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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정전:The Formless has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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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mless has Form

흔히 나의 회화 작품들은 추상표현주의적 이라거나 액션페인팅 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 전세대들이 행했던 ‘사물(有)의 형태’를 빌어온 연상작용에 의한 상징적이고, 유기체적인 추상과는 틀리게 ‘형이 없는 것에서 형을 찾는다.’ 는 동양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無)의 세계’ 에서 찾아낸 추상의 형과 내 ‘몸짓’ 의 흔적을 ‘에너지’ 로써 표출하는 것이 내 작업의 근본이다.
속도감 있고 힘이 넘치는 이 에너지들을 쏟아 붓기 위해 나는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가장 강한 에너지를 발산할 것 같은 최고의 극단적인 색들을 대비시키며 유동적인 붓자국들을 계속 남겨 간다. 캔버스가 바닥에 눕혀진 위치는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그림이 완성 될 때까지도 어떤 형을 갖춘 그림이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의도적으로 꾸며지거나 예비 드로잉이나 스케치가 필요 없는 그림이 내가 하는 추상이다.

습관적이거나 일상적인 방식의 생각은 피한다. 이지적인 생각보다는 직감적인 감각에 충실한다. 그래서, 나의 화면은 더 표현적이고 개인적인 색감들과 생동감 있는 붓자국들로 메워질 수 있다.
순수추상이란 절대 무의식의 경지에서만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선을 긋는 반복된 행위애 몰두하는 내 육체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기운을 토해내는 내 정신이 합일된 그 순간, 그 깨달음의 순간 만이 절대순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각각의 붓자국들은 호흡과 리듬이 있는 ‘살아있는’ 것들 이어야 한다.
그 결과, 그 ‘선’ 들은 나를 표현한다기보다 그 자체로써 독립된 형을 얻는다.
- 작가노트





작가 서유정의 최근 2003년 이후의 회화작업에서는 주로 다양한 색들이 서로 대조되거나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병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블루와 보라색이 노란색과 주황색들과 때론 핑크과 노랑이 초록색과 보라색들과 현란하게 서로 대조되는 색들로 한데 어우러져 그림 표면 위로 흐르고 번져 나간다.
이러한 보색내지 반대색이 함께 하는 것은 ‘대조’의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개념적인 대칭‘있다’와 ‘없다’의 대치로도 나타난다. 그래서 형태를 그리거나 배경을 그려, 이 주제가 되는 형태와 그 배경의 문제가 서로 차등을 두지 않고 제시되기도 한다.
작가는 색을 뿌리고 붓으로 그리면서, 우연(뿌리기나 번지기)과 의도(붓질)의 관계로 특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연이라고 하는 것도 시작은 의도였지만 결과는 우연이라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의 설명이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절대순수의 경지, 무의식의 극치를 추구한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여기서 작가의 무의식과 의식적인 제스쳐는 사실, 논리logic(logos)의 세계를 넘어가는 선(pre)논리적인 세계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미학자들이 제스쳐가 한정하는 것이, 즉각적인 공간의 충동과 선의식을 제시한다고 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서유정의 작품들에서는 어떤 분명한 논리(또는 이야기, logos)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섬유를 짓듯이 올기 솔기 형성된 선들에서 충동적인 제스쳐의 의미가 보여질 뿐이다. 이러한 ‘비논리’의 양태를 갖는 논리는 즉각적인 운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즉각적’인 운동에서의 ‘즉각’은 내적인 삶의 충동을 제시하는 것이며, 과거의 응축된 삶의 심리적 측면을 내포한다.



그것은 마치 그 자신의 고유한 역사에 얼룩진 삶처럼 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갖는다. 이는 ‘경험의 구체적인 충동’으로서, 실제적인 작품에서 표현된 제스쳐는 욕망을 형상화시키는 것이다. 작가의 한 동작, 한 제스쳐에 의해 이뤄진 선은 솟구치며 분출되는 충동을 형상화시킨다. 제스쳐는 ‘즉각’, 즉 ‘즉발성’이라는 성격을 조형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 즉발성은 바로 의식보다는 감성의 표출이며 의도보다는 충동의 형상화이다. 이렇게 작가의 심정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때로는 즐거움이며 슬픔이고, 때로는 무엇인가를 공격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욕망과 충동 표출의 경험이다. 이 충동적 선의 움직임이 우리가 느끼는 경험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또한 그 경험은 정해진 한계 속에서 제한되어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여지진 않는다. 그래서 ‘제한’의 의미를 열어놓고 선들을 흔들어 놓는다. 이렇게 흔들려진 상태는 대상을 한계 짓는 행위도 아니며, 대상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테를 두르는 한정적인 그림이 아니다. 제스쳐는 충동적인 순간의 동작을 보여줌으로써, ‘순간적인 시간적 존재’의 의미를 준다. (J. Hersch) 이러한 순간성은 때로는 시간의 차원을 초월하는 ‘초시간적 종합’(synthese trans-temporelle)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제스쳐는 시간 속에서 우연적인 요소로서 작용하면서도 ‘역사적인 우연성(contingence)’을 파괴하기도 한다. 또한 이로써, 존재론적 절대자가 순수하고 넓게 퍼져나가는 순환적인 회귀’와 같이 볼 수 있어서, 단순한 우연적 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성하고 형이상학적인 토대를 반성하게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작가에게서 나타나는 시간들, ‘뿌리기-흘리기-긋기’에서 나타나는 시간들은 서로 시간적인 연장 속에서 ‘시간을 지연화’시키는 과정이며, 앞서서 말한 예술공간에서 ‘시간을 분절화’하는 것이며, ‘현재의 흐름 속’에서 점을 찍는 행위와 같다. 로웰에 의하면 이것은 오히려 가능한 ‘모든 시간을 제스쳐 속에 감춘다’는 것이다.





우연과 필연의 중간이 만들어내는 형태의 반복은 작가에게 있어서, 배설과 율동의 두 의미에 취해진 제스쳐이다. 이러한 분출과 배설의 ‘액체적’ 형태들은 닫혀진 정형적인 형태이기보다는 ‘비정형적인 열려진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이 뭉글어지고 섞여진 공간은 시공간의 교착점을 만들어내며, «spatio-temporelle 한 시공간적인 모든 교착점 (조성물, 연결점coordonnes)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을 제시한다.»(J.Hersch)고 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이러한 형상성에서, ‘열린 형태’로서, ‘가능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현대미술의 중요한 축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작가가 더욱 자신의 고유한 논리와 조형성을 창조적으로 완성해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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