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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옥전

  • 전시기간

    2006-09-11 ~ 2006-09-20

  • 참여작가

    인순옥

  • 전시 장소

    갤러리자인제노

  • 문의처

    02-735-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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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옥 - 자유의 문으로 가는 계단


글. 독립큐레이터 |자인아트하우스 기획실장 이홍원


작가 인순옥의 작품 성향에 대해서 많은 평론가와 주변의 지인들은 단순히 ‘무의식의 세계’, ‘초현실주의적 경향’으로 정의를 내리곤 한다. 프로이드가 말하는 id의 세계, ego의 세계를 빌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런 얘기들은 부분에 지날지 모른다. 작가가 얘기 하고자하는 바는 그리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식자들이 어렵게 풀어 놓고 있을 뿐, 어쩌면 아주 단순 명료하다. 작가는 이전의 작업에서 모든 것을 잊고 쉬고 싶을 때, 무덤을 그렸다. 흔히들 죽어서야 비로써 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작가는 그림에 그대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배추밭의 배추가 놓여 있을 때는 잠시 멈춰 서서 열심히 배추를 드로잉 한다. 그리고 그것을 화면에 옮긴다. 세상이 복잡하고 어지럽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생명력을 키워가는 ‘배추’가 작가의 눈을 멈춰 세우는 것이다. 배경은 어지럽게 엮인 배관의 모습과 빌딩의 모습이 현실로 존재하고 배추는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그려진다. 그것에 얼마나 어려운 철학이나 이즘이 필요 하겠는가? 르네 마그리트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 했듯이 ‘인순옥의 배추’역시 ‘이것은 배추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배추는 작가 본인일 수, 다른 수많은 의미의 무엇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결국 ‘이것이 배추다.’라는 의미를 내포 하는 다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일상의 현실을 벗어나 날개를 달고 한 없이 자유롭게 하늘을 부유하고 싶어 한다. 파란 하늘에 걸린 조각구름은 자신을 그 곳에 데려다 줄 무한 전도체의 의미를 지닌다. ‘구름’과 함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구’는 어디론가 굴러갈 것 같고 문 안으로 들어갈 것 같다. 구의 역할은 화면 안에서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그리고 그림 속 그림으로 인도 하는 역할과 함께 ‘무한’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작가가 꿈꾸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 하다. 마치 우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기차역에 가서 표를 사듯이, 작가가 보여주는 세상을 따라 가고 싶다면 대개는 계단을 따라 가서 그 곳을 들어서는 문을 열어야 한다. 일단,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인류는 욕망과 이성에 추를 달아 놓고 기울기를 체크 한다. 서구 모던의 시대는 이성과 합리주의적 사고에 의존했으나 그 이후로는 ‘탈이성’ 즉, 욕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열었다. 어쩌면 서구 근대의 낭만주의적 사고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훨씬 휴머니즘적이고 인간 본성을 그리워하는 이즘의 산물인 것이다. 서구 문명이 만들어 놓은 비인간화에 대한 지독한 반발심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 인순옥의 작품은 들뢰즈가 말하는 ‘탈영토화 deterritorialization’, ‘탈코드화 decoding’에 대한 얘기와 욕망에 중심을 둔 이론으로 엮어갈 수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은 환상을 객관화 시키는 작업에서 ‘인순옥’의 작품이 닮아있긴 하지만 ‘달리’는 알다시피 평소 신경증적 증세와 노이로제에 시달린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억압된 욕망과 꿈의 풍경을 그림에 담아 해소 했었다.’ 라고 한다면 작가 ‘인순옥’은 객관화된 욕망을 일반 대중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풀고자 함의 의도가 더 크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작품을 가만히 드려다 보면 욕망에 앞서 ‘이성’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도시 위에 떠 있는 붉은 반구의 의자는 사회적 불안함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림을 보는 모든 일반인들과 함께 공감하고자 하는 의도가 짙다. 물론, 생소함의 상황설정으로 인해 새로운 이미지를 주는 ‘데페이즈망 Depaysement’의 느낌은 그런 형식들을 따르고 있지만‘마그리트’철학의 중심적 내용과 ‘정신의 본래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이나 윤리와 같은 억압기제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앙드레 브르통’등의 일반적인 초현실주의 작품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일상에서 작가가 염원하는 이상세계를 작품에 담아 관객을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바다 위에 떠 있는 와인글라스와 제라니움이 있는 작품은 묘한 인상을 준다. 이 모두 작가가 꿈꾸는 ‘휴식’을 상징하는 이미지 들이다. 유리잔 속의 하늘 풍경은 작가가 생각하는 또 다른 하늘(세상)을 표현하는 것이며, 스스로 화면 바깥세상으로 넘쳐흘러 버리는 바닷물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떨쳐 버리고 싶은 심경을 내비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 ‘구’, ‘구름’은 이상세계를 향해 여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 봐야할 점은 이중, 삼중의 구조적 장치를 시도함이라 하겠다. 그것은 단순한 평면에서 벗어나 입체로의 확장과 설치적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 이다. 사각의 육면체에 하늘을 표현하고 무한 공간의 느낌을 담아내면서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 놓는가 하면 캔버스 위에 ‘화분’을 설치하여 작품에서 생물이 자라도록 한다는 점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무생물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작업에 식상함을 느낀 것이다. 문제의 실마리를 생명체를 피워내는 것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이는 ‘환상’에서 ‘실제’에 도전한다는 선전포고인 것이다. 최근작 이전에 이미 작가는 캔버스 화면의 정면성에 한계를 느끼고 캔버스 둘레면 까지 표현을 연장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작가의 욕구를 채우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난 전시에서는 작품과 설치를 병렬하여 착시를 일으키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방안의 풍경을 그려 놓고 앞에는 실제 멍석을 깔아 놓는다든지 해서 보는 이들에게 착시경험과 함께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게끔 유도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만든 캔버스 윗면에 화초를 심는가 하면 정육면체 화면을 만들어 여러 각도에서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다시 말해서 각 면의 이미지가 연상 작용을 일으키도록 유도함으로써 색다른 경험과 느낌을 주고자 의도한 것이다.






작가 ‘인순옥’의 작품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 보자면, 보다 적극적인 ‘자위와 공감 그리고 소통’이다. ‘작업을 하면서 작가 스스로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어떻게 하면 작가가 그려 놓은 세계에 보는 이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는 표현 형식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겪는 삶의 고통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이다. 눈에 보여지는 작품 형식은 단지 설정이고 표현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자신이 자신에게 안식을 주고자 함이며 더 나아가 주변인들에게 그것을 나눠주고 싶어 한다.
작품에 놓인 계단을 따라, 작가가 마련해 놓은 세계로 넋을 놓고 들어가 보자.
숨을 죽이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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