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갤러리분도에서 매년 신진작가 발굴 프로모션을 목적으로 열어온 카코포니 <Cacophony:불협화음>전시는, 서툴지만 실험 정신이 담긴 작가 지망생들의 작품들을 선보인다는 기획의도 아래 故박동준 갤러리분도 대표께서 젊은 미술인들의 잠재력을 이끌 선도적 의무의 뜻으로 긴 시간을 이어 오고 있다. 일반 상업화랑에서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신진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작가적 삶을 살아가는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기에 고인의 뜻을 이어 올해도 <카코포니17>를 진행하고자 한다.
김민석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들을 거침없이 그려 본인만의 독특한 화면을 담아낸다.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복잡한 그림을 잠시 들여다보면, 상상의 단서들이 담겨져 있는 새로운 생물체가 발견된다. 그 대상은 명확과 불명확 사이의 세계에 살고있는 미지의 생물로 작가의 낯선 상상에 이끌려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양한 색채의 물감 덩어리와 점, 선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회화 속 생물체를 바라보면서 우리들 각자의 감정, 이미지, 이야기로 펼쳐나가는 상상의 시간을 갖게 한다.
회색빛의 모노톤으로 담담하게 그려진 김지언의 회화는 과거 혹은 현재의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미지화하여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삶의 연속성 속에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 상황을 담은 다양한 웹 이미지를 차용해 대상의 색을 제외 시켜 모노톤으로 화면에 옮긴다. 축약된 이미지 위에 물감이 흘러내리거나 흩뿌리는 표현, 물감을 두텁게 올리는 등 다양한 회화적 표현을 통해 작가의 새로운 감정이 이입된다. 김지언 작가의 작업으로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 이미지 한 컷이 관람자의 기억 속에 인식되길 기대한다.
배소영은 본인이 살아오면서 느낀 감정과 감각 그리고 경험을 하나의 대상(밟힌 잡초, 흩어지는 연기, 벌거벗은 나무, 지나가다 깔린 두꺼비, 씻겨 내려간 거품)에 의인화해 연약한 인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최근 그 대상을 자연에 관심을 두고 시선을 나무로 옮겨, 작가가 느끼는 감각을 하나씩 연상해 내어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과정은 인간 삶의 희로애락에서 느끼는 복합적인 다양한 감정과 닮아있고 이를 여러 화폭으로 담아낸다. 연필로 연하게, 번지고, 지워지고, 섬세한 선들로 그려진 엉켜있는 나뭇가지의 형태를 그려내는 작업 행위를 통해 치열한 인간의 생존과정과 동일시 된다.. 연필 드로잉에서 시작된 작가의 감정이입은 수채화로 그려진 색채드로잉으로 연결되어 사람의 신체의 상처 핏줄, 멍, 생채기 등의 이미지 형상으로 인간의 단면을 드러낸다.
단단한 신체가 녹아내리는 듯한 묘한 표현이 매력적인 정해인의 그림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덥고 습했던 어느 날, 몸이 너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움직임도 없는 무기력한 자신이 침대에 누워 그대로 녹아내려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초콜릿, 카라멜 혹은 주스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삶에 무기력한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자화상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일기를 쓰듯 하루하루를 지켜나가고 있다.
이번에 선정된 김민석, 김지언, 배소영, 정해인 4명의 신예 작가들의 개성 있는 작품들이 하나의 통일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예술적 에너지를 담은 6월의 갤러리분도 <카코포니17>전시가 젊은이의 생동하는 패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