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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나의 작업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
안영나의 작품을 보고 제일 먼저 받은 인상은 - 그리고 그 점은 지금도 가장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 - 지극히 전통적인 "동양적임"과 전형적인 "현대 서양 미술적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커다란 파라독스지만 이 두가지 상반되는 요소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데 성공함으로써 안영나의 작품은 힘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안영나의 걸작은 동시에 여러 가지 요소를 보여주며 각각의 요소는 관람자를 평온함과 균형감과 관조로 이끈다.
예를들어, 안영나는 전통적인 붓글씨의 선을 - 문자 그대로 그리고 동시에 은유적으로 - 확장하여 색면 회화의 영역으로 이르고 있다. 전통적인 회화 도구가 아닌 도구를 사용하여 거대한 획을 그어, 획이며 동시에 색면을 만들어낸다. 한국 대사관 전시회에 출품된 청색 작품중 하나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예의 전통 속에서 획을 그어 어떤 글자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물체로 보이기도 한다. - 아마도 새가 아닌가 한다 - 그 다음 청색의 미묘한 변조를 통해 관람자를 작품 안 깊숙한 곳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안영나는 표면과 공간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바, 구상 회화와 비구상 회화의 경계선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이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안영나의 작품은 형태의 표현에서 벗어나면서도 능숙한 화면 처리로 인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형태적인 당위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즉 물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덫에 빠지지 않으면서 물체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벽화만큼 커다란 붓글씨 회화로 벽을 덮은 안영나의 작품을 볼 때 어떤 사람은 꽃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크기로 인해,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는 추상적인 색채로 녹아들며, 관람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힘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경험은 파리의 오랑제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그림에 둘러 쌓여있을 때 느끼는 경험과 비슷하다. 오랑제리에서 우리는 마치 물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경험을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연을 축소하여 오직 색채와 느낌만을 남겼다는 점에서 강한 충격을 받는 것이다. 형태가 뭉개지고 관람자가 작품속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서 단순한 색채와 형태는 그 단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균형감을 채워준다. 이러한 점에서 안영나의 작품은 아시아 서예의 전통과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예적인 전통으로부터 작품 세계를 넓혀나가 뉴욕 미술의 전통인 거대한 화면에 도전하고있는 것이다. 마크 토비나 아돌프 고틀립같은 작가들은 작은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있는 아시아 서예의 전통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작품에 도입하였다. 안영나는 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영나의 작품은 또한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과 비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정물화 전통에서 작은 꽃을 떼어내어 화면을 가득 채우며, 정물인 꽃잎이 표현하는 공간에서 강한 당돌함을 읽고 화면에 생동감을 가져왔던 오키프와 마찬가지로 안영나는 붓글씨의 단순한 - 단순해 보이는 - 획이 갖는 형태적인 아름다움에 주목하였다. 그 아름다움은 흔히 간과하여 왔던 바 - 적어도 현대 미국인은 - 안영나는 거대한 화면에 재구성하였고, 그 힘과 단순함은 미디아 매체에 젖어사는 현대인조차 깊은 인상을 받기에 모자라지 않다.
안영나의 작품을 아시아 서예의 전통과 구분짓는 또 하나의 요소는 색채이다. 검은 색 붓글씨는 흰색 바탕과의 관계에서 그 형태적 아름다움이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오직 낙관의 붉은 색이 짧게 시선을 빼앗을 뿐이다. 안영나는 검은 색묵 대신에 다른 색을 사용하지만, 이도 또한 아시아의 전통적인 발색이다. 이들 색채를 흰색 바탕에서 단색조로 단순하게 사용함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주며, 붓글씨 획의 미묘한 변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프란츠 클라인 같은 추상 표현주의와 작가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클라인은 붓글씨가 갖는 흑백의 단순한 형태적 아름다움을 발전시켜 거대한 화면을 구성하였다. 하지만 안영나 작품에서 보이는 색채의 단순성은 - 그리고 클라인의 거친 날카로움과 달리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획 놀림-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흐름과 투명함과 형태적 아름다움으로 이끌어간다. 그같은 요소가 어떤 구체적인 묘사보다도 더욱 자연을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안영나는 이번 신작 종이 작품에서 이 전의 상자 구성 (painted box construction)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재료와 질감에 대한 관심을 다시 보여주고있는 듯이 보인다. 손으로 만든 종이와 얼룩에 대한 탐색을 통해, 꽃의 형태가 보다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표현하고 있다. 공간과 획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균형의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이제 공간을 획인양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는 단순히 색채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색채가 되며 종이의 가장 자리가 지배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관람자가 전통적인 사각형 화면에 익숙해있었기 때문에 안영나는 수묵 작업에서 그같은 깊이와 미묘한 변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신작 종이 작품에서는 이제 종이가 그야말로 말 그대로 "공간"을 만들어냄에 따라, 관람자는 경계와 기대치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안영나의 종이 작업이 수묵 작업에서 이루어낸 성과에 버금가는, 새로운 미묘한 관계 구성으로 발전할 지도 모르겠다. 혹은 싸고 푸는 행위, 그리고 말 그대로의 깊이를 표현했던 상자 작업에서 보여준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버금가는 것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종이 작업을 보면서 앞으로 공간과 획이라는 상반된 요소 사이의 균형이 어떻게 완결점을 찾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 작업의 방향을 관심있게 지켜볼 뿐이다. 안영나의 작품은 겉보기에는 매번 더욱 단순해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람자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요구하고있다. 안영나의 신작 종이 작업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우리 관람자를 어디로 데려갈지 자못 기대가 크다.
그레그 메트칼프│미술평론가, 메릴랜드 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