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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 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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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VE》_ LEE SEUNG HA  이승하
2024. 10. 16. Wed. - 11. 15. Sat.
Gallery B&S  갤러리 비앤에스

전시일정 : 2024년 10월 16일(수요일) – 11월 22일(금요일) *연장
전시명: WAVE
작가명: 이승하 Lee Seungha (b.1959~)
전시작품 : 회화 10여 점
주 소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73, 1층 
관람시간: 화-토 10:00 - 18:00 (일,월,공휴일 휴관)
연락처:  02.730.5824
홈페이지 : www.gallerybns.com 
인스타그램:  gallery_bns
이메일: artbns@naver.com





작가노트 statement

wave

  나의 작업은 마치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보이기도하고 추상적으로도 보인다. 절제된 무채색은 모든 색을 포함하는 색으로 현대적이고 조형적 언어로 재해석한다. 바다와 하늘 이 두 가지 상반된 화면은 마치 우주의 전체 속에서 절제된 한 부분으로 함축시키는 음양의 조화를 맞추어 나간다. 작품의 제작과정은 석회석 분말을 안료삼아 캔버스 위에 수토(水土)와 수묵(水墨)을 부어가며 좌우로 흔들거나, 수직으로 세워 서로 혼합되게 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그려서는 나오기 힘든 흔적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되고, 수없이 많은 반복의 행위로 다채로운 경험을 화면 위에 축적한다. 

   작품은 꾸미고 잘하려는 욕심이 많으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사물과 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맛에 충실하고 자연스럽고 마음이 가는대로 그 본래의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의 특징과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과감히 버릴 것과 희생시킬 것을 알아야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개성이 빛이 날 수 있고 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 
  나는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하늘에는 바람결이 있고 땅에는 모든 생명체의 숨결이 있다. 그리고 바다에는 물결이 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이것이 우주를 이루고 있고 그 속에 자연의 섭리가 있듯 나는 화폭에 음양의 이치를 담는다. 아득히 이어진 수평선과 깊고 무한의 바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생명의 물결을 마음으로 느끼며 추상적 바다로 승화시킨다. 마치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무질서 속의 질서인 자연의 결은 내가 추구하는 추상적 표현의 기본 바탕이 된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오는 수평선은 추상 그 자체이며 사실적으로 보이는 외형 속에 추상의 내면이 담겨있다. 또한 나의 작업은 시각적인 동시에 작품마다 고유의 ‘울림’을 통하여 청각적인 작품이 된다. 이러한 ‘울림’은 눈과 귀 그리고 몸을 통해 감지된다. 나의 작업은 구상적이자 추상적이며, 직설적이고 관념적이다. 그리고 재료의 율동과 진동의 미세한 디테일을 통해 우연의 아름다음을 추구한다.

  나의 캔버스는 하늘이고 바다이다. 때로는 성난 파도같이 넘실대고, 하늘은 청명하고 찬란하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귀결자는 아니며 작품의 마무리는 스스로 그려지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는 재료와 자신이 통로가 되어 작품은 완성되지만 무한한 가능성은 보는 이의 몫이다. 나의 작업은 행위적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우연의 미학에 도달하고자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항상 낯설고 두렵기도 하지만 실험은 나를 설레게도 한다. 나만의 세계를 찾기 위한 모험의 길, 남들이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


2024 이승하








이승하의 작품세계
물성을 이용하는 새로운 표현방식의 바다 이미지

신항섭 | 미술평론가

  사실적인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재해석 또는 관념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기도 한다. 재현적인 경우는 정확한 눈과 정교한 묘사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를 재해석하는 경우 비현실적인 공간 개념을 따르는 일이 많다. 초현실주의 또는 환상주의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관념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경우는 사실적寫實的인 이미지보다는 사실성事實性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다시 말해 사실성을 추구하는 그림은 실재하는 무엇의 속성을 이미지화하는 것 즉,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실을 이루는 것’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에 큰 비중을 둔다. 그러고 보면 사실적인 그림이라고 할지라도 접근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가 만들어짐을 알 수 있다.

  이승하의 작업은 단적으로 사실성事實性에 관한 관심이자 그에 관한 시각화라고 할 수 있다. 실재하는 사실이고, 실재하는 사물 또는 대상에 관한 이미지라는 점에서는 사실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사실주의가 눈에 보이는 사실의 재현에 의미를 두는 데 반해 그의 작업은 재현과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실제처럼 보이거나 실제를 재현한 듯이 보일지언정, 자세히 살피면 재현적인 묘사기법과는 전혀 다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사실주의는 재현을 목표로 하지만, 그는 표현이라는 용어에 적합한 비재현적인 이미지를 추구한다. ‘묘사하는’ 게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묘사’와 ‘표현’은 그 결과물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묘사’는 형상을 그린다는 행위를 수반하는 데 비해, ‘표현’은 생각이나 의지를 형상 언어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는 묘사라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결과물을 보면 지극히 사실적으로 보인다. 아니 작품에 따라서는 사실적인 묘사보다도 더 극렬한 사실성을 보여준다. 분명히 실재하는 파도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기실은 눈으로 본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도 실제의 파도를 재현한 걸로 착각할 만큼 사실성이 뛰어나다. 어느 면에서는 이제까지 보아온 파도를 소재로 한 일련의 풍경화와는 확연히 다른 박진감 넘치는 극적인 이미지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커다란 배를 삼킬 듯이 출렁이는 거친 바다를 마주한 일이 있다면 그의 파도 그림이 보여주는 극적인 이미지는 허구가 아니라는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일상적인 파도와는 판이한, 태풍이 일으키는 파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집채보다 큰 파고가 삼킬 듯이 꺾이고 부서질 때 나타나는 파괴적인 장면은 공포 그 자체이다. 공포라기보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장엄한 바다의 교향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파도의 격랑은 대자연이 지닌 힘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듯이 그의 파도 그림은 바다가 자신의 존재감을 격하게 드러내는 실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파도 그림은 실제를 능가하는 사실성을 추구한다. 그런데도 붓으로 치밀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 기법과는 전혀 무관한 표현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묘사하지 않고도 묘사하는 그 이상으로 실제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는 그의 작업은 부분적으로는 유채 물감을 사용한 듯한 질감이 감지된다. 그 질감은 물감이 뭉쳐 생기는 물리적인 이미지인 셈이다. 다시 말해 가공하지 않은 상태인 질료로서의 성질을 표현적인 이미지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로써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아크릴 물감이 가지고 있는 성질, 즉 물성을 이용한 표현기법으로 작업한다. 물성을 이용한다는 건 수성 물감이 가지고 있는 성질, 다시 말해 물에 녹는 물리적인 현상을 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붓으로 묘사하는 이미지와는 다른 자연스러운 표정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연스러운 이미지야말로 사실적인 그림이 추구하는 이상일 수 있다. 자연스러움이란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사실성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어쩌면 그의 바다 이미지가 사실적인 묘사보다도 더욱 극적인 표정을 보여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묘사하지 않고도 실제처럼 또는 실제를 능가하는 사실성을 구현한다는 건 기존의 회화적인 개념으로는 설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생기는 건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 즉 붓으로만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한 표현기법은 물성을 표현적인 가치로 전환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아크릴 물감은 물에 녹는 재료라는 점에 착안하여, 물감의 농담이라든가 농도 그리고 캔버스에 가해지는 여러 가지 신체적인 힘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그림에 대한 전통적인 조형 개념을 타파하는 일이다. 그의 작업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모두 표현적인 것이다. ‘표현적’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생각이나 느낌을 언어와 음율 또는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는 보고 느낀 사실이 아니라 ‘생각’이거나 ‘느낌’에 관한 것이다. 비록 바다라는 실재하는 대상을 전제로 하는 그림이지만 실제로 본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붓이나 나이프와 같은 기존의 회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을 사실주의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면 사실성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적인 이미지로 접근하면 순수 추상일 따름이다. 그 어디에도 사실주의에 입각한 사실적인 묘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적인 행위의 속성은 보고 느낀 것을 ‘생각이나 의지를 드러낸 형상’이 다름 아닌 ‘표현’의 결과이다. 생각이나 의지는 구체적인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에 추상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사실적인 이미지를 극한까지 밀어 올린 이미지라고 믿을지라도 실상은 추상적인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결코 사실적인 이미지의 바다를 재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과물은 우연이나 잠재의식의 발현도 아니다. 그 자신의 심상을 기반으로 하여 단지 실제의 바다에 근사한 이미지처럼 보이도록 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추상적인 이미지가 사실적인 이미지로 둔갑하는 걸까. 그렇다. 그는 철저히 속임수를 쓰는 셈이다. 그는 작업하기 전에 어떤 상황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대략적인 이미지를 심상화한다. 그러고 나서 무수한 실험적인 과정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가지고 작업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는 어떤 경우든지 단지 추상적인 이미지만이 드러날 뿐이다. 작업하는 순간에는 대상성을 의식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냥 바다를 빙자한 추상적인 이미지를 표현할 뿐이다. 추상적인 표현은 퍼즐을 맞추듯이 이리저리 조합하면서 실제의 바다와 유사한 이미지로 귀결하는 것이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캔버스 자체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한다. 캔버스가 도구가 되고 캔버스는 그 자신을 사역한다. 어쩌면 캔버스가 주체가 되고 그 자신은 표현 수단이 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때 그는 캔버스를 위아래 또는 양옆으로 움직이거나 흔드는 등 물리적인 힘을 가해 원하는 표현에 합당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때 물감의 농도나 캔버스에 가하는 힘의 세기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는 물성의 표현이므로 지극히 자연스럽다. 붓으로 묘사하는 건 순전히 인위적인 데 반해 물성을 이용하는 표현방식은 지극히 자연적이다. 

  그는 실제를 보는 듯 착각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질감을 강조하기도 한다. 부분적으로 물감이 덩어리를 이루며 파도의 형상으로 굳혀지는 상태가 되도록 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으로 인해 파도가 입체적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가져온다. 아니, 착시현상이 아니라 물결이 거세게 요동치며 쏟아내는 물의 형상이 지금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단순히 눈속임이 아니라, 파도의 실체와 마주하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체적인 힘과 캔버스, 물 그리고 아크릴 물감이 가지고 있는 물성을 이용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붓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되레 더 실제적이다. 이는 붓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 이상의 사실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자기만의 데이터를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극렬한 사실성을 얻기 위한, 즉 붓으로 묘사하는 이미지보다 더 사실적인 표현을 얻기 위한 확실한 방법을 숙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는 기상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다채로운 바다의 이미지에 대한 확장성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기존의 사실주의 묘사기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미답의 세계에 관한 탐구이기에 그렇다. 실제로 그가 성취한 바다의 이미지는 기존의 사실적인 묘사기법에서 볼 때 초자연적인 성과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상상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바다의 이미지를 현실로 가져왔기에 그렇다. 손의 기술을 포기하고 신체적인 힘과 캔버스, 아크릴 물감 그리고 물의 특성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그 속성을 표현 행위로 녹여내는 건 그림 그리기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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