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 기획초대전 : non finito
■ 전시 개요
삶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고 있지요. 하루 평균 35,000번 정도 된다고 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감히 상상 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확신이나 기대보다는 그저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결정할 뿐입니다.
윤희의 작품은 동일한 주형을 이용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지 않고 멈출 줄 아는 용기로 단호하게 결정된 작품들은 두렵고 어려운 선택을 넘은 확실한 믿음과 신념들로 더욱더 빛이 납니다.
여러분의 삶의 방향과 색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이번 전시를 함께하는 선택은 가장 값진 실천이 될 것입니다.
2022. 04.
대구보건대학교 총장 남 성 희
■ 전시 평론
21세기식 ‘열린 주형’
Attendu(기다림)가 Inattendu(우연)가 되기까지
심 은 록 _ ‘SIM Eunlog Meta Lab’ 소장, 미술비평가
“닮은 꼴이 거푸집 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주형’(鑄形, 거푸집)에서 나오는 ‘주물’(鑄物)이 똑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희 작가의 작품을 보면 과연 같은 주형에서 나왔는지 의문이 든다. 주물의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변함이 없었던 ‘닫힌’ 주형의 개념을 확장 하며, 21세기에 어울리는 조각의 차원을 연다.
일반적으로 관람객은 작업의 결과물인 주물에 관심을 갖고, 미술관계자들은 현시대 미학의 키워드인 ‘외 부의 개입’ 혹은 ‘우연성’(Inattendu)에 무게 중심을 둔다. 이 글에서, 필자는 미술사와 제4차 산업혁명 시 대에 비추어, 윤희가 개척한 ‘열린 주형’을 바탕으로, 결과보다는 원인에, 우연성보다는 그 준비과정(작가 의 지속적인 의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빗물’이 ‘화석’이 되기까지
윤희 작가에게 길고 지난한 Attendu(기다림)가 Inattendu(우연)가 되기까지는, 빗물이 화석이 되는 것과 같 다. <Inattendu>(우연)이나 <Rain-Fossil>(빗물-화석)과 같은 그의 연작 ‘제목’ 에는 이러한 고단하고 어려 운 과정이 잘 묘사된다. 비유적으로 본다면, ‘Attendu’는 ‘작가의 의도’, ‘필연성’, ‘주형’이고, ‘Inattendu’는 ‘외부의 개입’, ‘우연성’, ‘주물’과 같으며, 그의 작업은 이 양극의 긴장 내에서 행해진다.
그의 현재 작업은 모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되어 왔다. 80년대, 금속을 이용한 작업을 구상했고, 이 이 납을 바닥에서 떼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작품은 기존의 건물 자체(여기서는, 벽과 바닥)가 주형으로 사용되었고, 그 결과물인 주물의 형태도 각각 다르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리처드 세라는 주물 의 조형적 미보다는 긴박하고, 치열한 작업 과정에 더 무게를 두었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윤희도 바닥을 주형으로 사용했고, 2000년대부터는 열린 주형을 제시한다. 이때부터 리처드 세라와 윤희의 작업은 다른 국면을 띄게 된다. 후자는 하나의 주형을 사용하여 좀더 다양하고 미 적인 주물이 가능하도록 ‘열린 주형’을 사용한다. 주형은 대략 150~300kg이며, 원뿔, 원기둥, 원구, 등의 모양이다. 그리고 이 주형 안에 펄펄 끓는 쇳물을 뿌리고 주형을 굴리기 위해서 주물공장 기술자의 힘을 빌린다. 윤희의 작업은, 예를 들어, 브론즈 250kg(일반적으로 한 도가니에 들어가는 양)을 녹이는데 네 시 간 정도 걸린다. 약 1200도의 쇳물을 국자로 퍼서 조형 안에 붓는다. 길고 거대한 손자루가 달린 국자에 쇳물이 10여 kg 정도 담긴다. 무거운 국자에 더 무거운 쇳물이 더해져서 틀 안으로 던져지는 동시에 주형 을 굴린다. 녹여진 쇳물은 그날 모두 사용해야 하기에, 쇳물이 굳지 않도록 두세 시간 동안 계속 열을 유 지해야 한다. 완성된 작업을 각각 펼쳐 놓아야 하기에 충분히 넓은 공간도 확보되어야 한다.
주물공장의 숙련된 기술자라고 하더라도, 용액이 튀기에 항상 위험이 따른다. 이들의 성향은 각각 다르다. 윤희는 그들의 서로 다른 기질, 잠재력, 성격, 등을 규정하지 않으나, 작업에 대한 낯섦이 유지되도록 한 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우연성과 독특성을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작업이기 에 기술자를 설득하는 사이에 용액이 굳어버려, 기대와 긴장의 순간이 증발되기도 한다. 결과가 잘 되든 못되든 모두 작가의 책임이라고 수차례 맹세를 해도, 기술자들은 쇳물을 붓는 속도나 자세가 조금만 달라 도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없음을 익히 알기에, 예술작품이라는 새로운 모험과 시도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기술자의 주저함과 의심, 힘의 강약, 금속의 종류와 성분, 쇳물의 온도, 날씨, 주형을 굴리는 속 도, 바닥의 상태와 마찰력, 그리고 다시 던져지는 쇳물 등 각각 요소의 미세한 차이에도 결과는 달라진다. 색감에 있어서도, 예를 들어, 브론즈는 주형에 닿지 않는 부분은 산화가 되어 검은색이 되나, 닿은 부분은 재료 원색에 가까운 붉은색으로 남는다. 알루미늄(cf. <빗물 화석>)은 미세하게 다른 성분과 환경때문에 어 떤 작품은 햇빛 속으로 승화될 듯 가볍고 명쾌하기도, 또 다른 작품은 우울하고 침울하다. 매번 새로운 불 완전한 환경에서, 갖가지 예상치 못한 우연이 중첩된다. 따라서 처음 한 국자를 조형에 뿌린 후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에 따라서, 작가는 즉흥적 판단과 결심을 해야 한다. 매번 그렇게 그는 ‘즉흥연주’를 한다. 고대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오랜 준비 과정은 조수나 보조자가 맡았고, 결정적인 피날레의 순간은 작가 자 신이 누렸다. 윤희는 이를 완전히 뒤집어, 피날레의 순간, 오히려 피날레이기에 더욱더 외부의 개입에 열 어놓는다. 이에 대한 아쉬움일까? 윤희의 드로잉에는 이 극적인 순간이 그대로 담겨있다. 외부와 우연성 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당시 다이내믹하고 긴장된 상황과 전율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의 드로잉은 ‘즉흥 연주의 악보’와 같다.
21세기의 세 과제, 그리고 주형으로부터 주물의 자유 가능성 제시
21세기 작가라면, 다음과 같은 세 과제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첫 번째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의 미술에 대해서다. 큰 논쟁 중의 하나는 ‘오리지널과 우연성(외부개입)’의 관계에 대해서다. 유명한 예시 로, 로댕 작품은 주형이 있어서 사후 제작이 가능하며, 작가도 이에 찬성했다. 같은 주형에서 나온 작품이 라도 provenance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각 나라의 사후 에디션 법(Droit de tirage post mortem) 에 따라 일정한 수까지는 미술품이고, 그 외는 공예품이라는 아이러니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과 함께 ‘원본이 없는 다수 원본인 멀티플 아트’(Multiple Art), 코드만 소유하는 ‘NFT아트식 원본’으로의 전개 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에, 윤희의 작품은 본인조차도 복제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NFT계의 ‘열린 주형’이라고 비유할 수 있는 상품 가운데 하나는 <크립토키티>(CryptoKitties, 제작자의 손 을 떠난 상품이 교배에 의해 새로운 키티가 태어남)라고 할 수도 있다. ‘랜덤 값’을 사용한 우연성이다. 작 품과 상품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유형의 비교연구는 현대미술을 문제화하는 동시에 또다른 국 면을 제시한다.
두 번째, ‘환경미술’과 관련하여, 울라프 엘리아슨과 같이 작업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작가들과, 이우환과 같이 ‘작가의 개입이나 마티에르를 최소화’하는 방식의 소극적 참여도 있다. 윤희는 하나의 주형 으로 주물의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기에, 반복하여 주형을 사용(재활용)한다. 이로써 주형 제작을 최소화 할 수 있기에, 소극적으로나마 ‘RE(Renewable Energy)100’ 캠페인에 참여하는 셈이다. 이런 ‘열린 주형’의 방 식이 널리 퍼져 많은 젊은 작가들이 동참한다면, 그때는 적극적인 환경운동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세 번째 과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다. 근대의 주체는 보이지 않는 주형에 갇힌 주물과 같았다. 자유의지의 신화에서 깨어난 인간은 DNA구조, 사회체계, 선입견, 등 각종 짜인 주형에서 똑같이 생산되는 주물처럼 산다. 주물(주체)의 재질(이데아에서 근대주체로) 자체는 바뀔 수 있었지만 그 찍어낸 형태는 똑같았다. 이 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이용백의 <피에타-자기 죽음> 이다. 이 작업에서 하얀 사이보그 스타일의 주형 은 제 몸에서 나온 분홍색 주물을 안고 있다. 방금 사망한 듯, 삶의 빛깔(분홍색)이 죽음의 빛으로 변하기 도 전이다. 알맹이(인간)의 죽음을, 주형은 예측이나 한 듯 아무런 동요없이 응시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윤희는 주형 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주물의 역동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죽음의 시대’에 주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것이 오늘날 그의 작업이 필요한 동시에 그의 미학 을 돋보이게 한다. 그의 작업은 ‘주체는 외부로부터 출발’하고, ‘우연성’과 ‘외부개입’의 적극적 수용하며, 펄펄 끓는 쇳물로 창조적 열정을 더하며, 주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 작가 약력
윤희
1950 서울 출생
1972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74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대학원 졸업
주요 개인전
2022 non finito,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 대구
by itself, 리안갤러리, 서울
non finito, 루드비히 미술관, 코블렌츠, 독일
2020 Rain-Fossil, 리안갤러리, 대구
2018 in/attendu, 리안갤러리, 서울
피앤씨 갤러리, 대구
2017 Lumière-Matière, with Bertrand Planes, 살스 요새, 쌀스 르 샤또, 프랑스
Here, Now, Test Bed,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6 에스키스, 송아트갤러리, 서울
2015 드로잉, 드로잉, 리스바, 페르피냥, 프랑스
2014 Ruissellement, 피앤씨 갤러리, 대구
Quizas, 호라이즌 갤러리, 콜레라, 스페인
리상스 트로아, 아나크루스, 몽펠리에, 프랑스
2012 레마 갤러리, 툴루즈, 프랑스
Saisies, Made in Asia, 툴루즈, 프랑스
Saisie d’instant, Acb 국립예술극장, 바르르뒤크, 프랑스
리상스 트로아, 페르피냥, 프랑스
2010 Crayonnage, 구지 갤러리, 대구
2005 너무 높지도, 너무 멀지도, 랑데부, 오풀 페리오스, 프랑스
2003 시공 갤러리, 대구
1999 두르벤 갤러리, 트레드레즈 로케모, 프랑스
1998 르 디스뇌프, 벨포르미술학교, 벨포르, 프랑스
르 디스뇌프, 몽벨리아르 미술관, 몽벨리아르, 프랑스
1996 에두아르 마네 갤러리, 젠빌리에, 프랑스
1995 샤이유 현대미술관, 프렌, 프랑스
1993 토린느 성, 카사뉴 베고네스, 프랑스
1991 라 알 오 블레, 클레르몽페랑, 프랑스
니키 디아나 마르쿼트 갤러리, 파리, 프랑스
1987 파사쥬 아트센터, 트루아, 프랑스
주요 단체전
2021 15주년 기념 소장품전: 조각, 리안갤러리, 대구
2020 L’esprit du lieu, 이야생트 리고 미술관, 페르피냥, 프랑스
2018 In-Side Out, 호라이즌 갤러리, 콜레라, 스페인
2017 프리 박스,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6 Why Drawing now?, 호라이즌 갤러리, 콜레라, 스페인
2015 서울-파리-서울, 세르누치 박물관, 파리, 프랑스
In a Room, Line and Form, 호라이즌 갤러리, 콜레라, 스페인
아트파리 아트페어, Oeuvre in situ, 파리, 프랑스
Briser le toit de la maison, 에콜 데스 이어, 우에고트, 프랑스
2014 Walls and Bridges, 호라이즌 갤러리, 콜레라, 스페인
2008 세계 속의 한국현대미술 파리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07 국제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인천
2006 바다 미술제, 부산비엔날레, 부산
8인의 재불 한국 여성 작가에 대한 경의, 파사쥬 드 레츠, 파리, 프랑스
2005 Rendez-vous en vignes, 샤토 벨레스타 박물관, 벨레스타, 프랑스
종이로 말하다, 조현화랑, 부산
라 비엔날레 드 이시, 이시레물리노, 프랑스
2003 가나-보부르 갤러리, 파리, 프랑스
FIAC, 시공갤러리, 파리, 프랑스
2002 FIAC, 시공갤러리, 파리, 프랑스
2000 Nature / inventive, 고네스, 프랑스
1999 제이콥 조덴 아트센터, 앤트워프, 벨기에
Dialogue avec la Nature, 클로이스터, 생디에데보주, 프랑스
1996 Place to space, 가인갤러리, 서울
한 장소, 7공간, 단추구멍공장, 이브리쉬르센, 프랑스
B. 조던 M. 데바리외 갤러리, 파리, 프랑스
1995 리갈드스 갤러리, 파리
키타칸도 미술관, 마에바시, 군마, 일본
Dess(e)ins d’artistes, 레스 카헤르 드 아틀리에, 툴루즈, 프랑스
1993 피에르 콜트 갤러리, 니스, 프랑스
Curios & Mirabilia, 와롱성, 되세브르, 프랑스
1990 젊은 조각, 아우스터리츠항, 파리, 프랑스
1988 Avant Première pour une collection, 브레티니쉬르오르주, 프랑스
니키 디아나 마르쿼트 갤러리, 파리, 프랑스
1987 Dedans dehors, 브레티니쉬르오르주 아트 센터, 브레티니쉬르오르주, 프랑스
젊은 조각, 아우스터리츠항, 파리, 프랑스
1986 살롱 데 몽루주, 몽루주, 프랑스
1985 살롱 데 몽루주, 몽루주, 프랑스
샤토루 비엔날레, 샤토루, 프랑스
1995년의 예술작품, 파리, 프랑스
젊은 조각, 아우스터리츠항, 파리, 프랑스
1984 메종 데 보자르, 파리, 프랑스
국제 심포지움, 에콜 데스 보쟈르 마콩, 마콩, 프랑스
살롱 데 몽루주, 몽루주, 프랑스
주요 소장처
체르누스키 미술관, 파리, 프랑스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대한민국
와롱성, 되세브르, 프랑스
빌 드 브레티니쉬르오르주,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