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편, 얇은 단면: 암석이나 광물에 빛을 투과 시켜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약 0.03mm 두께로 자른 얇은 조각
■ 전시개요
기간: 2024.10.17(목) – 10.31(목)
제목: 『___ thin section』
장소: Gallery LVS (갤러리 엘비스)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27길 33 (신사동, 쟈스미빌딩 B1F)
Opening Hour 9:00 – 18:00 (Mon-Fri) 10:00-17:00 (Sat)
문의 : T. 02-3443-7475 E. info@gallerylvs.org
갤러리LVS(신사동)에서 이자운(Zaun)의 8년만의 국내 개인전 『___ thin section』 을 2주간 선보인다. 이자운 작가는 전시명 ‘thin section’에 대해 ‘*박편, 얇은 단면 : 암석이나 광물에 빛을 투과시켜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약 0.03mm 두께로 자른 얇은 조각’ 라는 각주를 달아 설명한다. 이 것은 지질학자가 대상을 깊이 연구하기위해 가장 작은 조각인 박편을 준비하여 탐구를 시작하는 것처럼, 여러 개의 지층으로 쌓인 삶의 연대에서 인식되는 하나의 풍경의 가장 작은 조각을 관찰하며 시작되는 작업 방식을 의미한다.
이자운(Zaun) , thin section 802, 97.79 cm x 35.94 cm , 2024
Medium : Collage of intaglio prints with silk thread, graphite, sumi ink, water color, archival dry glue, and cutouts on layers of mulberry paper in various weights backed with silk fabric
여러 두께의 수제 순지에, 동판화 콜라주, 실크실, 흑연, 먹, 수채물감, 보존보수용 중성접착제, 오려내기, 실크로 덧대어진
이자운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던 중 계속 동경하여 삶의 일부로 여겼던 순수 예술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자 뉴욕 알프레드 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하여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현재까지도 뉴욕에 거주하며 뉴욕, 런던, 서울을 오가며 다양한 전시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전시의 일부였던 이자운의 인터뷰가 유일하게 기사에 실렸다. 네이랜드 블레이크(Nayland Blake)의 'Got an Art Problem?(예술 문제가 있습니까?)' 이라는 퍼포먼스는 휘트니 뮤지엄의 3층에서 예술가, 뮤지엄 직원,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인터뷰에서 이자운은 학교 수학여행으로 우연히 방문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불, 루이즈 부르주아 등의 설치 작품에 감명받아 ‘이런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그러한 예술 거장들의 특별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들에 깊은 공감을 했다. 그 후 한국에서 많은 응원을 받지 못한 순수예술 대신 상업 마케팅에 필요한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던 선택지에서 다시 돌아와 인지하고 사유하는 예술 철학에 전념했다. 이자운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드(grid)에 대해, 작가는 20세기의 것이었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드는 작가가 거주하고 활동하는 뉴욕, 런던 등의 대도시를 이루는 거대한 지도이자 몇 세기를 거쳐 움직이지 않는 공간과 그 위에 올려지고 철거되는 건축물들이 쌓은 시간을 통합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thin section을 콜라주 하는 과정
다양한 재료가 ‘thin section’ 시리즈를 이룬다. 동판에 다양한 형태의 블록을 조각하고 여러 수채물감 색으로 찍는다. 모눈종이 위에 실크를 덧댄 순지를 올려 정교하게 블록 모양을 겹치듯 콜라주한다. 제각기 다른 색의 블록들은 순지 위에 교차되고 겹쳐진다. 모눈종이를 기준으로 붙여지는 블록들은 오차 없이 정교하지만 콜라주를 이루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듯 분산된다. 어떤 블록과 블록 사이는 컷아웃으로 텅 빈 공간을 연출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형상화 하듯 종이 뒤의 빈 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떤 블록들은 실크 자수를 꿰매어 격자 종이를 유연하게 지나며 물성을 가진 저마다의 실로 존재한다.
모눈종이에 그려진 블록들은 관람자 눈에 보이는 작은 크기로 콜라주 되어있지만, 마치 거대한 건축물을 현미경으로 보는 것 같다. 세포만큼 작은 물질 하나 하나를 면밀히 관찰하며 분석하고자 정교하게 만들어진 창작자만의 설계도와 같이,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그린다. 공간에 지배당하는 시간, 시간에 지배당하는 공간에 대한 탐구를 이 작은 조각 하나를 찍어내며 이어 붙이는 행위를 통해 조형언어의 세계를 구축한다. 한 조각씩 떨어져 사이를 유지하는 블록들은 사회관계를 확대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슷하지만 저마다 다른 모양, 겹쳐진 블록들과 사이가 텅 빈 블록들, 한 땀 한 땀 수 놓인 블록을 가로지르는 실이 닿는 곳은 블록이 아닌 종이의 끝이다. 마치 멀리서 보면 하나의 대중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홀연히 자리 자리를 지키는 한 사람인 것처럼, 블록의 존재방식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thin section’ 은 경직과 유연을 넘나드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작은 파편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하나의 공간과 성질을 이루는 각각의 다른 모양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작업의 끝없는 연장이다.
갤러리LVS 이유진
thin section: -90 to +90 degree arc>(2024)
ARTIST NOTE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 우리는 우리 주위를 에워싼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든 우리가 보는 이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가만히 주변을 둘러 본다. 그리고 그 보는 행위를 바탕으로 주변을 이해하고 말로 구성해 나가며 알아 간다. 이 두 가지, '보는 것'와 '아는 것' 사이의 너무나 얇고도 깊은 간극은 나에게는 항상 신비한 미지의 세계였다. 나는 이 '보는 행위'와 그리고 그 '아는 행위', 두 지점의 거리 사이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을 지도 모를 풍경을 그린다. 혹은 조금 더 간단히, 나는 우리의 인식의 지점에서 일어나는 모습의 풍경화를 그린다,라고도 한다. 나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의 세상과 우리가 생각하는 그 자체로서 세상(보통은 매우 단단하게 에누리가 없다)의 차이에 관심이 있다. 존 버거가 그의 책에서 이어서 서술하고 있듯이,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결코 한가지로 정해져 있지 않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처럼), 그 둘의 인과관계는 참으로 불분명하다. 그 차이 안에서, 나는 마치 그 자리에서 영원히 있었던 것만 같은 집 하나를 마주한다. 우리는 (어쩌면 갇혀져) 그 안에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집 안의 얇디 얇은 벽지를 계속 바꾸어 도배한다. 그리고 이제 지금은 새로운 시간이고 새로운 시대라고 말한다. 다만 벽지만 계속해서 바뀌고 간간히 드러나는 뜯어져버린 벽지의 자리에 그 지층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게 드러난 모든 직접적 시간의 풍경들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참 이상한 느낌이다. 그렇게 21세기는 13세기 이고 동시에 그것은 200번째의 세기 이며 모든 것은 동시에 커다란 빈 공간이다. 한편, 시간은 그 집의 그 자리에서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집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질학자가 관찰대상의 기원과 진화의 과정을 알기위해 thin section*(박편, 얇은 단면*암석이나 광물에 빛을 투과시켜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약 0.03mm 두께로 자른 얇은 조각)을 준비하듯이, 아마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지층 어딘가에 묻혀 있을, 나의 인식의 지점에서 일어나는 풍경의 한 단면을 잘라서 자세히 들여다 본다. 이렇게 작업을 시작한다.
이자운 ZAUN
‘thin section’ 의 블록모양을 만드는 과정
NYC makers and printmakers (Eight Lego Blocks and Two Holes), 2023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한정적으로 판매했던 이자운 작가의 소품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