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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ACC FOCUS : 아쿠아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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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서사와 통찰’… ACC‘아쿠아 천국’전시


- 9일부터 9월 12일까지 문화창조원 복합3·4관
- ‘물’주제 수생태계와 인간의 대안적 관계 모색  
- 5개국 작가 11명 참여 융복합 미술 14점 선봬


기후위기 시대, 생명의 원천인 물의 가치와 소중함을 융·복합 현대미술로 풀어낸 전시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이강현)이 기획전시 ‘아쿠아 천국(Aqua Paradiso)’을 오는 9일부터 9월 12일까지 ACC 문화창조원 복합3·4관에서 개최한다. 

물을 주제로 한 ‘아쿠아 천국’엔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프랑스 출신 작가 11명이 참여해 현대 미술작품 14점을 선보인다.

인간이 신화와 전설의 시대를 살아갈 때 등장한 물,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함께한 물, 인간 무의식에 존재하며 서사를 창조하는 물,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는 조절자로서 물, 우주를 구동하는 물리학적 유체로서 물, 치유자로서의 물 등 다양하고 풍부한 물의 서사를 담은 작품들이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리경 작가의 매체 예술 폭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천지연 폭포를 빛과 소리로 재해석한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를 통과하며 관람객은 물로 정화되는 느낌을 경험한다. 

폭포를 지나면 말레이시아 작가 이 이란의 사진 연작 ‘술루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400년간 술탄 술루국이 지배했던 바다를 배경으로 역사적 사건과 작가의 기억을 투영해 상상력을 자극한다. 

계속해 시선을 붙잡는 작품은 인도네시아 작가 마리안토의 벽화 작품 ‘띠르따 페르위타사리’다. ‘생명의 신성한 물’을 뜻하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전통적인 자바 문화에 담긴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을 엿볼 수 있다. 

프랑스 작가 아드리앵 엠(M)과 클레어 비(B)의 ‘아쿠아 알타-거울을 넘어서’는 ‘아쿠아 알타(높은 물)’ 즉, 베니스 대홍수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지난 2019년 베니스 대홍수 장면이 입체 책에 나타나고 이것을 매개로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대홍수 속에서 펼쳐지는 연인들의 이야기로 기후위기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여기에 영산강물의 근원인 광주 무등산 생태와 경양방죽 인공호수의 역사를 탐구한 권혜원의 ‘액체비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를 차용해 치유하는 물을 형상화한 김태은의 ‘구원_증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자성유체를 이용해 유체역학과 미학을 접목한 닥드정의 ‘원천미술’을 만날 수 있다.

폐 집어를 설치작품으로 승화해 물의 순환과 올바른 사용을 시각화한 부지현의 ‘웨어 이즈 잇 고잉(Where is it going)’, 대만의 대홍수 신화와 전설을 매체 예술로 표현한 리우 위의 ‘이야기가 넘쳐 홍수가 될 때’, 융 심리학의 무의식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물의 속성을 상징화한 빠키(Vakki)의 동작 예술 작품 등을 통해 물에 관한 새로운 시각 예술의 확장을 체험할 수 있다. 

해양 오염의 지표가 되는 산호 연구를 바탕으로 한 설치작업도 마련했다. 제주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에코오롯은 ‘제주산호뜨개’ 작품으로 해양생태계 보존의 절박함을 관람객과 공유한다. 전시 기간 중 일반인 대상으로 산호뜨개 체험 공동연수를 연다. 여기서 제작된 산호뜨개 결과물은 전시장에 설치돼 작품의 일부가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매년 핵심 콘텐츠 주제를 선정해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콘텐츠 주제인 ‘자연 그대로’ 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균열 등 환경 위기를 절감해 제시한 화두다. ‘아쿠아 천국’ 역시 2022년 콘텐츠 주제 ‘자연 그대로’를 반영한 전시다.

‘아쿠아 천국’ 전시는 무료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8시까지 연장 개관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ACC 누리집(http://www.ac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강현 전당장은 “아쿠아 천국은 만물을 순환하고 치유하는 물의 서사를 풀어낸 전시” 라며 “보다 많은 시민께서 전당을 찾아 전시를 즐기며 물의 소중함을 마음에 되새겼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주요 작품 소개

리경 (1969~, 한국)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2018, 4K 단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사운드, 거울, 5분 56초

리경은 빛이라는 비물질적 매체를 활용하여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설치작품을 선보여 왔다. 빛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피상적인 물질세계를 넘어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에 맞닿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연못’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의 천지연폭포를 빛과 사운드라는 매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하늘에서 내린 비와 땅에서 솟아오른 물이 만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물줄기 아래 끝없이 깊게 펼쳐지는 연못이 자리한 천지연폭포의 순환적이고 반복적인 구조는 작가가 작품화를 결정한 계기로 작동했다. 선명하게 빛나면서 하강하는 물방울 이미지와 극대화된 사운드로 전시공간에 구현된 폭포의 비경은 벽면과 바닥을 통해 반사되면서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이렇듯 무한히 전개되는 폭포의 이미지에서는 모든 것이 흐른다는 ‘만물유전’ (萬物流轉, Panta Rhei)의 법칙이 드러난다. 한편 본 작품의 제목은 백남준이 1977년 발표한 LP인 「My Jubilee ist Unverhemmet」의 제목에서 비롯된바, 유연하고 강인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백남준이 강조하던 삶과 환희를 지시하기도 한다. 


이 이란 (1971~, 말레이시아)


술루 이야기 – 칼라윗의 기린
2005, 디지털 C 프린트, 61×61cm

이 이란은 사진매체를 기반으로 동남아시아 군도의 격동하는 역사와 관련된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의 작품은 식민주의·신식민주의적 쟁점·권력·사회적 경험에 대한 역사적 기억의 영향력 등을 다룬다. 각별히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가진 대항적 서사의 힘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 대상·대중문화·아카이브·일상적 오브제로부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시각적 언어를 끌어낸다. 
〈술루 이야기〉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사이에 존재하며 오늘날까지도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술루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다. 본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술탄 술루국이 지배하던 이 바다는 오늘날 영토분쟁의 씨앗이 된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의 지배를 거쳐 반정부세력과 무장단체의 거점이 되었다. 이러한 갈등의 핵심이 되는 지역, 사바주에서 태어난 작가가 술루해의 기억과 역사를 다루는 것은 필연적이다. 작가는 술루해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한편, 도서관과 박물관,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기록들과 작가의 기억을 결합하여 이미지를 구성했다. 바다는 해적·노예·아편·태풍·난파선·술탄 등 술루해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의 배경이자 각각의 디오라마를 담는 그릇이 된다.


마리안토 (1977~, 인도네시아)


띠르따 페르위타사리
2022, 벽에 목탄, 카본 안료, 300×1826.9cm,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마리안토는 전통 풍경화의 낭만적 언어를 거부하고 기술발전, 산업화, 토지오염 및 천연자원 착취에 내재된 식민지 개척자와 자본주의자의 충동을 다루는 상징적인 흑백의 회화, 드로잉, 설치 작품을 제작해 왔다. 〈띠르따 페르위타사리(Tirta Perwitasari)〉는 작가의 거주지 인근, 활화산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성스러운 샘이 존재하는 자바섬의 풍경을 담고 있다. 작품 제목 〈띠르따 페르위타사리〉는 생명의 물, 맑고 신성한 물의 정수를 뜻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자바문화에 담긴 자연 존중과 보호의 가치를 환기하고, 그것이 오늘날의 위기에 어떤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는지 드러내고자 한다. 자바인들은 산과 숲을 초자연적인 힘이 깃든 영적 공간으로 존중해왔다. 우물, 강, 호수, 바다 등 물과 수원을 뜻하는 단어 ‘파티르탄’(Patirtan)에는 삶의 근본이라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물을 사용하여 몸과 영혼을 정화하는 목욕의식 ‘시라만’(siraman), 풍요로운 자연을 선물해 준 우주에 감사를 전하는 전통의식 ‘메르티 데사’(Merti Desa) 등의 전통의식은 수원의 가치에 대한 자바인의 이해를 보여준다. 이런 전통관념은 자바인들이 무분별한 수자원 사용이나 지나친 벌목 또는 천연자원 채취를 제한하는 규칙을 만드는 근거로 작동한다. 작가는 자바섬의 풍경과 지역의 전통적 지혜를 함께 소개하며, 바로 그 지혜를 가꾸고 후세에 전달하는 일이 자연과 환경을 돌보고 존중하기 위한 실천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닥드정 (1982~, 한국)


원천미술 
2016~2022, 자성유체, 전자석, 전자석 컨트롤러, PC, 가변설치

닥드정은 미학적 관점에서 기술을 새롭게 응용함으로써 시각적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뉴미디어 작업을 진행해왔다. 〈원천미술〉은 자성유체(磁性流體)라는 신소재를 활용한 작가의 ‘유체미학’ 연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다. 이 아카이브에는 작가의 연구 과정을 담은 영상자료와 현미경, 유리초자와 같은 장비, 샘플 및 소품이 포함된다. 자성유체는 미세한 자기입자가 혼합된 유체로 1960년대 무중력 공간에서 로켓 연료를 공급하고 우주복의 이음새를 막기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되었다. 작가는 자성유체가 가진 물성을 활용하여 새로운 드로잉의 재료로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해왔다. 하얀 실험실 가운을 입고 테스트를 진행하는 작가의 모습과 사운드에 따라 춤추듯 움직이는 액체의 운동이 겹쳐지며, 〈원천미술〉은 신기술과 유체역학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예술가의 미학적 고투 가운데 위치한다.


아드리앵 M & 클레어 B (2011~, 프랑스)


아쿠아 알타 – 거울을 건너서
2019, 팝업북, 증강현실, 팝업북: 28×23cm (10)

아드리앵 M & 클레어 B는 디지털 아트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공연과 전시를 아우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특별히 고안된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현실과 가상현실을 결합한 예술작품을 제작한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도전의 핵심에 둔다. 상상력을 촉발하는 유희와 기쁨에 기반한 시각언어로 시대를 초월한 시를 창조하기 위해 오늘날의 기술을 적용한다. 
작품 제목 ‘아쿠아 알타(Acqua Alta)’는 이탈리아어로 ‘높은 물’을 뜻하는 단어로 베니스에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이상조위 현상(해수면의 높이가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 현상과 맞물려 아쿠아 알타 역시 심각해지고 있다. 오늘날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아드리앵 M & 클레어 B의 〈아쿠아 알타 – 거울을 건너서〉는 한 여자와 한 남자, 집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관객들은 팝업북을 매개로 증강현실(AR)에서 전개되는  퍼포먼스에 초대된다. 축축하고 비 내리는 어느 날 물의 수위가 상승하여 집이 침수된다. 여자는 미끄러져 사라지고 그녀의 머리카락만 남았다. 그것은 살아있다. 이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일차적으로는 당면한 기후위기를 지시하지만 특이하면서도 보편적인 재난, 그리고 상실과 탐색이라는 주제로 점차 확장된다. 이와 동시에 기이한 것, 타자성에 대한 공포와 그것을 길들이는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나아간다.


권혜원 (1975~, 한국)


액체 비전 - 프롤로그
2022, 16채널 비디오, 8채널 사운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권혜원은 특정한 사건이나 기억이 배어 있는 장소에 관해 방대하게 리서치하고 영상·설치·퍼포먼스 등으로 서사화 하는 작업을 해왔다. 〈액체 비전 - 프롤로그〉는 ‘강’(江)을 미디어로 볼 때 우리의 인식에 어떤 가능성이 생겨나는지 탐구하는 프로젝트다. 강은 어떤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으며, 강이라는 공간에서 작동하고 읽히는 텍스트는 무엇인지, 강은 어떤 데이터 저장장치인지 묻는다. 그리하여 매체와 강이라는 두 환경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관습적인 인식과 감각의 한계에 도전한다. 
〈액체 비전 - 프롤로그〉는 위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구체적인 강의 도입부에 관련된 환경을 탐구한다. 산의 수원지에서 시작해 계곡, 습지, 저수지의 공간을 그 대상으로 한다. 다양한 물의 특성을 아우르며 환경-특정적인 감각을 진화시켜온 양서류의 시각을 중심으로, 생태 다큐멘터리나 수생태계의 재현에서 '투명한' 것으로 감추어져 있는 측정, 기록 장치들, 인간의 관찰을 매개하는 다양한 시각장치들을 다룬다. 또한 우리를 낯선 곳에 두는 해양 SF들의 관점을 공유하며, 수륙양용의 시각에서 육지 중심적으로 편향된 관점들을 재고해보고자 한다.


빠키 (1978~, 한국)


무의식의 원형 
2022, 혼합재료,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빠키(Vakki)는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정해진 궤도에 따라 사물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에너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존재의 생성과 소멸, 순환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는 빠키의 작품은 작가 고유의 발랄한 시각언어로 매만진 기하학적 요소들의 유쾌한 리듬이 특징적이다. 

〈무의식의 원형〉은 기하학적인 조형요소를 반복하고 재조합하면서 확장해 나가는 작가 고유의 방법론을 적용해 물의 속성을 표현한 키네틱 설치작품이다. 본 작품의 구상에서 작가는 특별히 물의 유동성과 순환성에 주목했다. 끊임없이 흐르고 순환하는 과정 속에서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고 조건에 따라 안개, 이슬, 비, 구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물의 속성은 기본 형태의 반복에서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의 문제의식과도 연결점이 있다. 조명을 받으며 움직이는 구조물은 햇빛이 비쳐 반짝거리는 수면을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나아가 〈무의식의 원형〉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사용되는 동그라미 형태는 물의 순환성을 형태적으로 가시화할 뿐 아니라, 융이 말하는 근원적인 무의식의 구조를 드러내는 상징으로서 사용된다. 그리하여 작가는 원형의 형상을 통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편 작품을 태곳적부터 전해져 온 이미지와 연결하고자 시도한다.


에코 오롯 (2013~, 한국)


제주산호뜨개
2018~2022, 털실, 솜, 가변설치

에코 오롯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오롯한 세상을 위해 창조하고 행동하는 생태예술활동을 지속해왔다. 이러한 활동은 기후위기시대에 예술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하고 자연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제고하는 한편 지구를 파괴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다.

본 전시에서는 에코 오롯의 활동 두 가지를 소개한다. 〈제주산호뜨개〉는 함께 모여 산호를 뜨는 작업을 통해 산호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해양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환경운동이자 커뮤니티 아트다. 수온상승으로 인한 산호백화현상, 산호의 죽음은 기후위기로 인해 해양생태계 전체에 닥친 위험의 지표가 된다. 산호뜨개는 해양생태계가 맞닥뜨린 위기를 알리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어 온 운동으로 그중 에코 오롯의 〈제주산호뜨개〉는 특별히 제주도의 연산호에 초점을 맞춘다. 정해진 규범이 없고 끝도 시작도 존재하지 않으며, 부분과 전체가 이어져 있는 산호뜨개는 자유로운 방식과 유기적인 형태에서 자연과 산호를 닮았다. 

〈플라스틱 만다라〉는 바다에 대한 애도와 축복의 마음을 담고 있다. 작가는 고행하듯 바다 앞에 엎드려 모래사장을 기어 다니며 플라스틱 조각을 줍는다. 그렇게 얻은 플라스틱으로 티베트의 승려들처럼 모든 생명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담아 만다라를 만들고 해체한다. 거대한 바다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한 알 한 알 줍는 과정은 고된 노동으로도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바다의 고통을 전한다. 끝내 해체되어 사라지는 만다라는 지난하고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무릅쓰고 감내하는 이의 간절함 덕분에 작품의 메시지는 당장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급하고 간곡한 탄원으로 다가온다.


김태은 (1971~, 한국)


Rectangular System 
2005(2022년 재제작), 빔프로젝터, 컴퓨터, 지향성마이크, 오디오 인터페이스, 가변설치

미디어아트·영화·광고·퍼포먼스 등 서로 다른 영역을 오가며 활동해 온 김태은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현실의 메커니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시스템을 구성한다. 〈Rectangular System〉은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관계성을 시각화 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작가는 바둑판이나 운동경기장이 보여주는 사각형의 형태가 서로 마주하거나 오고 가는 관계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보고, 과연 이 관계가 대등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관객이 긴 테이블의 양쪽 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눈다. 이때 그들의 대화는 소리 데이터로 치환되어 액체가 유영하는 공간으로 재생산된다. 서로를 향한 소리의 양과 길이에 따라 달라지는 물결의 방향과 흘러가는 사각형의 모양은 대화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양상을 시각화 한다. 

〈구원_증발〉에서 작가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의 한 장면을 차용하여 작품으로 재매개화한다. 작가는 오프닝 시퀀스 중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주인공 저스틴이 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을 1초에 24프레임으로 분절 후 출력하여 이미지를 물질화 하고 그것을 물에 용해시킨다. 작가는 우울을 의미하는 단어 ‘멜랑콜리’(melangcholy)의 어원이자 고대 그리스에서 우울증의 원인으로 여겨지던 ‘흑담즙’(melankholia)을 영화적으로 추출하는 방법론으로서 이 과정을 고안했다. 용해된 결과물은 증발되어 대기 속으로 흩어진다. 그것이 죽음 이후의 구원을 나타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남은 결과물은 무엇일까?


부지현 (1979~, 한국)


Where is it going
2022, 모터, 센서, 폐집어등, LED, 수조, 워터 펌프, 가변설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부지현은 수명을 다한 폐집어등을 재활용하여 초현실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설치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어두운 수평선 너머로 반짝이는 불빛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제주 태생인 작가의 생활과 밀접한 환경으로서 바다에 얽힌 기억과 경험을 응축하고 있다. 본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Where is it going〉은 이러한 경험적 인상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순환하는 물의 이미지를 활용해 유한한 자원인 물의 사용을 비판적으로 재고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시도한다. 산업화와 도시화·인구 증가, 기후변화는 작금의 물 부족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 작가는 물이 더 이상 무한한 자원이 아님을 인식하고 수자원의 합리적 사용을 위한 사회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해 본 작업을 구상했다. 〈Where is it going〉에서 관객들은 두 개의 창을 통해 펌프로 순환하는 물이 흔들리는 집어등을 타고 흘러 수면 위에 그리는 파장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목격한다. 이렇듯 이미지화 된 물의 흐름과 순환은 미적 경험을 경유하여 물의 올바른 사용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리우 위 (1985~, 대만)


이야기가 넘쳐 홍수가 될 때
2020, 2채널 스크리닝, 비디오 설치, 컬러, 스테레오, 토우 모델, 12분 38초

〈이야기가 넘쳐 홍수가 될 때〉는 254개 이상의 민족들 사이에서 84개의 언어로 전해지는 대홍수 신화에서 출발한다. 인류의 시작·죽음·재생·세계의 변천에 대한 전설들은 구전과 기록을 통해 대대로 전해졌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집단적인 ‘의식의 서사’로 변모한다. 이들 신화의 유사성은 각 문화의 차이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동시적인 경험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한편, 현실이나 논리의 제한을 넘어선 이야기로서 경험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정보에 대안을 제공한다. 인구폭발, 기후변화, 여섯번째 대멸종의 가능성에 직면한 환란의 시대에, 우리 스스로 조성한 체계의 한계에 부딪히기 전에 인간과 자연환경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구전설화를 현대 미디어에 마주 세울 때 어떤 종류의 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서로 다른 문화가 가진 상이한 종의 관념은 인류와 우주의 공존에 대해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리우 위의 작품은 작가만의 고유한 의식의 서사를 창조하기 위해 신화와 인식, 동시대 미디어 사이의 유사성을 횡단한다. 고대의 신화를 해석함으로써 작가는 오늘날 지식정보 위에 세워진 세계의 질서를 질문하고 우리의 기원을 재고하도록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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