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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동양화 새 천년 ‘한국화 - 지평의 확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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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의 한국화의 정명(正名)에 대하여



김상철│미술세계 주간


동양화 새 천년전은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되어 2009년에 마무리되게 되는 장기 기획 프로젝트이다. 한국화 분야의 정체성 탐구와 진로 모색, 한국화의 현대적 미감 획득과 대중과의 소통, 그리고 청년 작가의 발굴과 육성을 사업의 기본 취지와 방향으로 삼고 그간 8회의 전시 및 세미나를 개최해 왔다. 이는 단발성 기획 전시가 남발되어 그 성과와 문제점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점검과 반성이 극히 미미하였던 국내 전시 기획에서는 보기 드문 대장정이다.

동양화 새 천년 사업은 ‘동양화’와 ‘새 천년’이라는 두 가지 구체적이고 분명한 가치가 그 출발점인 셈이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많은 미래학자들은 앞으로의 세기는 서로 다른 문화들이 상호 충돌하고 융합하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며, 그 중심은 아시아가 될 것이라 예측하였다. 동양화 새 천년 기획은 바로 이러한 세기적 변환 점에서 응당 견지하여야 할 가치를 모색하고, 장차 도래할 새로운 상황 속에서 여전히 작용하고 적응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그 출발점일 것이다. 동양화 새 천년의 기획 취지로 제시된 내용들은 바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인 셈이다.




동양화 새 천년은 지난 7년 동안 <수묵화 새 천년의 오늘전>을 필두로 <새로운 의식과 감성을 찾아서>, <동양화 새 천년 - 현상과 전망>, <한국화 2004년의 오늘>, <한국화, 비전 2005>, <한국화의 힘> 등을 전시 주제로 새로운 세기를 호흡해 왔으며, 올해의 주제로 <한국화, 지평의 확장>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일정하게 감지되는 일관된 가치와 점진적인 인식 확장의 맥락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앞서 몇 차례의 전시 주제는 이른바 새로운 시대 환경에 적절히 적응하고 대응하기 위한 모색과 좌표 점검의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후반으로 갈수록 그 내용이 구체화되고 미래 지향적인 목표 의식이 분명해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에 제시되고 있는 좌표는 결국 한국화의 지평 확장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적극 호흡하고 반응하여야만 한다는 명제로 모아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 동양화 새 천년의 ‘동양화’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이다. 근대 이후 관행적으로 사용되던 동양화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1983년 국정 교과서에 ‘한국화’라는 명칭으로 대체 수록되고,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동양화부’가 ‘한국화부’로 개명됨에 따라 사장된 단어이다. 더욱이 한국화는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따라 부단한 실험과 모색을 거쳐 이전의 그것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새로운 가치를 이루어 내어 이를 ‘현대 한국화’라 구분 짓게까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양화라는 명칭을 원용함은 분명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는 다분히 인습의 관성에서 비롯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거나, 아니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지향함에 있어 보다 큰 틀을 견지하고자 하는 의도된 장치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타성적인 용어 사용에서 비롯된 작은 실수라면 이는 분명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화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이를 현대적 미감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문화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유력한 조형체계로 인식하며, 이를 서구적 조형 가치와 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보다 큰 특수성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 의미는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는 앞으로도 일정 기간 지속될 동양화 새 천년전이 보여주게 될 궁극적인 결과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양화라는 단어의 함의가 서구적 조형과는 다른 동양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조형과 그 감상체계를 일컫는 말이라면, 한국화는 이를 보다 분화시켜 한국미의 특질과 그것이 지니고 있는 조형체계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는 일종의 특수성을 전제로 한 정체성 찾기의 결과물로, 한국화의 성과이자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 진 것이다. 전통적인 관념 산수를 대신한 실경산수의 대두, 채색화의 전통을 고구려 벽화에까지 유추 소급하여 우리민족 고유의 색채 감각을 회복해 보려는 노력, 수묵에 대한 다양한 형식 실험과 한지 등 전통적 매제에 대한 관심 고조, 천연 안료에 대한 부단한 개발과 이를 통한 조형적 실험 등은 바로 한국화가 이루어 낸 성과일 것이다.

동양화에서 한국화로의 명칭 변환은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진행되어 혼란을 야기 시켰지만, 이의 구체적인 모색의 결과 한국화의 표현 영역을 대폭 확장시킨 것도 사실이다. 교조적이고 경직된 조형관에 얽매여 있던 동양화는 목가적인 서정의 자연에서 도시라는 또 다른 공간을 새로운 자연으로 수용하였으며, 이상화된 관념을 대신한 생동하는 현실에 주목함으로써 그 표현의 지평을 넓혀 갔다. 즉 동양화에서 한국화로의 명칭 변화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면은 단연 소재의 확장과 이를 통한 표현의 다양성일 것이다. 이어 표현 영역의 확대에 따른 재료 개방은 한국화의 표현과 조형적 기능성을 대폭 확충해 주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축되어진 형상들은 이전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이를 이른바 현대 한국화로 구분하여 거론하게 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동양화는 한국화, 현대 한국화라는 명칭과 가치관의 변화를 가지게 되었으며, 표현에 있어서는 이상화된 관념 세계의 서정적 화면에서 현실을 적극 반영하고 호흡하는 삶의 현장으로 조형의 바탕을 옮겨 왔으며, 표현에 있어서는 무제한적인 재료 개방과 표현의 확대를 통하여 현대를 반영케 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화는 소재와 표현에 있어서 그 영역을 무제한적으로 확장시켜 전에 없이 광대한 외연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연의 확대는 오히려 한국화라는 본질의 정체성을 에매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이미 방만해진 다양한 조형적 결과물들을 하나의 가치 개념으로 수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른바 한국화의 가치 혼란과 정체성 상실을 염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내용들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 다름 아닌 것이다.




동양화 새 천년전이 한국화의 정체성 탐구와 진로 모색을 기획 취지의 첫 번째 항목에 설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오늘의 한국화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일 것이다. 사실 오늘의 한국화는 그 외연의 확장과 더불어 조형 체계, 감상관 등의 다양한 변화를 두루 내재하고 있는 것이어서 이를 하나의 가치 개념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과거와 같은 수묵과 채색이라는 경직된 이분법은 이미 통용되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으며, 전에 없던 새로운 조형들을 효과적으로 수용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심미 체계 역시 갖추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표현은 방만해지고 정체성은 더욱 모호해지는 건강치 못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사실 그간 한국화, 혹은 한국화의 정체성, 나아가 한국화의 내일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모두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던 점은 대상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기준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화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전개하고 효과적인 처방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상에 대한 분명한 내용 규정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일 것이다.

한국화의 외연 확장은 분명 소재와 재료의 개방을 통해 전에 없이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내었다. 현상적으로는 분명 백화제방을 방불케 하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국면이지만 그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혼돈의 상황은 오히려 정체성마저 모호하게 만들어 급기야 한국화 무용론, 심지어는 한국화 도태론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한국화에 있어서 새로운 조형 실험과 새로운 가치관의 제기를 일방적으로 금기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통이란 언제나 그것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의 조우를 통하여 새로운 내용들을 수혈 받음으로써 그 유장한 생명력을 이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본질과 말단에 대한 분명한 구분과 이해를 전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단순히 현대적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방만한 실험들을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가치 체계에 이식하거나 수용하려 한다면 이는 더욱 큰 혼란을 야기 시킬 뿐이다. 그럼으로 오늘의 한국화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있은 연후에 비로소 오늘에 벌어지고 있는 만화경 같은 현란한 현상들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동양회화는 지필묵을 주요 표현 수단으로 하고 물을 표현의 매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표현에 있어서의 평면성이나 서정성, 은유와 함축을 전제로 한 정신성의 강조 등은 이를 통해 발현되는 조형적 특징일 것이다. 이는 한국화의 정체성 구현에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기성의 화론들이나 전통 미술에 대한 이론들은 모두 이러한 내용과 요소들을 전제로 이루어 진 것들이다. 한국화의 구분과 평가는 일단 재료적인 측면에서의 구분이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전통적인 조형 방법과 가치관을 차용하였지만 서구적 방법을 적극 수용한 경우는 따로 구분하여 거론함이 옳을 것이다. 이는 우열의 구분이 아니라 차이의 인정이다.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전통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를 통하여 새로운 내용들을 수혈 받음으로써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내용을 풍부히 해 온 것이라 한다면, 이들이 축적해 온 조형적 경험들은 분명 한국화의 발전과 변화에 일정한 영향과 자양분을 공급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시간의 세례를 거쳐 그것이 한국인의 감성과 한국이라는 특정한 공간 속에 안정되게 정착되었을 때 비로소 획득하게 되는 새로운 가치일 것이다. 오늘의 한국화에 이들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기성의 가치로 이들을 판단한다는 것은 오류의 간극이 너무 큰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가치를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만약 폐쇄적이고 고답적인 경직된 이해와 판단으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가치관의 수용을 거부한다면, 한국화는 자연스레 도태되어 결국 고사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본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단지 현대라는 미명으로 온갖 행위를 포장하려 한다면 이 역시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본질과 말단, 주체와 객체에 대한 분명한 구분과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판단이 전제 될 때 오늘의 한국화는 비로소 명실상부한 본연의 이름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화 새 천년전이 추구하고 지향하는바 역시 분명 고답적인 전통 고수의 진부한 가치는 아닐 것이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여하히 현대적 미감으로 승화시켜 한국화를 오늘에 거듭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이들의 진지한 고민을 통해 향후 한국화 발전에 유익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화는 분명 혁신적인 변환의 기로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비록 생사, 혹은 존폐의 갈림길은 아닐지라도 향후 한국화의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관건의 시기임은 분명하다. 전에 없던 장기간에 걸친 긴 호흡을 바탕으로 한국화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질곡을 타파해 보려는 노력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2007 동양화 새 천년 ‘한국화 - 지평의 확장전’
2007. 4. 17. 화 (오픈식 오후 5시) - 4. 24. 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2.3.4전시실(1,2층))


한국화-지평의 확장 : 기획 1
김경은, 김다은, 김유나, 김정란, 김지애, 김지은, 김태연, 김태진, 김태형, 맹혜영, 박민희, 박빛나, 박영길,
박진하, 박효민, 배지민, 양혜숙, 오연경, 오정미, 우지연, 유재광, 윤지영, 이동경, 이명효, 이복규, 이선주, 이소영, 이은경, 이익균, 이주율, 이창원, 이하나, 이행임, 이혜경, 임대준, 임지연, 정보연, 정태균,정해진,
조재임, 지요상, 한연선

한국화-지평의 확장 : 기획 2
김성호, 김하연, 김형진, 박현의, 선호준, 성은주, 유재춘, 이가연, 이기훈, 이동이, 이수경, 이수빈, 이지영,
최문정, 함경선, 허은오


전시기획 : 동양화 새 천년 추진위원회

주 최 : 동양화 새 천년 추진위원회│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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