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의 설치- 퍼포먼스 PROJET
HIROSHIMA Chossén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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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조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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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영혼제’의 3번째 주제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어 희생당한 무명의 조센징에 관한 제식이다. 일제하에 모든 역사적 문화적 피식민의 통한을 가슴에 품고 있었을 때 설상가상으로 덮친 원폭이란 죽음의 그림자에 가리운 7000여 조센징(조선 사람을 일본인들이 비하해서 부른 말)의 운명은 사실상 오랫동안 역사의 뒷전에서 정당하게 인권의 보호, 사후 조치를 받고있지 못했다. 더욱 비명에 간 잿더미의 흔적조차 이제는 관광화 되어버린 오늘이다. 그런데 원폭이란 미국식 종전의 거대한 살상과의 모순스런 운명적 맞물림 속에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기실 이 시대의 일제 식민과정에서 우리의 실존적 위상은 무엇이었던가? - 세상은 일류전의 세계 속에 지나가는 미망의 상(image)인가보다. - 이 역사적 narration 의 화두를 통하여 나의 예술을 하나 만들고 싶다. 마치 연금술사가 순금을 내기 위하여 유황과 주석과 소금을 쓰는 이유와 같다.
HIROSHIM : 1945 년, 8월 7일, 현재는 ‘ 원폭 돔 ’이라고 불리우는 이 ‘산업 장려관( 물산 진열관; 체코슬로바키아 건축가 Ian Letzle 의 건축 사무소에서 1914년 착공 다음해에 준공, 지상 4층, 철골이 들어간, 붉은 벽돌과 석조, 좌우 대칭의 중앙 돔은 5층에 해당, 정면 파사드는 네오 바로크 양식) 바로 위의 허공에서 이름모를 굉음을 동반한 섬광이 일면서 1589년이래 모토야스강을 낀 水都라고 일커르는 아름다운 히로시마의 운명은 거대한 원폭의 버섯구름 속에...
당시 인구 28만, 爆心가까이 11만명 이상이 순식간에 사망하고 인근의 피해자는 32만여에 달한다. 9만 채의 건물 중 6만 2천 채 가량이 파괴되었다 7천 조센징(한국인)에게도 그 비극은 함께 찾아왔다. 일본군 중좌 였던, 고종의 둘째아들, 의친왕의 차남 이었던 이우(李 金愚)도 그곳에서 그날 죽었고 8월 15일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바로 그날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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