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아세안문화원 기획전시
<차와 커피의 시간 Tea Time & Coffee Break>
▶ 전시기간: 2022.3.11.(금) ~ 2022.6.19.(일)
▶ 전시장소: 아세안문화원 기획전시실
▶ 주최·주관: 한국국제교류재단 아세안문화원
▶ 전시기획: 공-원 (대표: 문명기)
▶ 참여작가(팀): 백정기, 이창원, 박화영, 고와서(팀), 무진동사(팀)
‘티타임’은 ‘차를 마시는 시간’을 일컫는 말로 일찍이 영국에서 유래했다. 티타임은 산업화 시대에 노동자들의 쉬는 시간을 보장하는 규정으로 자리 잡아 전쟁터에서도 지켜질 정도로 일반화된 관습이 되었다. 차와 커피를 마시며 휴식하는 시간은 서구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화된 문화이다. 아세안 지역에서는 손님을 맞이할 때 차를 대접하는 오랜 풍습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 문화는 인접한 인도,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타문화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해왔다.
이 전시는 분주한 일과를 잠시를 멈추는 휴식, 또는 손님을 환대하는 풍습으로서 차와 커피가 지니는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조명하고,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 놓인 우리의 일상을 ‘멈춤’의 시간으로 재해석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멈춤’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모임, 재택근무, 자가격리 등 그 어느 때보다 자주 회자되는 이와 같은 일상의 지침들은 분주한 현대인들의 일상에 ‘멈춤’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전시는 ‘커피’, ‘차’, ‘멈춤’을 키워드로 백정기, 이창원, 박화영 세 미술가의 작품과 함께 그래픽디자인팀 고와서와 공간디자인팀 무진동사가 협력한 디자인 작품을 5부에 걸쳐 소개한다.
1부. 멈춤을 환기하기
- 사라지는 풍경, 불가능한 멈춤
전시의 도입부는 백정기 작가의 사진 설치 작품인 “Is-of” 시리즈로 시작된다. 작가는 수년 전 베트남의 차 재배지에 체류하면서 찻잎에서 추출한 색소를 이용해 풍경 사진을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이후 식물의 꽃, 줄기, 뿌리 등에서 얻어낸 색소들로 사진을 프린트했는데, 여기 사용된 천연 색소들은 공기와 만나면서 점차 산화하기 때문에 이미지는 점차 변색되고 흐려지고 만다. 변화와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반면, 전시된 단풍 풍경 사진은 질소를 이용해 산화작용을 강제로 멈추도록 제작되었다. 이처럼 “Is-of” 시리즈는 오늘날 모두가 경험하는 ‘멈춤’의 현상을 환기한다. 자연의 일원으로 우리 인간에게 요구되는 ‘멈춤’의 행위는 과학적인 기술을 동원해 변색을 막으려는 작가의 노력으로 비유된다. 시간이 흘러 풍경 사진들은 결국 흐려지게 된다. 자연의 순환 질서에 저항하기에 인간의 ‘멈춤’의 시도는 미약하기 따름이다. 이처럼 “Is-of” 시리즈는 오늘날 모두가 경험하는 ‘멈춤’에 대한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백정기, ISOF-220220, 2022, 식물색소(녹차잎, 고추, 울금), 잉크젯 프린트, 에폭시 레진, 목재, 스테인리스 스틸, 혼합재료, 138x180x60cm
2부. 커피와 차의 시간
- 역사를 사유하기
전시는 차와 커피를 작품의 재료로 활용한 이창원 작가의 드로잉과 조각 시리즈로 이어진다. 대형 액자에 보이는 흑백 이미지는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처음 이양선이 등장하던 순간을 상상한 풍경이다. 그림자를 구성하는 재료인 커피 가루는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이 마신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 역시 아세안의 많은 국가들처럼 식민지 경험을 통해 서구 문화를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정착했다. 식민지의 아픔과 문화의 번성이라는 아시아가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은 커피 가루가 만들어 낸 그림자와 빛의 중첩을 통해 하나의 단상으로 포착되고 새로운 심상을 자아낸다.
이창원, 강화도_시간을 거슬러온 그림자, 2019, MDF, 합판, 커피가루, 바니쉬, 180x500x7.4cm
3부. 멈춤으로 사유하기
- 깨어나는 시간
우리 삶의 흔적들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상상력이 담긴 박화영 작가의 작품 “리퀴드 써큘러스 잔-브레이크 부스(Break Booth)”은 작가가 매일 마시는 찻잔에 담긴 커피의 흔적을 보여준다. 커피의 시간과 차의 시간은 휴식의 시간이자 절대적인 사유의 시간이다. 우리는 매일 반복된 각자의 삶 속에서 평화롭고 안정이 보장된 그 ‘멈춤’의 시간을 기대하고 소중히 여긴다. 작가는 이 멈춤의 시간이 담긴 빈 찻잔의 흔적에서 우주가 지닌 에너지의 흐름을 상상한다. 아세안 사람들, 그리고 우리에게도 차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기대와 희망이 움트는 그 “커피 브레이크”는 고정관념을 “부수고(break)” 스스로 각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휴먼 스케일로 확대된 커다란 스크린에 상영되는 찻잔의 원형 얼룩들은 그 앞에 선 관객들을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처럼 보이게 하고, 온전한 소우주로서 개개인의 존재를 조명한다.
박화영, 리퀴드 써큘러스 잔-브레이크 부스, 2022, 4채널 비디오 루프, 스테레오 오디오 루프 설치, 가변크기
4부. 아세안의 커피와 차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고와서(김서경, 박고은)는 아세안의 커피, 차의 역사와 문화적 특징을 그래픽 디자인으로 표현한다. 아세안 10개국의 휴식과 환대의 시간이 다채로운 색채와 조형요소로 시각화된다.
아세안 10개국의 커피와 차는 긴 역사와 함께 그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나라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되었다. 아세안 지역의 커피 재배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시작되었지만 비옥한 땅과 온화한 기후 덕분에 아세안 지역은
최대의 커피 생산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베트남의 로부스타 커피의 쓴맛을 보완하기 위한
연유커피 “카페 쓰어”, 코코넛 커피 “카페즈어”, 곡물을 혼합한 태국식 커피 ”올리 앙“
등과 같이 고유의 매력을 지닌 커피들이 사랑받고 있다. 아세안 지역에서 차는 약재로도
사용하였으며 미얀마의 절임차 “라펫”처럼 식재료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아세안 10개국의 커피와 차 문화는 페라나칸 티 하우스, 코피티암과 같은 전통적인
공간에서부터 길거리의 노점, 현지의 특색있는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인스턴트 커피
시장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5부. 아세안의 낙원
전시의 마지막 공간은 디자인 그룹 무진동사가 조성한 “낙원”이다. 아세안 국가의 열대 기후와 자연환경을 모티브로 조성된 마지막 공간은 문화 체험의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사유’와 ‘휴식’, 그리고 ‘사교’의 장소로서 낙원에 머무르며 아세안 사람들의 삶의 단편을 경험하고 기념이 될 수 있는 상징물을 통해 사라지는 기억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