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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로의 여정,1986-1993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24-09-03 ~ 2024-10-26

  • 참여작가

    고영훈, 김관수, 박서보, 조성묵, 하동철, 하종현, 홍명섭

  • 전시 장소

    스페이스21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2-515-6921

  • 홈페이지

    http://www.galleryspace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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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베니스비엔날레로의 여정,1986-1993 The Journey to the Venice Biennale : 1986-1993
참여 고영훈, 김관수, 박서보, 조성묵, 하동철, 하종현, 홍명섭
기간 2024년 9월 3일 – 10월 26일
기획 정연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 이유진 스페이스21 대표
장소 스페이스21 서울 서초구 주흥3길 16, 1F
시간 화-토 10:00-18:00 ** 일,월 휴관





산업화 이후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에 이르자 국가적 차원의 국제화 열망이 미술계로 확산되었다. 1986년에는 국제적 규모의 시설과 야외조각장을 겸비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설립되었으며, 뒤이어 해외여행 자율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1993년 대전 엑스포 및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휘트니 비엔날레 등 국가 차원의 범국가적 차원의 국제 행보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한국 미술의 국제 진출 돌파구로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것 중 하나가 베니스 비엔날레였다. 1895년에 설립된 이래 오랜 역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기관으로서 자리했던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교두보로서 적합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침체되어 있는 국내 미술계를 다시금 부흥시킬 계기가 되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은 쉽지 않았다. 당시 일본관이 유일한 동양 국가관으로서 동양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었고, 한국의 문화예술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열악한 상황 속, 이탈리아 대사관은 공식적인 비엔날레 초청 요청과 함께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자료를 송부했다. 한국은 각고의 노력 끝에 1986년 제42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한국미술협회를 통해 참여하게 되었으며, 비평가 이일(1932-1997)이 첫 커미셔너로 임명되어 고영훈(b.1952)과 하동철(1942-2006)을 작가로 선정하였다. 1988년에는 커미셔너 하종현(b.1935)이 박서보(1932-2023), 김관수(1953-2022)를 선정했고, 1990년에는 커미셔너 이승택(b.1932)이 조성묵(1940-2016)과 홍명섭(b.1948)을 선택했으며, 1993년에는 커미셔너 서승원이 하종현을 선정하였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총 4명의 커미셔너와 총 7명의 한국 작가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95년 한국관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탈리아관 측의 종합 전시관 일부 공간에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면서 독자적인 국가관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었다.




본 전시를 기획한 정연심(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은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라는 스펙터클한 출발만이 우리의 역사가 아니며, 이러한 시작이 있기 전 고군분투했던 미술가들의 활동 또한 주목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본 전시는 당시 네 번의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들이 출품했던 자료와 이들이 남긴 기록을 수집하고, 전시를 통해 비평적 공간을 재구축하고자 한다. 비평가 이일은 1995년 한국관 설립 이후 첫 전시의 커미셔너였지만, 1986년 한국관이 없던 시절 첫 커미셔너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21에서의 전시 또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번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과 아카이브를 발굴하여 전시하고, 당시 베니스에서 촬영된 작가들의 사진, 슬라이드, 배치도 등을 찾아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 198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한 후 박서보는 『경향신문』(1988.8.11)에 “한국관 건립”을 염원했으며, 서승원은 신문 인터뷰에 응했고, 비평가 이일을 비롯해 작가 김관수와 홍명섭은 비엔날레 참관기를 남겼다. 비평가 이일은 「1986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관기: 제42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우리나라의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의 독립된 전시관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그동안 이 비엔날레에 참가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 자국관이 없다는 데 있었음은 분명하거니와, 앞으로의 계속 참가를 위해서는 이 독립된 우리 전시관의 건립이 최우선의 과제라 생각된다. …”라고 쓰고 있다. 이 글에서 이일은 한국이 문화적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동철, <Light 84-P2>, 1985, Acrylic on canvas, 220x763cm중 부분(7폭 중 3폭)






▶︎기획의 글 中 발췌 (글. 정연심)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설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2024년 4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 관장: 임근혜)는 1995년 한국관 설립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를 베니스의 몰타 수도원에서 개최하였다. 되돌아보면, 1990년대 한국은 세계화라는 모토 아래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 매우 컸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국제 교류에 대한 작가들의 열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이르러 국가 차원에서 국제 교류를 중요한 예술 정책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이전에 비해 경제적 지원이 가능해지면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립도 실현될 수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살펴보면, 1986년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설립되었고, 1987년에는 해외여행이 자율화되었으며,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또한, 1993년 대전 엑스포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전시는 한국 미술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흐름 속에서 공존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립 이전에도 한국 작가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는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라는 화려한 시작만이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그 이전에 고군분투했던 미술가들의 활동과 커미셔너를 비롯한 척박한 상황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많은 작가들이 이미 작고했지만, 이를 기억하고 기록한 사진 등 많은 자료가 남아 있어, 그 당시의 기록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보고, 전시를 통해 비평적 공간을 다시 형성하고자 한다. 


박서보, <Ecriture No. 88120>, 1988,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97x130cm.






▶︎ 1986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관기 (글. 이일, 커미셔너)
제42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출처: 이일, 「제42회 베니스 비엔날레 참관기」, 『공간』 1986년 8월호 

우리나라의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의 독립된 전시관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그동안 이 비엔날레에 참가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 자국관이 없다는 데 있었음은 분명하거니와, 앞으로의 계속 참가를 위해서는 이 독립된 우리 전시관의 건립이 최우선의 과제라 생각된다. …

우리나라는 이 비엔날레의 초참자初參者인 때문만이 아니라 자국관이 없는 탓으로 후진국 대열에 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이들 일군의 나라는 지아르디니 공원에서 도보로 약 십 분 거리에 세워진 거대한 옛 병기창고(아르세날레)를 보수한 가설 전시장 속에 칸막이로 구획된 벽면이 배당되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가설 전시장에서는 본관을 기획전에 넘겨준 이탈리아 작가들이 옮겨져 왔고, 그밖에 기획전의 하나인 색채 부문, 그리고 열한명의 각국 평론가들에 의해 자유롭게 선발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미未출품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아페르도 86전Aperto 86》(출품작가 오십 명)이 마련되어 있다.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통로 양편에 칸막이로 구획된 각 전시실 중의 하나를 차지한 한국은 그 통로 너머로 공교롭게도 쿠바와 마주하고 있었다. 다 같이 십 평방미터 안팎의 전시 공간이다. 그쪽은 거대한 도끼의 날을 양쪽에 달고 그 안쪽을 쇠사슬로 엮은 스산한 오브제 작품이고, 이에 반해 우리 측은 하동철河東哲과 고영훈高榮勳의 너무나도 완벽하게 마무리된 회화 작품이어서 우연스럽게 인상적인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이와 같은 대조는 또 다른 측면에서 쿠바가 아닌 다른 나라의 작품과 견주어 볼 때에도 지적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두 작가의 작품과 다른 나라 작품과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것은 작품마다 완성도에 있어서의 높은 질적 수준이 한눈에 띄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질적 수준이 과연 현대미술의 국제적 경향 속에서 얼마만큼 자신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에게 주어진 보다 절실한 과제는 그 고도의 완성도라는 문제 밖의 다른 것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른 것, 그것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미술도 국제무대 진출에 있어,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자위하고 있을 시기는 이미 지났다. 국제무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문화적 투자를 말이다. 


하종현, <Conjunction 90-191>, 1990, Oil on canvas, 120x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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