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 김구림 개인전
2021년 개인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전시
대표 연작인 <음양(Yin and Yang)> 30여 점 출품
가나아트는 한국 전위 예술 1세대이자,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구림(Kim Kulim, b. 1936)의 개인전 《Yin and Yang》을 2024년 8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Space 97’에서 개최한다. 김구림은 회화와 판화, 조각, 설치미술을 비롯하여 퍼포먼스, 대지미술, 비디오아트, 메일아트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70여 년 동안 총체적 예술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는 2021년 가나아트에서의 개인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전시로 그의 대표 연작인 <음양(Yin and Yang)> 30여 점이 공개되며, 2024년작 <음양> 4점도 함께 선보인다.
1936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난 김구림은 1959년 대구 공회당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기존 가치와 관심을 탈피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또한 1969년 한국 아방가르드협회(AG) 창립, 1970년 제4집단의 결성으로 한국 전위예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현재까지 활발히 진행중인 대표 연작 <음양>은 디지털 이미지와 아날로그식 붓질 등 이질적인 요소들의 대립과 조화를 주제로 만물의 생성 원리를 탐구하는 한편, 포용과 화해를 거부하는 인간사회를 비판한다. 김구림의 작업은 독창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에 <상황, Circumstances>(1971),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Tate Modern Museum)에 <태양의 죽음 13-64, Death of Sun 13-64> (1964)이 영구 소장되었으며,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테이트 라이브러리 앤 아카이브(Tate Library and Archive) 스페셜 컬렉션에 ‘김구림 아카이브’가 소장되어 있다. 또한 2017년 은관문화훈장 수훈을 받으며 한국 전위 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전시 제목 《Yin and Yang》, 동명의 연작 제목에서 따온 것
“’있음’은 곧 ‘없음’의 상대 개념이지만 ‘있음과 없음’은 더불어 존재한다.”
<음양> 연작 회화 17점, 오브제 13점 출품
전시의 제목인 《Yin and Yang》은 작가의 동명의 연작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김구림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이 시기에 지금의 <음양> 연작을 확립시켰으며 현재까지 지속해오고 있다. 김구림은 뉴욕 맨하튼의 고층 건물 속에서 지내며 ‘자연이란 무엇인가’ 고뇌하며 자연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고, ‘자연’에 집중한 작업을 선보였다. 1987년 제작된 <풍경>은 실재와 가상이라는 두 이질적인 속성의 관계성을 탐구한 작품으로 오브제(나무)를 덧붙인 캔버스 위에 풍경(이미지)을 그려 실재하는 자연물이 가상의 이미지에 흡수되는 화면을 연출하며 실재를 가상의 공간에 편입시켰다. <풍경>은 향후 김구림의 예술세계에 중추가 되는 동양철학인 음양(陰陽) 사상의 전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연과 문명, 실상과 허상, 유기적인 것과 비유기적인 것 등 상호 모순적인 두 상태를 대비시키고, 나아가 합일에 이르게 하는 용어로 동양사상의 기본 원리인 ‘음과 양’을 고안했고, 이는 김구림의 작업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다. 김구림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결국 하나라는 생각”, “’있음’은 곧 ‘없음’의 상대 개념이지만 ‘있음과 없음’은 더불어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음양 개념을 설명한다.
김구림의 <음양> 연작은 회화 작업과 오브제 작업으로 나뉘는데 이번 전시에 <음양> 연작 회화는 17점, 오브제는 13점이 출품된다. 회화 작업은 대중매체를 통해 순환하는 통속적인 이미지를 출력한 뒤 오려서 캔버스에 붙이는 등 이미지를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였고, 직관적인 붓질의 흔적과 우연적인 물감의 흐름을 사용하여 ‘현재’의 화면을 구성했다. 오브제 작업은 캔버스나 나무 패널 위에 전통적인 미술의 영역에서 사용하지 않는 재료들(금속, 케이블, 바이올린, 몸통, 머리카락, 폐기물 등)을 가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조합하여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켰다.
2024년작 <음양> 4점 공개
“예술이란 앉아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생활, 내 자체가 예술이다.”
‘일상성’과 ‘현재성’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업세계 구축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2024년작 <음양>은 4점으로, 평면적인 화면 위에 오브제를 결합하여 회화의 공간을 확장시켰으며, 음양의 상대성을 빌려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와 허영심을 드러내고자 했다. 여성의 신체나 이목구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각종 미디어의 여파로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형이라는 조작을 통해 공허함을 채우려는 욕망을 비판하고 있다. 김구림은 생활을 예술화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그에게 작업의 근간은 ‘일상성’과 ‘현재성’이다. 그는 “예술이란 앉아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생활, 내 자체가 예술이다.” 라고 말하며 이를 작업을 통해 구체화했다.
“시대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
그래야 그 시대에 가장 알맞은 작품이 나온다.
시대성이라는 것은 항상 현재를 말한다.
지금이라는 현재성, 그것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구림은 “나의 예술은 테크닉과 아름다움이 목적이 아니다.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이미지를 상상하는 시대를 거쳐, 흑백 티비에서 컬러 티비로, 컴퓨터로 물질의 변화를 겪었다. 시대가 변하기 때문에 내 작품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포착하는 기민한 시대 감각으로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본 전시를 통해 한 장르로 귀속되지 않는 김구림의 동시대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김구림은 “시대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 그래야 그 시대에 가장 알맞은 작품이 나온다. 시대성이라는 것은 항상 현재를 말한다. 지금이라는 현재성, 그것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왔다. 가나아트는 《음양(Yin and Yang)》을 개최하며, 김구림의 최근 작업 세계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조형성을 갈구하는 김구림의 ‘현재’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