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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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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랑 기획초대 오태식전

생명의 싹이 상상의 세계에서 노닐다
오태식의 개인전에 부쳐


김형숙 | 미술평론가, 서울대학교 교수



다양한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시각예술에서 고도의 지적인 경지인 평면작업에 대한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이 시점, 오태석의 평면작업들에는 연꽃과 나무, 물고기, 구름 등이 춤추듯 흐른다. 그의 작품세계는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를 열어 보이다가도 옛 고향의 품안으로 끌어드리기도 하고, 동양의 독특한 사유의 장을 펼치기도 한다. 또한 순수회화의 영역과 일러스트레이션, 시각문화의 영역이 절묘하게도 교차되는 지점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오태식의 개인전에서 전시된 작품세계는 보다 동양적인 사유의 세계에 근접하게 되면서 동양의 전통을 시각문화적인 특성들과 융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여러 물고기들은 현실계에서는 볼 수 없는 우의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다. 산속에서 나무와 집, 그리고 초생달 <산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고, <여행>과 <봄 나들이 > 등의 작품들도 어떤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를 마치 동화속의 공간이라 해석하는 평자가 있지만, 필자는 그가 구성하는 회화적 공간들은 신비롭고도 인간의 상상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동양적인 사유의 세계라 생각한다. 이는 마치 중국 고서인 <산해경 山海經>에 나타나는 기괴하고도 상상력의 여러 동물이 합성된 세계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고대인의 특수한 사유방식을 보여주는 <산해경>에서는 고대인이 가졌던 자연계에 대한 인식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졌던 상상력의 범주와 체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해경>은 전통 시기나 현대에 들어서도 매우 특별한 자연에 대한 해석으로, 천계와 지상세계와의 변화하는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의 변화를 나타낸다. 오태식의 회화적 공간에서 노니는 물고기, 고사리 같은 여러 싹들이 엉켜져 연꽃을 만드는 여백 등은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의 현대적 해석이다.



파울클레 (Paul Klee)의 <금붕어>에서 물고기가 추상화되어 정적이고도 형식적인 질서를 화면에서 형성한다고 본다면, 오태식의 시원한 흰 배경 속에 물고기들은 고사리 같은 넝쿨모양의 무늬로 그려지거나, 혹은 이 넝쿨모양을 주도적으로 형성하여 하나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공간을 형성한다. 그가 그린 물고기들은 모두가 즐겁고 활달하게 움직이고, 연꽃과 어울려 하나의 어울림을 구성한다. 특히 그의 2003년도 개인전에서 물고기들은 거의가 종과 함께 어울려 뛰놀아 종소리를 내는 것 같다. <정,중,동 / 사랑 / 은하수 건너 / 명상 / 여행 시리즈>에서 물고기는 종에 매달려 있거나 종과 함께 어울려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오태식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전통에 자신의 창작의 근원을 두지 않았나 한다. 특히 그의 2003년도 개인전 작품에 등장하는 종그림들은 성덕대왕 신종에서 많은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한다. 넝쿨모양의 선들이 종의 표면에 간혹 나타나다가도 연꽃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종은 이번 그의 개인전에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물고기만 남았다.



이번 개인전에서 오태식은 산, 나무, 산세베리아, 자연, 그리고 물고기 등의 모티브에 집중하게 된다. 특히 식물과 물고기들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그의 연구가 발로된 것이 아닌가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 성덕대왕 신종, 고려불화, 고려청자, 조선의 목조 건축 등에서 볼 수 있는 꽃 모양이나 고사리무늬 같은 추상적인 선들이 오태식의 작품 <존재이유>, <봄날에>, <행복>, <여행>에서 다양하게 변주(變奏)곡을 이룬다. 이 무늬들은 하얀 젯소가 덮히기 전에 여러 색으로 그려진 화면을 지우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고사리나 물결무늬 같은 형태로 화면에서 음악적인 선율을 구성하기도 하고 더 넒은 곳으로 가서는 연꽃의 형상을 이루기도 한다. 자세히 화면을 살펴보면, 이는 생명의 싹, 혹은 생명의 생성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꽃 모양이나 고사리 같은 표현은 동양에서 운기(雲氣)가 있다고 보아, 볼 수 없는 기를 구름 모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도상들은 생명의 싹으로, 고사리 무늬 같은 작은 선으로 표현된다. 이 선들은 점점 길게 뻗은 면으로 자라면서 구름처럼 흐르는 모양이 되어 커다란 영기 무늬를 구성하며 생명의 싹과 기원을 뿜어낸다. 생명의 싹은 연꽃이 화생하는 도상 <봄 나들이, 古-香, 여행> 과 연결되는데, 이것은 생명의 싹에서 연화가 화생하고 연화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형태다. 연화는 면적이 넓으므로 만물의 화생을 표현하기가 편리하기에 오태식의 작품<산에는 꽃이 피고>에서 등장 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오태식은 나무나 식물들을 그리는데, <푸른희망 I>, <봄바람 분다>, <고향의 봄>, <세월>, <기다림>에서 나무와 식물들은 푸른 잎에 붉은 줄기를 하기도 하고 노란 잎사귀에 검은 열매를 맺기도 한다. 식물은 수양버들인줄 알았는데, 바닷 속의 해초 같기도 한 상상적인 공간을 구성해, 산해경에 나오는 세계보다도 더 신비로운 장을 펼친다. 그는 이제 자유롭고도 공간의 마술사와 같이 식물과 물고기를 흰 여백위에서 운용한다.
특히 오태식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이러한 운기는 그의 제작 방식과 공간 처리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는 미점의 형태로 화면을 쓰다듬듯이 점으로 채운 후, 희거나 약간 노르스름한 제소로 지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물고기를 만들고 식물을 그리고, 나무를 만들어낸다. 가득 채워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는 비워나가면서 지워나가면서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비움으로써 다시 채워지는 그런 회화적 방식을 통해서 그는 운기가 가득한 회화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오태식의 이번 개인전에서 그의 경험과 감각은 보다 선명해 진 듯 하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그는 회화와 시각문화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싶어 했지만, 그 안에서 주춤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과 감각의 근원을 파헤쳐 그것을 자유롭게 운용해 운기가 넘치는 회화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넒은 흰 여백으로 채워져 있지만, 전통에 닿아 있어 분명 가볍지 않다. 또한 그는 전통에 묶여 고루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색가로도 보이는데, 시각문화와 순수예술의 경계와 교차지점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미감을 진솔하게 표현하면서도 이를 춤추듯 그려내는 자유로운 몽상가이자 사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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