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아트스페이스는 2025년 5월 27(화)에서 8월 13일(수)까지 김지원, 정승운, 박기원, 채우승 중견 작가 4인의 <감각온도: Affective temperature>展을 개최한다. <감각온도>란 인간이 생리적, 심리적으로 다르게 느끼는 온도를 수량적으로 나타낸 것을 의미한다.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더위나 추위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비슷할지 모르나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 심리상태에 따라 느끼는 감각은 상이하다. 그 감각의 차이는 단순히 온도만의 요소라기보다 주변 환경의 습도, 풍속, 기류 및 방사열 같은 인자에 의해서 달리 감각하는 것이다. 각자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한국에 적을 둔 이들 4인의 작가들이 서로 다른 차원의 재료, 방식, 개념을 다루며 어떻게 이 시대와 공간, 저마다의 삶을 감각하고 표현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를 준비했다.

▲ SOUL ART SPACE Installation View_ 김지원 맨드라미, 2016, oil on linen, 230×230cm
▶ 김지원은 일상에서 특정 대상을 선택해 관찰과 몰입으로 상징성을 부여한 수많은 연작을 발표해왔다. 그중 ‘맨드라미’는 가장 긴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 주요한 시리즈이다. 그의 작업실 앞에 가득 피어있는 맨드라미는 동물적 형태미를 지닌 독특한 식물이다. 때로 바싹 말라 서있거나 가을에서 겨울로 탈색되어가는 특유의 모양새와 화려한 빛깔을 지켜보면서 작가는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고 성찰하는 행위에 매진한다. 맨드라미는 여름과 가을에 만개하여 그 모양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하여 생의 욕망과 숭고함을 이야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맨드라미를 통해 인간의 생애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드러낸다. 그리기의 본질을 심도 있게 파고들며 치열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독창적인 김지원의 작품세계는 다분히 감각적이고 철학적이며 일상을 관철함으로 작은 사물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맨드라미’ 시리즈를 비롯해 ‘모든 형태 있는 것은 사라진다’, ‘이륙하다’, ‘풍경’, ‘레몬’ 등 여러 연작들이 나타내는 일관된 스토리와 역설은 철저한 사유와 분석으로 작품의 깊이, 일상적 사물이 가지는 뜻밖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제시하며 감상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신기하게도 시선이 머무는 곳과 존재들이 있다.
맨드라미가 그랬다. 강원도 분교에서 맨드라미를 봤는데
장미, 백합처럼 아름답다기보다는 섬뜩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맨드라미가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는 인간의 욕망과도 닮아 보였다.
또 그건 동시에 내 욕망을 상징하기도 했다.”
-김지원-
▶ 김지원(1961~)은 인하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미술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금호미술관, 대구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 하이트컬렉션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국립대만미술관을 비롯 독일, 영국, 미국, 중국 등 해외 및 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세종문화회관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유수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에 소장되어있다.

▲ SOUL ART SPACE Installation View_ 정승운 섬, 2025, acrylic on paulownia panel, 각 20.5×58.8cm
▶ 지면으로부터 160cm 높이의 지점에 섬의 윤곽을 드러낸 동일한 크기의 오동나무 판들이 전시장 벽에 나열되어있다. 정승운의 작업실은 합판과 각목이 가득한 전형적인 목공실의 외양을 띈다. 그는 공간, 선, 자연을 아우르는 개념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조형언어를 통한 설치작품을 주로 선보이지만 사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학부의 엄격한 분위기를 탈피해 떠난 10여 년간의 독일 유학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변 환경과 스스로에 대한 깊은 관심, 지속적 관조를 통해 '나'라는 존재성은 주변을 둘러싼 환경과의 소통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래서 작품들은 대부분 전시 장소와 일정한 교감을 이루는 형식이 현재까지 견지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섬> 연작은 부산, 목포, 벌교, 고흥, 남해, 통영, 거제의 풍경을 스케치하여 그 결과물을 합판, 오동판재와 각재를 이용한 대형 설치 ‘공제선’ 공간작업을 회화적 형식으로 구현한 것이다.
‘공제선’은 그가 2009년부터 채택하고 있는 작업명으로, 능선처럼 하늘과 땅이 맞닿아 이루는 선을 말한다. 채색되지 않은 나무판 위로 보여지는 원형의 얼룩, 섬 형태로 자르고 다듬어진 하단, 전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아래에서 위로 작품을 바라보면 빨강, 파랑, 초록으로 채색된 숨겨진 단면이 흥미롭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감각하며 시각화하고 구체화시키는 과정은 긴 시간 정승운이 이어오고 있는 일관된 세계를 보여준다.
▶ 정승운(1963~)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조형예술아카데미 뉘른베르크와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를 졸업했다. 1997년 뒤셀도르프 전시를 시작으로 사루비아다방, 독일문화원, LIG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독일, 그리스, 세르비아 및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SOUL ART SPACE Installation View_ 박기원 넓이46번, 2023, oil on canvas, 194×130.3cm
▶ 박기원은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며 공간과 호흡하는 새로운 인식의 설치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부천 작업실에서 회화작업을 하거나 설치작업에 관한 스케치를 하고, 주말에는 인천 해안동 거리의 ‘차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낸다. 차(茶)를 팔던 오래된 건물을 직접 꾸민 전시공간이다. 빈 벽이나 텅 빈 공간 등에서 영감 받는 작가는 그곳에서 한적한 시간을 갖는다. 장소가 주는 고유한 분위기를 포착하여 빛, 색 등 비물질적 재료로 공간 본연의 특질을 살려내는 박기원은 캔버스 작업으로만 이번 전시를 구성했다. ‘넓이’ 시리즈 회화는 공간 속의 특정한 장소적 상황을 크게 몇 개의 면으로 나누고, 각 면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선을 중첩하여 완성시킨 그림이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큰 색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분리된 면과 켜켜이 쌓인 선을 볼 수 있다. 평면 속에서 장소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선을 중첩하는데, 그의 작업에서 주요한 개념인 ‘장소와 공간성’에 대한 관심이 평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캔버스에 무수히 그어진 선들은 기하학적 색면 추상처럼 보여진다. 같은 선상에서 오일스틱으로 작업한 회화는 ‘자연 속의 사계’를 연상하며 블루, 그린, 브라운 계열로 색의 흐름이 나타나는데, 각각의 색은 강렬하지만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 박기원(1964~)은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을 비롯하여 베이징 갤러리아 콘티누아, 아르코미술관, 과천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광주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 중앙미술대전 대상(1990), 김세중 조각상(2022)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 SOUL ART SPACE Installation View_ 채우승 실내에서 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 2024, 아크릴물감, 연필, 한지, 패널,
35x92cm(좌), 각 60x58cm(우)
▶ 채우승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예술형식을 통해 재료의 속성과 사물에 대한 개념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는 주로 한지를 사용하여 페인팅, 꼴라주, 드로잉을 결합한 평면과 입체, 부조, 설치 등을 아우르며 시각적 지각의 경계를 탐구하는 특유의 예술 언어를 구사한다. 석고나 폴리코트를 개어 천자락 같은 형태를 떠내는 부조를 만들거나 나뭇가지 몇 개로 구조와 공간에 개입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전통의 일부를 차용하면서 미니멀한 표현으로 귀결되는 작품은 공간 전체에 묘한 분위기를 선사하는데, 작가는 눈으로 쉽게 포착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실내에서 창문을 바라본 풍경’ 연작을 선보인다. 그간의 작업 기조처럼 작품 속에는 실내의 분위기나 창문 밖의 풍경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실내에 머물러 창밖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유리의 굴절, 안과 밖 사이의 온도차, 공기의 흐름, 방범창과 창살 사이에 생기는 단절과 연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미묘한 시지각적 현상에 초점을 두고 명확하지 않는 흐리고 아득한 장면 속에서 관객의 시선은 작품 너머 또다른 세계로 흘러간다.
▶ 채우승(1960~)은 군산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아카데미아(Accademia di Belle Arti di Brera)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이탈리아 및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몸미술관, 금산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예술의 전당, 성곡미술관, 금호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등에서 다수 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전주역사박물관, 소마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김지원, 정승운, 박기원, 채우승 작가 4인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일상적 풍경에 관심을 가진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의 <감각온도>를 드러내며 각자의 감각과 노하우로 차별화된 예술을 창조해낸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느끼고 표현하며 감각하고 공감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것이 이들의 소명일 것이다. 물리적 수로 측정할 수 없지만 행위의 흔적이 남아있는 작품을 통해 그들의 <감각온도>를 짐작해본다.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망원경을 만들어 바라보는 네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 전시 도록의 표지에 실려 있다. 신중하고 숙련된 중견이지만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아티스트의 일상은 이어진다. 무겁지만 가볍게, 뜨거우면서도 차갑게, 진지하지만 유머가 공존하는 의외성을 지닌 감각의 차이를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