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無所不爲) - 욥42:2
글. 홍희기
서울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미국의 비평가 로버트 로젠블럼은 모든 작품을 사랑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말했다. 이는 비평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덕목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함윤희의 작품에 애정을 느낀다.
그는 두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공개했던 도예와 가구 공예를 다시 한 자리에 펼쳤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세례명)을 건 공간의 개관전이라는데 그 의미가 특별하다.
그의 작품은 저마다의 연대기를 지니며 고난했던 과정과 각각의 사연을 담아 관객과의 소통을 기대하고 있다. 모든 작품은 작가 함윤희로 대변되며 그 주제(concept)는 자연에 기반한다. 이에 대한 소재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놀던 기억 속의 풍경들이다. 숲속의 마른 낙엽, 개울가의 물수제비 파장과 스치는 바람에도 반응하는 수면 위의 잔물결, 파도에 휩쓸리듯 떠밀려간 해변가 모래사장의 신비로운 잔상들, 바람 부는 날의 선선한 촉감들이 흙으로 빚어낸 꽃잎으로, 나뭇잎으로 재현된다. 빗살 문양의 화병, 연적, 촛대 등의 도예와 가구의 형태로 시각화된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삶의 근원이자 정서적 위안이 된다. 우리 역시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지각하는 순간 친밀한 연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도자기는 옛 신석기 시대의 토기가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토기에 유약을 발라 800~900℃의 낮은 온도에서 구워내면 매끈한 형태의 자기가 된다. 함윤희는 도자기를 만들 때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코일링하다 보면 일정하지 않은 손맛의 차이로 유약을 발랐을 때 발색의 깊이감이 그라데이션(gradation)으로 다채로운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특히 인디고블루에서 프러시안블루에 이르는 청색 계열의 자기를 보면 공감할 수 있다. 파랑은 영감의 원천이며 희망을 주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또 바다와 하늘을 연상시키는 파란색이 현명함, 성실함, 신뢰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를 닮았다. 같은 도자기인데도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움과 섬세함에 남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 여기서도 작가적 질감을 유추할 수 있다.
함윤희는 예술적 재능의 DNA를 엄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엄마의 소원으로 빚게 된 <달항아리>는 팔순 기념 선물로 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인이 되신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 되어 바라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오랜 기간 사진을 통해 빛으로 그림을 그렸고, 흙이 지닌 물성이 좋아 도자를 시작한 뒤 성공확률 30%라는 시행착오를 통해 인내를 배웠다.
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의 향 내음에 반해 시작한 목공예는 원하는 형상이 될 때 까지 수정이 가능하고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보상의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그의 부단한 수고로 완성된 목가구는 도자 연적의 진열대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그의 실행적 관심은 한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동안 그는 판화에 흥미를 느껴 열공한 적이 있다. 그 과정은 자기(磁器)의 음각 기법으로 활용되면서 한층 극대화된 시너지(synergy)를 보여준다. 무엇이든 세상의 모든 배움은 창작자들에겐 적절한 응용력으로 쓸모를 발휘한다.
이런 작업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여정이 보인다. 무엇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촘촘한 시간들을 견디며 구도자의 오랜 기다림을 손끝 하나하나의 섬세한 노동으로 극복한 쉽지 않은 작업에 대한 열정에 감동하며 고단했던 그의 삶이 예술로서 더욱 풍요롭기를 기대한다.
특히 그간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마리나갤러리가 소외된 예술인들의 활발한 교류의 장이 되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경기 북부 지역의 힙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복주머니 Fortune purse, 17x17x10.5cm, White porcelain inside, Glazed with cobalt blue outside, 2014
호박가족 Pumpkin family , 左-10x10x9cm 中-7.5x7.5x8.5cm 右-8.5x8.5x9cm, White porcelain, glazed inside, 2012
시작은 호기심
접었다 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손에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잡혀진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손에 잡았던 그마저의 것들도 스스로 내려 놓거나 버려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쉼표였다.
중국 작가 ‘잔홍즈’의 말을 빌리면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데, 내가 선택한 쉼표는 여행이었다. 여행길에 들고 간 책 가운데 도자기 역사서가 있었다. 어느 나라든 역사책 거의 첫 부분에 인간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자 생존의 기본 수단인 토기(土器)를 소개하고 있고, 박물관마다 소장된 나라별 역사, 문화적 배경이 담긴 도자기를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순간을 표현하고 싶은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도예를 시작하게 됐고, 지금에 와 있다.
너무 흔해서 일까? 나는 흙, 물, 공기, 바람, 식물 등 무심히 여겼던 것들에 깊은 관심이 생겼고, 꾸준히 생각을 키워왔다.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고 있으며, 선(善)한 자연의 손길임을 알았다. 흙과 물이 서로 만나 물성(物性)이 변하고 나무와 바람이 서로 만나 불을 생성하고, 손끝에서 변화(變化)된 물성과 불의 이차적 만남이 성사되면서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은 인간의 삶과 무척 닮았다.
내 작업은 흙장난을 하며 뛰놀던 유년시절,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뭇잎 배를 갖고 놀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의 순수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인위적인 개입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물레를 쓰는 대신 느리지만 손으로 코일링(coiling)을 했다. 꽃잎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 바람이 일으킨 물결 등 숨어 있는 것과 보이는 것의 만남을 형상화하며,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찰나의, 고귀한 순간들을 담고자 했다.
물질(Matter)은 mater(mother)에서 유래한 말로 라틴어 wood나무를 뜻하는 material재료라는 말에서 나왔다. 즉 물 바람 태양 같은 물질은 우리 삶을 지탱시키는 뿌리다. 그러나 너무 쉽게 취하고, 쓰고, 폐기해 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작가로서 나의 소임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내 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진실된 예술적 표현에 도달하고자 부단히 애쓰는 일이라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너, 나, 모두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어차피 우리는 자연(自然)에서 다시 만난다.
글. 함윤희(작가, 마리나갤러리 대표)
2014.4.16.을기억하며 Memory for'April 16,2014 Sewol ferry
21.5x21x19.5cm, Glazed with deep green, 2016
나뭇잎배 Bowl designed with leaf boat, 31x21.5x9.5cm, White Porcelain, 2015
전시기간; 2022년 9월 28일(수)~11월 30일(수)
전시장소; Marina Gallery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호수로817 레이킨스몰 2층 260호
개관시간; 화~일 10;30A.M.~5;30P.M. 월요일 휴관
마리나갤러리는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갤러리로, 본인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으며 평면 및 입체작품 등 대관전시의 문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순간을 표현하고 싶은 강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사진과 판화공부가 도예, 목공예 작업들로 이어졌고, 예술을 아끼는 분들과의 소통과 만남을 꿈꾸던 평소의 바람이 2022년 가을의 문턱에 ‘마리나갤러리’로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마리나(Marina)는 라틴어 ‘바다’에서 온 이름이며 제 세례명입니다.
마리나갤러리가 예술을 사랑하고 관심있는 모든 분들이 바다처럼 활짝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소통하는 행복한 공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마리나갤러리 면적은 18평으로 층고는 3.6m, 전시벽 높이 2.8m, 전시벽은 6면으로 총길이는 32.8m입니다. 후문 앞은 전망 좋고 탁 트인 야외 테라스가 있어 행사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관람은 무료이며 레이킨스몰은 현대백화점 킨텍스점과 주차장을 공동운영하고 있어 관람객 모든 분께 무료주차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