973년과 1988년 창간된 미술전문지 『화랑』과 『현대미술』은 한국의 동시대 아트씬을 생생하게 기록한 자료로 남아 있다. 서울 삼청로에 갤러리현대와 현대화랑이라는 두 전시장 이외에, 뉴욕 트라이베카 지역에 한국 미술을 알리는 플랫폼인 쇼룸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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