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은 "본 것을 걸어가듯이", 역동적인 산수풍경을 창안해온 민정기 선생을 여덟 번째 대표작가로 초대합니다. 민정기 선생은 80년대에 그룹 “현실과 발언”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적이고 정교한 회화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친숙하게 잘 알고 있는 키치, 그러니까 이발소 그림의 어법을 재해석한 <포옹>, <세수>, <돼지> 등의 주옥과 같은 작품은, 세대를 뛰어넘어 젊은 작가들에게 존경과 향수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현대미술의 제도적인 경계를 허물고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회화적 감수성을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데서 비롯된 반향(反響)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한 민정기 선생은 문학적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특별한 재능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한씨연대기>를 비롯, 소설가 황석영의 여러 작품들이 민정기 선생을 관통하면서 새로운 시각적 구조물로 거듭났듯이, 그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간과되어왔던 텍스트를 작품의 주요한 축으로 설정해왔습니다.
80년대 말, 서울을 떠나 경기도 양평 서후리로 거주지와 작업실을 옮긴 후에도, 사실 작가가 몰두했던 것은 한가로운 풍경감상이나 낙향의 소소한 즐거움이 아니라, '그곳'에 관한 역사적, 지리적 텍스트들을 수집하고 읽고 해석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10여 년 동안 발로 걸어 다니면서 보고, 또 본 것을 걸어가듯이 되살려 내는, 그럼으로써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생기(生氣)찬 그림들이 그려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산과 섬 그리고 하늘을 향하던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산을 타고 다니다 보니 물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물 위를 따라 움직이며 드러나는 새로운 시야와 이야기가 이 작가를 매혹시켰나 봅니다. 남한강이 북한강을 만나 다시 한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라가며 발견해낸 도시풍광의 이 새로운 '텍스트'들이 예전의 알레고리적 도시 풍경화와 어떻게 콜라주되는지,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 기대되는 바입니다.
이처럼 민정기 선생의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도시와 자연, 전통과 현대, 고급미술과 대중문화, 이미지와 텍스트의 문제 등 근대사회를 이분화해 왔던 크고 작은 논리와 구조들이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지, 그 혈(穴)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재빠른 속도나 빤질빤질한 외피 혹은 최첨단의 장치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겠습니만, 그와는 또 다르게 두 다리로 걷는 즐거움, 움직이면서 보는 기쁨, 또는 저절로 움직이는 그림이 주는 충격,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가운데서 두루 성찰하는 시간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FAMILY SITE
copyright © 2012 KIM DALJIN ART RESEARCH AND CONSULTING. All Rights reserved
이 페이지는 서울아트가이드에서 제공됩니다. This page provided by Seoul Art Guide.
다음 브라우져 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This page optimized for these browsers. over IE 8, Chrome, FireFox,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