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박정선 : CONSTANT SLIPPAGE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박정선 개인전 《CONSTANT SLIPPAGE》

2024. 01. 12 (금) - 01. 18 (목)
프로젝트스페이스 영등포


●전 시 명  : CONSTANT SLIPPAGE
●참여작가 : 박정선 Sun Park
●전시기간 : 2024. 01. 12 (금) - 01. 18 (목)
●관람시간 : 13:00 - 19:00 (휴무없음)
●디 자 인  : EELKi
●글          : 박서영
●전시장소 :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616-4)
●후      원 : 영등포문화도시센터

 

 

“아이젠을 채우기”  _ 박서영 (독립 큐레이터)


박정선 작가의 개인전 《Constant Slippage》는전시의 제목처럼 ‘끊임없는 미끄러짐’에 관한 것이다. 과학의 부연으로 말쑥해진 세상, 작가는 그 속의 미세한 불일치, 그리고 그것의 반복을 감지한다.

과학과 그 산물로서 기술은 첨예한 논리와 첨단이라는 휘장을 두르고 어느새 세상의 근간에 자리하게되었다. 다시 말해 과학과 기술은 자연과 대립해 온 기나 긴 역사를 뒤로하고 자연 그 자체가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자연을 ‘설명’할수 있는 체계로서 자연보다 앞선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눈앞의 풍경을 가상과 신속히 동기화하고 그 과업마저자동화하기에 이른 과학과 기술은 새로운 ‘현실’을 (재)창조해 내는데, 이같은 분주함은 단순히 현실의 범위를 넓힐 뿐 아니라 한층 더 유려하고 정돈된, 이해 가능한 형태의 현실을제공하여 불분명성을 줄이고 현실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박정선 작가의 관심사는 이러한 멀끔함과는 대척점에 있다.고도화된 연결성과 이로인한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기술, 경험과 상상, 실재와 인식 그리고 믿음 사이에서 거듭되는 불쾌하고도짜릿한 미끄러짐을 사진, 설치, 영상 등 다매체의 작업으로드러내 보이고자 한 것이다. 이런 작가의 작품은 언제부터인가 당연해진 요철 하나 없는 세상을, 그리고 이에 일조하는 과학과 기술의 기능성을 의심하게 한다.

전시장 쇼윈도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작품<Entangled parallel>(2023)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언어 사이의 미끄러짐을 가시화한다. 해당 작품은 쇼윈도, 그리고 쇼윈도와 평행한전시장 내부 벽에 걸린두 점의 사진 작품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백합 조화를 활용해 직접 찍은 쇼윈도 속 사진의 분위기를 ‘gloomy(음울한), nostalgia(향수), pure(순수한), misty(흐릿한)’와 같은 단어로 설명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해당 사진으로부터 ‘blurry(흐릿한), depth of field(피사계심도), scenery sky(하늘 풍경), star(별), starry sky(별이 수놓아진 하늘)’라는, 작가의 감상과 비슷하면서도 관련 없는 단어를 추출한다. 그리고 이내이 단어들을 삼켜 전시장 내부에 걸린 설산 풍경에 가까운 이미지를 출력해 낸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인공지능 메커니즘의 단편을 드러내는 <Entangled parallel>은 인간의 지능을이식한다는 개발 취지를 넘어선 인공지능의 이종성(異種性)을, 즉 창조자라고 할 수 있는 인간에게 완전히 종속 되기보다도 인간과 다른 하나의 비탈면이자 미끄러짐을 유발하는독특한 마감재로서의 인공지능의 존재성을 가늠하게 한다.

전시장 내부에 걸린 또 다른 사진 작품 <Nan OneMonth After Being Battered by DALL·E>(2023)는 인공지능과의 어긋남을 심화시킨다. 작가는 미국의 사진 작가 낸 골딘(Nan Goldin)의 <Nan One Month After Being Battered((남자친구에게) 얻어맞은 지 한 달 후의 낸)>(1984)을 이미지 생성형인공지능 Midjourney와 DALL· E로 재현해 보고자하였다. 하지만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는 인공지능 프롬프트 탓에 구타를 당한 낸 골딘의모습을 그려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작가는 ‘Her lefteye is swollen and blackened(그녀의 왼쪽 눈은 부어있고 검게 물들었다)’,‘The skin is pale, and there’s a sadness and vulnerability that contrastssharply with the defiance in her gaze.(피부는 창백하며, 그녀의응시에는 반항적이고 날카로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슬픔과 취약성이 묻어있다)’와 같은 간접적인 설명으로망가진 여성의 이미지를 뽑아낸다. 버젓이 산증인이 있는 폭력의 증거가 감상적인 수사로 치환되는 순간, 실재라 해도 믿을 법한 생생한 인물 사진과 실재의 격차는 벌어진다. 실제서사와는 멀어져 실재‘처럼’ 보일 뿐인 이미지는 그렇게 빅데이터라는새로운 정황을 끌어안고 독립적인 실재로 자리한다.

그 앞의 설치 작품 <미끄러져 버리는 체계_A slippery system>(2023)와 벽면 뒤편에 자리한 영상 작품 <...Roaming>(2023)은 이런 인공지능과 같은 과학, 기술의만연 속에서 발생하는 그릇된 인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재생산하는 우리의 모습에 자조적인 시선을보내는 듯하다. 미세한 깃털이 센서를 건드는 순간 작동되는 <미끄러져버리는 체계_A slippery system>는 유사과학의 내용을 읊조리는 소리와 그러한 소리의발원지를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스탠드가 뒤엉킨 모습으로서 과학과 기술의 권력, 그 공고함에 가려진 오인식을형상화한다. 그렇지만 이 오인은 루프의 형식으로 재생되며, 관객에게적극적인 상황의 각성을 유도하기보다, <...Roaming> 속 구 위를 하염없이 기어다니는개미의 모습처럼 미끄러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벗어나지 않는 실태를 그저 목도하게 하는 데 그친다.

미끄러짐을 연발하는 전시장의 작품은 과학과 기술이 지향하는 심리스(seamless) 세계에 오점과도 같다. 만물이 딛고 설, 균열 하나 없는 안전한 지반을 만들고자 하는 과학과 기술의 당찬 목표를 좌절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끄러짐으로써’ 우리는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이가 담보하는 희망의 결함을 인지할 수 있다. 이로써 불일치, 오해, 그리고 유동성을 조장하는 박정선 작가의 작품은 역설적으로현실을 직시하는 아이젠으로 역할한다. 철학자 A. N. 화이트헤드의말마따나 명쾌성의 고집은 사물의 복잡성을 은폐시켜 버리는 감상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추리력을통해 단서를 찾아 짚더미를 뒤지기도 하고, 추론의 근거를 찾다가 거미줄에 걸리는 수도 있는 것이다.”1) 부단히 미끄러지며 한편으로 그런 미끄러짐에 대항할 수 있는 스파이크를 쥐여 주는 전시장의 작품은 기술과학의합리성이라는 장막을 걷고 세계의 이치를, 그 진정한 물성을 깨닫게 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허버트 마셜 매클루언, 꽹땡 피오르, 『미디어는 마사지다』, 김진홍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2001, p.10.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