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와 국립진주박물관이 공동 주최하고 국립진주박물관과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채색화의 흐름 II’ 특별전이 28일 오후 3시 30분 국립진주박물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8월 29일부터 11월 5일까지 개최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한국 채색화의 흐름 II’ 특별전은 2022년 코로나 정국에도 불구하고 7만 1천여 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큰 호응을 받은 첫 전시에 이은 두 번째 특별전으로, 국립진주박물관과 진주시립이성자 미술관에서 관객을 맞는다. 지난해 첫 기획전이 고구려 고분벽화를 시작으로 고려·조선까지 이어진 화려하고 장엄한 한국 채색화의 원류를 살펴봤다면, 올해 전시는 꽃과 새를 주제로 한 ‘화조화(花鳥畵)’에 초점을 맞췄다.
미술관 전경
총 86점의 한국 전통과 근대 채색화를 선보이는 이번 특별전은 고려시대부터 근현대까지 한국 채색화의 흐름을 조명하는 전시로 국립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꽃과 새, 곁에 두고 즐기다’라는 주제로 서양의 르네상스보다 앞서는 고려시대인 1308년 건립된 예산 수덕사 대웅전 벽화를 임천(林泉, 1908~1965)이 이를 모사한(1937) 모사본 전시로 시작한다. 대웅전 벽화 원본은 6.25 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남아 있는 고려시대 그림 자체가 극히 드문 지금, 그 당시 기법이나 미감을 추정할 수 있는 귀한 모사도다. 연꽃과 부들이 꽃꽂이 된 아름답고 당당한 그림으로 모사도 자체도 85년이 지난 유물이다. 그 옆을 차지하고 있는, 고려시대 묘법연화경 표지에 장식된 금분 연꽃의 섬세함은 우리 고려시대 그림의 한 경향을 유추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자 작품이다.
바로 이어지는 신숙주의 손자 신잠(申潛,1491~1554)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화조도’와 17세기 작자미상 화조도는 소박한 필치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선명한 색채에 세월의 힘을 보태 오히려 우아한 분위기를 얻었다. 화면의 여백, 크고 작은 새와 다양한 꽃들, 배경이 되는 초목과 바위의 표현에서 왕실 그림에서 유래한 채색 화조화의 스타일의 특징을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국립박물관의 새와 꽃들이 진주까지 내려와 일반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한국미술의 깊이와 멋에 취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박물관 전시의 또 다른 볼거리는 화려한 교태전 부벽화(19세기)를 보는 귀한 기회와 함께 궁중 회화에서 영향 받았음이 분명한 19세기의 큼직한 화조도다. 교태전 화조도 부벽화는 큰 종이들을 이어붙인 대형 화면에 목련, 목서, 매화를 그리고 그 위에 금계, 앵무와 같은 각종 새들을 그렸다. 왕실의 번영을 축원하는 의미를 담으면서 오채 안료와 황동분 금색 안료를 사용해 화려함을 더해 19세기 후반 궁중 회화의 수준을 보여준다.
또 유사한 형식과 화제의 19세기 작자 미상 화조도들은 장식화의 형식성, 정형성을 보여주지만 현실 자연과는 조금 다른 회화적 세계를 섬세하게 그린 (이름을 알 수 없는) 화가의 개성과 성품이 묻어난다.
이후 전시는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진 신윤복(申潤福,1758~1814경)의 ‘수탉’, 아버지인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 ~1847)로부터 그림을 배운 신명연(申命衍, 1809~ 1886)의 맑고 아름다운 ‘화조도 병풍’, 나비를 즐겨 그려 ‘남나비’란 별호를 지녔던 일호 남계우(一濠 南啓宇, 1811~ 1890)의 ‘화접도’, 정형성의 끝을 보여주는 8폭 푸른 괴석 궁중장식화 ‘모란도’에 이어 빼어난 솜씨로 감탄하게 만드는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의 화조도 병풍, 이를 어어받은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1861~1919)과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 1850~1941)의 전통 화조도 병풍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꽃과 새의 문양인 그려진 도자 작품을 볼 수있다.
전시는 장소를 옮겨 한국 화조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새롭게 혁신한 한국 근현대 화조화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1·2층 기획전시실에서 ‘낙이망우樂以忘憂 꽃향기, 새소리’를 주제로 이어간다. 관재 이도영(貫齋 李道榮, 1884~1934)과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 1979)가 그린 꽃과 새 그림과 그의 제자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3~2001)의 ‘모란’, 석하 정진철(石下 鄭鎭澈,1908~1967)의 ‘호접도’, 그의 아들 석운 정은영(石雲 鄭恩泳, 1931 ~1990)의 ‘양귀비’와 ‘맨드라미’와 목랑 최근배(木郞 崔根培, 1910~1978)의 꽃 그림, 남원 권번출신의 여성화가 남전 허산옥(藍田 許山玉,1926~1993), 오당 안동숙(吾堂 安東淑, 1922~2016), 운정 김흥종(云汀 金興鍾, 1928~ ), 일지 유지원(一池 柳智元, 1935~ ), 193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화가 정찬영(鄭燦英,1906~1988)의 맥을 이어 천경자(千鏡子, 1924~ 2015), 우초 오낭자(雨蕉 吳浪子,1943~ ), 내화 이화자(乃和 李和子,1943~ ), 원문자(元文子, 1944~ ), 지향 이숙자(芝鄕 李淑子,1942~ ), 소정 황창배(素丁 黃昌培, 1947~2001), 구산 이경수(龜山 李炅洙, 1940~ ), 우담 이영수(雨潭 李寧秀, 1944~ ) 그리고 진주 출신의 향토작가 취당 홍순인(翠堂 洪淳仁, 1888~1962), 윤재 이규옥(潤齋 李圭鈺, 1916~1999), 내고 박생광(乃古 朴生光, 1904 ~1985)의 작품과 서부경남 출신의 연정 안상철(然靜 安相喆, 1927~1993), 운전 허민(芸田 許珉, 1911~1967)의 작품 등 총 24명의 작가 작품이 함께한다.
철마다 피는 아름다운 꽃, 상쾌한 아침을 열어주는 청명한 새소리. 이들은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옛날 옛적 산골 사람들로부터 도시 한가운데에 사는 오늘의 지친 사람들에게까지 위안을 주는 존재다. 따라서 당연히 이들은 그림의 소재가 되어 영원히 삶과 함께했다. 우리 조상들은 학, 백로 같은 크고 멋진 새들을 장식으로 써서 고아한 정신을 기렸고, 메추리 같은 못난 새, 닭과 참새처럼 흔한 새, 봉황이나 공작 같은 화려한 새와 박새, 물총새 같은 귀여운 새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매처럼 무서운 새에도 의미를 담아 그림을 그렸다. 모란 같이 크고 멋진 꽃, 연꽃, 매화, 국화처럼 의미가 분명한 꽃, 목련, 배꽃, 금낭화처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까지 다양한 꽃들이 제재가 되어 자연과 삶의 일체를 도모하며 복을 바라며 사랑을 구했다.
시대가 변한 지금 전통 ‘화조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장식성, 형식의 굴레, 제재의 상징성도 변화한 지금 당대에 권위로 여겨졌던 이미지도 이제 과거에 묻혔다가 나옴으로써 참신함을 얻었으며, 새로운 세대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추어질지 흥미로운 대목이다. 지역적인 접근성 때문에 보다 많은 이들이 관람하기 어렵다는 한계는 있지만 진주의 역사와 지역성을 바탕으로 채색화 담론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서, 전통문화의 한 현상을 지역 브랜드화하려는 진주시의 시도는 매우 흥미롭다. 또한 채색화의 특성상 보다 많은 여성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특히 이번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용인시박물관, 밀양시립박물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가나문화재단, 아라리오 뮤지엄, 이영미술관, 안상철미술관, 미광화랑, 황창배 미술관과 작가들 그리고 개인 소장가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가능했다.
미술관 전경
진주시와 국립진주박물관은 ‘한국 채색화의 흐름Ⅱ’ 특별전을 통해 옛사람들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화조화가 근현대로 오면서 어떻게 계승했는지 가늠해보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시는 무료로 공개되며,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 학술강연회, 실감콘텐츠 체험, 주말 어린이 체험교육이 함께 열린다. 각 전시장에는 전시해설, 오디오가이드 및 온라인 전시 등 관람서비스가 제공된다.
진주시 관계자는 “앞으로 문화예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경남의 거점도시로 진주가 앞장설 것”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바쁘게 살아가는 시민들이 전시로나마 꽃향기와 새소리를 벗하는 여유를 즐겨 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꽃과 새, 신명연申命衍(1809~1886), 조선 19세기, 비단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청화모란봉황무늬병,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유물)
작자 미상, 수덕사 벽화 모사도, 고려시대 14세기(1937년 모사), 117.5x204.5cm, 국립중앙박물관
작자 미상, 화조도(교태전 부벽화 화조), 19세기, 종이에 채색, 132x256cm, 국립중앙박물관
전 이영윤, 화조도, 조선 16세기, 비단에 채색, 160.0x55.2cm(좌), 160.6x55.7cm(우), 국립중앙박물관
청화백자초화조문사각병,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 기증 유물)
미술관 전경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낙이망우樂以忘憂 꽃향기, 새소리
김은호, 벚나무와 새, 1937, 종이에 채색, 123.4x20.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 박생광朴生光(1904~1985), 1982년, 종이에 채색, 136.0×258.0cm, 개인 소장
원문자, 정원, 1976, 종이에 채색, 160x12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찬영, 국화, 1920년대, 비단에 채색, 41.5x50.8cm, 유족 소장
허산옥, 화조, 연도미상, 종이에 채색, 각64.5x32.8cm,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최열 기증
황창배, 무제, 1991, 장지에 아크릴릭, 120x182cm, 황창배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