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ang Young Chun
Aggregation 25-AP031, 2025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17 x 91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전광영
타임 블러섬
2025년 5월 15일 — 7월 5일
페로탕 서울은 전광영의 개인전 ≪타임 블러섬≫을 개최한다. 전광영은 한지를 이용한 조형적 탐구를 통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 왔다. 그는 종이 위에 먹을 사용한 평면 작업을 넘어, 한지로 감싼 삼각형 조각들을 조밀하게 배열한 <집합>시리즈를 통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적인 <집합> 시리즈와 새로운 신작 <품>연작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다층적인 텍스처와 색감, 그리고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구조를 통해 전광영이 탐구해 온 철학적·미학적 사유를 조명한다. 수십 개, 때로는 수백 개의 삼각형 조각들이 집합해 이루는 전광영의 작품은 개인과 집단, 전통과 현대, 혼돈과 질서 사이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우리 주변의 여러 색채에서 영감받아 다양한 자연 재료로 천연 염색되어, 다채로우면서도 수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동시대적 맥락 안에서 자연적 재료를 재해석하는 전광영의 작업은 기억과 역사,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간 구축해온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망하며, 그의 시각 언어와 예술관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Kwang Young Chun
Aggregation 24-NV151, 2024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31 x 163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시간은 피어난다.”
전광영은 오랜 시간 한국적 재료와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다. 추상표현주의에 매료되었던 초기 유학 시절 이후, 그는 수많은 실험 끝에 한지와 고서를 통해 고유의 방식으로 시간과 정체성을 다뤄왔다. 고서의 파편을 감싼 삼각형 조각들은 단순한 시각적 구조를 넘어, 기억의 축적이자 존재의 궤적을 담은 조형적 행위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 ≪타임 블러섬≫은 그러한 작가적 탐구의 연장선 위에서, 더욱 섬세하고 확장된 감각의 색채를 통해 ‘시간의 꽃’을 피워낸다. 전광영은 과거의 중후하고 흑갈색 중심의 작업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파스텔 톤부터 강렬하고 농밀한 컬러에 이르기까지 정서적 시간의 폭을 새롭게 제시한다.
감물, 먹, 황토, 쑥, 인디고, 홍화, 울금, 석류 껍질, 연지 등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염료는 고서와 한지의 물성과 결합하며, 색 그 자체가 시간과 기억의 물질로 전환된다. 파스텔 계열의 색조는 여린 감정과 부드러운 시간의 결을, 강렬한 색조는 기억의 응축과 정서의 깊이를 시각화하며, 각각이 서로 다른 감각의 시간성을 화면 위에서 피워낸다.
전광영에게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을 기록하고 시간을 조율하는 언어다. 고서로 감싼 삼각형 조각들을 하나하나 화면에 배치해 나가는 이 작업은 회화라기보다 시간을 다루는 행위에 가깝다. 그는 붓보다 손으로 시간을 겹겹이 쌓아가며, 색으로 정서의 층위를 조율한다. 그렇게 응축된 화면은 결국 ‘시간의 꽃’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피어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신작 〈품〉은 ‘감싸안는다’는 의미를 품고, 이전과는 또 다른 감각의 흐름을 제안한다. 전광영은 입체적 밀도를 잠시 내려놓고, 정제된 평면 위에 유기적 리듬과 부드러운 구조를 선보인다.
수많은 삼각형 조각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용히 포개진 이 작품은, 마치 시간 그 자체가 고요히 응결된 하나의 장소처럼 다가온다. <품>은 단순한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관람자가 잠시 멈추고 받아들여지는 정서적 공간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기억의 서사뿐 아니라, 감정의 공간 또한 조형적으로 구축해 낸다.
전광영의 작업은 시간, 기억, 존재를 핵심 조형 언어로 다룬다는 점에서, 20세기 후반 이후 현대미술이 보여준 개념 중심의 흐름과 깊이 맞닿아 있다. 반복과 축적, 수행성을 기반으로 한 그의 제작 방식은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감정의 농도를 축적하는 조형적 행위로 이어진다.
동시에 그는 기억을 물질화하고, 감정을 조형화하는 미술의 전통 속에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재료—한지, 고서, 천연염료—는 동아시아적 기원과 사유의 물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서구 중심의 미술사 흐름과는 차별적인 위치를 점한다.
전광영의 작업은 이처럼 동양적 시간관과 감각, 그리고 현대 조형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기억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형상을 제안한다.
≪타임 블러섬≫은 전광영이 오랜 시간 쌓아온 조형적 여정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전시다. 고서, 색, 시간, 감정—그 모든 층위들이 조용히 스며든 이 화면들 속에서, 우리는 피어나고 있는 시간의 결을 천천히 마주하게 된다.
Kwang Young Chun
Aggregation 25-AP033, 2025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17 x 91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작가 소개
한지를 조합한 조형 작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전광영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 추상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선보여 왔다.
1944년 홍천 출생의 전광영은 1968년 서울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 학사를, 1971년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초창기에는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에 깊이 영향 받았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작품에 담아내려는 시도 끝에, 1995년부터 대표 연작인 <집합>을 선보인다. 작가는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한약방에서 보았던 한지에 싸인 약봉지에서 영감 받아, 삼각형 조각을 한지로 정성스럽게 감싼 조각을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통해 작품으로 재탄생 시켰다. 작품에 사용된 한지는 책이나 문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오래된 고문서가 사용되기도 하고, 천연 재료로 염색되어 자연과 세월의 흔적을 머금는다. 전광영의 작품은 이처럼 소박한 재료를 거대한 벽면 설치 작업이나, 입체 조형물로 변모시키며, 자연의 형상과 역사의 흔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전광영은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도쿄 모리 아트 센터 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과천, 모스크바 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했으며, 그의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홍콩 M+뮤지엄, 호주 국립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2009년에는 제41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현대 미술계에서 공로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